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가을에 걷기 좋은 '별주부전의 고향'
설악산 대청봉 일대에 올가을 첫눈이 내리던 날, 경남 사천시의 비토섬을 찾았다. 해상에 강풍이 불어 여객선의 발이 묶이는 바람에 애초 가고자 했던 섬 대신이었다. 마침 행정안전부와 한국섬진흥원이 선정한 ‘올가을 여행하기에 좋은 섬 9곳’ 중 월등도가 포함되어 있어 그렇지 않아도 가보고 싶던 차였다.
리아스식 해안과 질펀한 갯벌, 서정적 풍경의 ‘비토섬’
경남 사천시 서포면에 있는 비토섬은 1992년 연륙교인 비토대교가 건설되면서 배를 타지 않고도 갈 수 있는 섬이 됐다. 보통 연륙이 되고 나면 섬 특유의 특성을 잃기 쉬운데 비토섬은 얕은 구릉과 미로 같은 리아스식 해안, 그리고 아름다운 갯벌을 간직하고 있음인지 섬 특유의 고즈넉함이 아직 살아 있다.
갯벌을 드러낸 비토섬은 마치 ‘비 온 뒤의 강’처럼 몽환적 풍경을 자아낸다. 끝없이 펼쳐진 갯벌과 지주식 굴 양식장 언저리에서는 갯것을 잡는 아낙의 손길이 분주하다. 그 풍경 너머로는 위치에 따라 하동 금오산이 보이는가 하면 지리산 천왕봉도 보이고, 사천의 와룡산이 보이고 출렁이는 남해의 산군들이 보이기도 한다. 또한 석양의 황홀한 일몰은 보는 이들에게 진한 감성에 젖게 한다. 그래서 비토섬 갯벌은 사천 8경 중 하나에 속한다.
게다가 비토섬은 별주부전의 고향이라는 신비스러움까지 간직하고 있다. 토끼가 날아가는 형태라 하여 ‘날 비(飛), 토끼 토(兎)’ 자를 쓰는 비토섬은 조선시대 판소리계 소설 '별주부전'의 무대로 추정되는 곳이다. 실제 존재하는 비토섬의 부속 섬인 월등도와 토끼섬, 거북섬 등이 그 추정을 뒷받침해 준다.
비토섬에 전해 내려오는 별주부전 전설
자 그럼, 비토섬 별주부전 버전 속으로 들어가 보자. 옛날 옛적에 비토섬 일대에서 행복하게 살아가는 토끼 부부가 있었다. 어느 날 남해 용왕님의 명을 받고 찾아온 별주부(거북)의 감언이설에 속아 남편 토끼는 별주부의 등을 타고 용궁으로 들어간다. 병들어 누워있는 용왕님을 보게 되고, 토끼는 ‘토끼 간 외에는 백약이 무효하다’는 사실도 알게 된다. 죽임을 직감한 토끼는 꾀를 낸다.
'한 달 중 달이 커지는 선보름이 되면 간을 꺼내어 말리는데, 지금이 음력 15일이라 월등도 산 중턱에 계수나무에 걸어두고 왔다'며 거짓말을 한다. 이에 용왕은 토끼의 말을 믿고 다시 육지로 데려다주라고 별주부에게 명한다.
월등도 앞바다에 당도한 토끼는 달빛에 반사된 육지를 보고 성급히 뛰어내리다 바닷물에 빠져 죽고 말았는데 그 자리에 토끼 모양의 섬이 생겨났다(토끼섬). 토끼를 놓친 별주부는 용왕으로부터 벌 받을 것을 걱정하여 용궁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그 자리에서 거북 모양의 섬이 되었다(거북섬).
한편, 부인 토끼는 남편이 돌아오기를 애타게 기다리다 절벽 끝에서 떨어져 죽어 섬(목섬)이 되었다. 목섬은 토끼섬에서 500여 미터 떨어진 갯벌 너머에 떠 있다. 비극으로 인해 생긴 섬들이지만 섬 이름과 모양이 스토리텔링을 하기에 좋은 조건을 갖췄다.
이곳 주민들은 월등도(月登島)를 돌당섬이라 부르고 있는데, 그 이유는 토끼가 용궁에 접혀간 후 돌아와 처음 당도한 곳이라는 뜻에서 '돌아오다' 또는 '당도하다'의 첫머리 글자를 따온 것이라 한다.
하루 두 번 모세의 기적이 열리는 월등도 트레킹
비토섬은 섬치고는 비산비야(非山非野)의 지형이어서 트레킹 코스는 거의 평지나 다름없다. 통상 트레킹은 낙지포 해양낚시공원 주차장에서 시작한다.
해양낚시공원 주차장~별학도 낚시공원~별주부전 테마파크~하봉마을·선착장~월등도(거북섬/토끼섬)까지 갔다가 다시 해양낚시공원 주차장'으로 원점 회귀하는 코스로 약 12km에 이른다. 느릿하게 4시간 30분 정도 걸리지만 90% 이상이 아스팔트와 시멘트로 되어 있어서 걷기에 만만치 않다. 게다가 그늘이 거의 없어 봄 벚꽃이 피거나 기온이 선선한 가을 외에 더운 날씨에는 지치기 쉽다.
