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다도해 최고의 비경을 보고 싶다면, 이곳
신안 중부 다도해의 ‘막상막하’ 쌍봉..두봉산과 승봉산
국내에서 네 번째로 긴 천사대교를 지나 암태도로 들어서면 눈앞에 펼쳐진 바위산의 비범함에 사람들은 놀랜다. 비산비야(非山非野)를 이루던 압해도의 모습과는 달리 암태도 승봉산(升峰山·355m)은 평지 돌출형으로 위엄 있게 솟아 있다. 승봉산은 바로 옆 자은도 두봉산(斗峰山.364m)과 함께 신안 중부 다도해에서 막상막하 쌍봉을 이루고 있다.
암태도(巖泰島)는 ‘바위가 병풍처럼 둘러싸여 있다’ 하여 이름 붙여졌다. 신안군 다이아몬드 제도의 중요한 축을 담당하고 있는 암태도가 압해도와 천사대교로 연결되면서 자은도, 안좌도, 팔금도 등이 육지와 연결됐다. 자은, 암태, 팔금, 안좌 등 4개의 섬은 이미 다리로 연결돼 있었기 때문이다.
현재 계획 중인 암태 추포도와 비금도 연도교 공사가 완공되면 비금·도초는 물론 장차 신안 남부권인 하의도, 장산도까지 육지와 연결된다. 이렇게 되면 차로 가는 ‘다이아몬드 제도’가 완성될 전망이다.
일제강점기 대표적 항일운동 ‘암태도 소작쟁의’
암태도는 신안의 주요 섬들처럼 여러 섬을 간척으로 연결해 형성됐다. 그러다 보니 대부분의 주민들은 어업보다는 농업에 의지해 왔다. 암태도를 세상에 알린 것은 일제강점기(1923.8~1924.8) 치열하게 펼쳐진 농민 소작쟁의 운동이다.
당시 서태석 선생 주도로 ‘암태소작회’가 결성되어, 지주 중심의 불합리한 소작료를 개선하고자 노력했다. 소작회에서는 7~8할에 이르는 고율 소작료를 4할로 내려 달라고 요청했으나 지주 측에서 무시했다. 이에 따라 소작료불납동맹이 전개되고, 소작회와 지주 측의 충돌이 발생했다. 지주 측에서 폭압적인 방법을 동원해 소작인들의 정당한 요구를 방해했음에도 당시 경찰은 소작회 간부들을 검거·수감하기에 이른다.
암태도 주민들은 두 차례에 걸쳐 대규모 항의 방문단을 꾸려 목포에 진출했다. 처음에는 400명, 두 번째는 600명이 각 마을에서 동원한 배를 타고 목포로 건너가 경찰서와 재판소 앞에서 집단 항의를 펼치는 단결력을 보여주었다.
길거리에서 굶어 죽기를 각오한 암태도 주민들의 이른바 ‘아사투쟁(餓死鬪爭)’의 결과, 소작료 4할 인하·구속자 고소 취하 등의 성과를 거두며 소작쟁의는 마무리됐다. 이를 기념하는 기념탑은 승봉산을 배경으로 1998년에 조성돼 암태면 단고리 장고마을의 입구에 우뚝 서 있다.
바위산이지만 비교적 수월하게 오를 수 있는 승봉산
승봉산 산행은 암태중학교 체육관 뒤 청수가든 옆으로 난 샛길로부터 시작한다. 산행은 시골 야산을 걷듯 듬성듬성 소나무와 사스레피나무 사이를 완만하게 걸어 오른다.
5분 정도 걸으면 ‘중대본부’ 갈림길 표지판이 나오고 등산로 좌우에 연둣빛 산자고가 눈맞춤을 한다. 이어 너럭바위 근방에는 연분홍 진달래가 피어있고, 점점 고도를 높여나갈수록 시야가 사방으로 트인다. 이른 봄 일교차가 심한 데다 미세먼지 주의보로 하늘은 부윰하지만 멀리 있는 섬들까지 그런대로 조망할 수 있다.
본격적으로 오르막이 이어지면서 전망 좋은 273봉에 도착한다. 이곳은 암태초등학교에서 올라오는 길과 만나는 지점이다. 발치 아래 파란색 지붕의 암태면 소재지 너머 동쪽으로는 압해도 송공산과 천사대교, 남쪽으로는 팔금도를 지나 안좌도를 이루는 수많은 섬의 군무를 볼 수 있다.
이곳에서 두봉산 정상까지는 군데군데 부처손 군락지가 이어진다. 부처손은 건조한 바위 겉에서 자생하는 양치식물로 동의보감에 의하면 암세포의 성장을 억제시킴과 동시에 다른 곳으로의 전이를 막아주는 효능이 있다고 한다. 이어 만물상이다. 금강산이나 가야산의 만물상에 비교하랴 마는 그래도 섬 산행의 즐거움을 배가해 주니 반갑다.
