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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혜정 Mar 09. 2022

비로소, 간호사

33살, 간호사입니다.



“무슨 일 하세요?

“간호사요.”

“아, 간호사! 3교대 하시느라 힘들겠다.”

“네. 간호사가 다 그렇죠.”


웃으면서 마무리 짓고 다음 대화 주제를 이어 나간다.



나는 10년 차 간호사다.

서울의 한 대학병원에서 3년의 병동 근무와 3년의 수술실 근무를 했다.

근무한 지 6년째 되던 해 평소 일하는 모습을 좋게 봐주신 저명한 교수님의 제안에 따라 경기도의 종합병원의 전담간호사로 이직해 4년째 근무 중이다.



‘간호사’라는 직업을 잘 모르는 사람들에게 간호사의 이미지는 의사 뒤에서 종이 몇 장 들고 다니면서 의사의 오더를 받는 정도로 생각한다.

본인 주변에 간호사가 있다면 ‘3교대’라는 피곤한 일을 하는 직업 정도?

요즘은 코로나 방역에 힘쓰는 의료진들의 활약으로 미디어에 노출되던 허드렛일을 하는 간호사의 이미지는 조금 벗어난 듯하다.

하지만 아직 간호사에 대한 사람들의 인식이 여전히 한참 부족하다.



사람들의 생각보다 병원에서의 간호사는 훨씬 중요한 일을 하고 있고 간호사란 직업 안의 세부 분야도 굉장히 다양하다.


우선 간호학과를 졸업하게 되면 대부분 병원으로 취업을 하게 된다.

사실 3교대는 체력적으로나 정신적으로 힘들다. 때문에 적성에 맞지 않는 사람이 아니면 3교대를 벗어나고 싶어 하는 간호사들이 많다.

그래서 일부 간호사들은 어느 정도 임상경력이 쌓이면 교대 근무를 하지 않는 병원 내의 행정부서, 공무원, 공기업, 보건교사, 제약회사, 회사 내 보건관리자, 해외 간호사 등 본인에게 맞는 여러 분야로 진출한다.




현재 나의 경우도 이직한 현재 근무하는 병원에서 담당 교수님의 외래, 수술실, 연구와 관련된 전반적인 일을 담당하고 있다.


외래에서는 환자들이 수술이 잡히게 되면 수술 날짜를 잡고 수술과 수술 후 재활 설명과 입퇴원 과정 등을 안내하고 교육한다.


수술실에서는 담당 교수님의 수술 기구 세팅과 수술에 들어오는 선생님들에게 수술 방법과 수술 진행에 중요한 팁들을 알려준다.

수술이 있기 1~2주 전부터는 수술 진행에 차질이 없게 수술에 필요한 기구와 약품을 주문하고 확인하는 일을 한다.

인력이 부족할 때는 수술 어시스트를 하기도 한다.


또, 대학병원의 교수님들을 보통 연구과제를 몇 개씩 진행한다.

이 연구 과제들의 CRC(연구 코디네이터)를 담당하며 연구 환자가 프로토콜에 맞춰 연구를 진행할 수 있게 스케줄을 조율하고 문서를 관리한다.


2~3개월마다 세부 파트가 바뀌는 전공의들에게 업무가 차질 없이 진행될 수 있도록 인계를 한다.


이런 과정에서 전공의들과 교수님뿐만 아니라 기구 회사, 제약회사, 재활센터 등 여러 분야의 직원들과 상호 협조적인 관계가 중요하다.




똑같은 간호사이지만 이전 병원에서 일하는 일들과는 완전히 다른 직업이라고 할 수 있다.

물론 이전 병원에서의 임상 경험이 없다면 이런 일들을 원활하게 진행조차 하지 못했을 것이다.


이런 일들을 다 설명하자니 “간호사면 3교대 고생하시겠네요.”라는 위로에 결국은 그냥 웃으면서 “네. 맞아요”라고 말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사실 틀린 말도 아니다. 지금도 간호사들은 각자의 위치에서 열심히 일하고 있고 특히 3교대하는 간호사들은 정말 많이 고생하고 있으니까.




간호학과를 입학할 때도 난 간호사에 대해 크게 관심이 없었다.

그냥 성적에 맞춰서 온 것이고 단지 ‘취업이 잘되니까..’라는 말만 듣고 온 건데 생각보다 배워야 할 공부들이 산더미였다.

취업은 걱정 없이 할 수 있었지만 눈물도 별로 없는 내가 입사하고 1주일 만에 엄마에게 전화해서 그만두고 싶다고 울었던 기억이 난다.


나는 입사한 날부터 “간호사는 내 적성에 진짜 안 맞아. 얼른 그만둬야지”라고 입버릇처럼 말했다.


그래도 1년만 버텨보자..

홀수년으로 고비가 온다니까 3년만 버텨보자..

병동이 안 맞으니 내가 원래 가고 싶었던 수술실로 가면 낫지 않을까?

수술실에서 1년 버티자.. 3년만 버티자..

하다가 지금은 여기까지 오게 된 것 같다.


근무하는 10년 동안의 일들을 천천히 생각해보면 이 글에 다 적지 못할 만큼 정말 다사다난하고 별의별 기상천외한 상황들이 있었다.




10년째 병원에서 일하는 간호사로써 누군가가 현재 내 일에 만족스러운가 물어본다면 난 만족스럽다고 대답할 것이다.

물론 10년 동안 한 분야에서 근무하면서 일이 익숙해지고 안정적 이어 서일수도 있지만

처음 보는 사람들에게 하루에 수없이 “선생님, 고맙습니다.”라는 말을 들을 수 있는 직업이 과연 몇 개나 될까?

나는 환자들에게 매일 설명하고 일상처럼 준비하는 수술이지만 어떤 누군가에게는 일생일대의 빅 이벤트일 것이다.


일을 하다 보면 내가 어떤 누군가의 인생에서 작은 도움과 위로가 될 수 있다는 뿌듯한 마음이 종종 든다.

이 마음들이 적성에 맞지 않다고 생각한 간호사란 직업을 10년째 할 수 있게 해 준 동력이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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