따라서 하봉마을 버스정류소 삼거리에까지 차로 이동하여 길가에 주차한 후 월등도를 트레킹하는 것이 좋다. 월등도를 지나 토기섬과 거북섬을 한 바퀴 도는 데는 2km 정도로 넉넉잡고 1시간 30분이면 족하다. 트레일의 80% 이상이 비포장과 데크 길로 되어 있어 수월하게 걸으면서 별주부전 전설 속으로 빠져들 수 있다.
그런데 썰물 때를 잘 맞춰야 한다. 월등도는 만조 시에는 수심이 4m 정도에 달하지만 간조 시에는 바닥을 드러내 300여m의 바닷길을 드러낸다. 따라서 방문 전에 ‘바다타임’ 웹에서 ‘삼천포 물 때’를 조회한 후 간조 시각에 맞추면 된다.
하루 두 차례 모세의 기적이 일어나는 셈인데 물이 빠진 2~3시간을 이용해 주민들과 관광객들이 차를 가지고 가거나 걸어간다. 월등도 주위로 수백 미터까지 갯벌이 드러나 토끼섬, 거북섬도 한 바퀴씩 돌 수 있다.
주변의 해안을 따라 걸을 수 있도록 마련된 나무 데크 중간중간에 갯벌로 내려서는 출구가 있어 명품 비토 갯벌을 마음껏 만끽할 수 있다. 특히 거북섬 가는 길에는 대나무 숲이 우거져 해풍에 서걱대는 소리가 마음을 맑게 한다.
비토섬에서 가볼 만한 곳들
■ 별학도 비토해양낚시공원
월등도가 비토섬의 동쪽에 있다면 남쪽에는 별학도가 있다. 섬 모양이 날아가는 학을 닮아 별학도라 이름 붙었는데 그곳에 해양낚시공원이 조성돼 있디. 낚시공원은 보도교로 비토섬과 연결돼 있다. 해양낚시공원은 산책로, 부양식 낚시잔교, 해상펜션, 정자시설, 바다생태체험장, 어린이놀이터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낚시공원 앞바다에는 이글루처럼 반원 모양의 흰 건물들이 떠 있는데 해상펜션이다. 펜션 내에 샤워실과 주방 시설이 있어 바다 위에서 하룻밤을 보낼 수 있다. 가족, 연인, 친구와 함께 좋은 추억을 만들기에 좋다. 낚시공원 입장료는 성인 2000원, 청소년 1000원이다.
■ 별주부전테마파크
별주부전테마파크는 별주부전을 테마로 한 공원답게 토끼, 거북이를 곳곳에서 볼 수 있다. 벚꽃이 피는 시기에는 산책로에 벚꽃 터널이 형성되며 산책로 입구에 거대한 토끼 석상과 살아 움직이는 토끼들을 볼 수 있어 아이들과 함께 와도 좋다.
오르막을 살짝 오르면 멋진 바다 뷰도 볼 수 있고 전망대는 물론 아기자기한 조형물과 놀이터, 물놀이장, 캠핑장, 미로숲 등이 있어 가족들과 함께 나들이하기 좋은 곳이다.
■ 비토국민여가캠핑장
사천시시설관리공단에서 운영하는 캠핑장이다. 캠핑장은 차량 출입을 통제하여 캠핑장 입구에서 별도의 운반용 카트로 이동한다. 자동차 소음과 각종 공해에서 벗어나 아이들이 자유롭게 뛰어놀 수 있는 자연 친화적인 캠핑장으로 인터넷 예약제로 운영된다.
비토섬에는 이곳 외에도 캠핑의 천국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시설이 잘 갖춰진 캠핑장들이 많다.
비토섬 인근의 가볼 만한 사천시 명소는
■ 남일대 코끼리바위
사천의 8경 중 하나로 남일대 해변과 인접하여 주변 관광을 하는 동시에 볼 수 있는 볼거리 중 하나이다. 조개들이 잘게 부서져 이루어진 고운 모래길 백사장을 품고 있는 남일대 해수욕장 왼편 해안 끄트머리에 코끼리 형상의 바위가 자리해 있다. 마치 코끼리가 바다를 바라보며 물을 마시는 듯한 모양이라 하여 남일대 코끼리 바위라고 부른다.
남일대해수욕장에서 좌측으로 해안 테크 길을 따라 10여 분 거리에 있지만, 강풍이 불 때는 통제된다. 바닷물이 만조 시에는 접근하기 어려우므로 어느 정도 빠진 후 가면 관람할 수 있다.
■봉명산 다솔사(多率寺)
다솔사는 사천시 곤명면 용산리에 있는 봉명산 자락에 터를 잡고 앉은 1500년 유구한 역사를 간직한 고찰이다. 다솔사에는 현존하는 건물 중 가장 오래된 조선 영조 때의 대양루를 비롯해 극락전, 응진전이 있으며 인근에는 보안암과 서봉암 등이 있다.
여기에 다솔사 안심료는 만해 한용운 선생이 ‘독립선언서’의 초안을 작성했으며, 김동리의 소설 ‘등신불’이 저술된 뜻깊은 곳이기도 하다. 그뿐만 아니라 우리나라 녹차의 태생지로 다솔사 뒤 봉명산 주위에는 1만여 평의 야생 차나무가 자라고 있다. 절 입구에서부터 소나무 숲이 울창하여 사시사철 산책하기에 좋은 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