# 다도해 최고의 비경 승봉산
승봉산 정상이다. 산악회 일행 20여 명이 번갈아 가며 기념 촬영하기에 바쁘다. 인증샷을 하면서 한결같이 ‘전망 최고’라고 치켜세운다. 사방을 둘러보니, 과연 진도 조도의 도리산전망대에서 바라보는 다도해 풍광과 겨룰만하다. 북쪽으로는 자은도 두붕산과 자락의 휘하의 섬들이, 서쪽으로는 추봉도와 멀리 비금도, 도초도가 눈썹 모양으로 희미하게 조망된다. 맑은 날에는 멀리 우이도까지 보인다고 한다.
의자에 앉아 한참 다도해의 풍광에 빠져있다가 하산 기점인 노만사로 향한다. 암릉 사이로 조심스레 내려서니 우측으로 은암대교 건너 지난 2021년 자은도 트레킹을 하면서 올랐던 두봉산이 한눈에 들어온다.
등산로 옆 마른 수풀 사이로 흰 노루귀와 생강나무꽃 등이 여기저기 피어있다. 수곡고개까지는 키 작은 소나무 숲길을 따라 계속 내리막이다. 수곡고개에는 쉼터가 있어 쉬어가기 좋은 장소다. 힘에 부치면 시멘트 임도를 따라 왼쪽으로 30분 정도 진행하면 수곡리에 도착한다.
노만사를 가려면 큰봉산(223m)을 넘어야 한다. 사스레피나무 군락을 이룬 숲을 20여분 지그재그로 치고 오른다. 숲이 지나온 승봉산보다는 울창해 여름철엔 햇빛을 피하기에 좋을 것 같다.
큰봉산은 정상석은 누군가 나무에 붙여놓은 표지판이 대신한다. 시야가 막혀 있어 이렇다 할 조망은 없다. 여기서부터 한동안 평편한 길이 이어진다. 노만사 도착 200여m 지점에 ‘마당바위(다도해전망대)’가 있다.
암태도의 부속섬들과 추포도, 자은도가 만들어낸 서쪽 다도해의 풍광을 볼 수 있는 곳이다. 또한 썰물 때면 광활한 갯벌이 이어져 사진작가들이 자주 찾는 포인트로, 수곡리에서 노만사로 바로 올라오면 쉽게 접근할 수 있다.
# 이슬이 모여 약수를 이룬 곳, 노만사(露滿寺)
마당바위 지나 조금 내려오면 오리가 한 마리가 바다를 바라보고 있는 듯한 모습의 ‘오리바위’를 지난다. 그 아래쪽에 신안군 제1호 향토유적 전통사찰로 지정된 노만사가 있다. 해남 대흥사의 말사(末寺)로 1873년에 창건된 작은 사찰이다. 일제강점기 말엽에 석조로 지은 대웅전 건물이 독특하다.
대웅전 뒤편에는 신비로움이 가득한 약수터가 있다. 높이 솟아 있는 바위틈에서 떨어지는 물방울이 고여 샘을 이루는데 위장병에 특효가 있다고 한다. 사찰건립 이후 수차례의 큰 가뭄을 겪었으나 한 번도 마른 적이 없다니 신비의 샘이라 해야겠다.
노만사라는 절 이름도 약수가 떨어지면서 이슬같이 가득하다는 데서 연유했다고 전한다. 주지 스님 대신 꼬리를 치며 반기는 노만사의 두 마리 강아지를 뒤로하고, 콘크리트포장도로를 따라 20여 분이면 내려오니 수곡리다.
〔승봉산 트레킹 코스〕
o 1코스 : 암태중학교~285봉~부처손 군락지~만물상~승봉산~203봉(두봉산 조망대)~ 수곡고개~큰봉산 ~마당바위~오리바위~노만사~노만사 입구(약 7km, 중급, 3시간 30분)
o 2코스 : 암태중학교~285봉~부처손 군락지~만물상~승봉산~203봉(두봉산 조망대)~수곡고개~임도
~ 노만사 입구(약 6km, 초중급, 3시간)
* 수곡리에서 암태중학교까지는 3km 남짓. 택시 요금은 9000원이다.
# 암태도 가볼 만한 곳
□ 암태도 등대
1913년 일제강점기에 신설된 암태도등대는 서남해 해역의 복잡한 수로에서 선박의 안전 길잡이 역할을 하고 있다. 등대는 외부지름 2.8m, 높이 7m 단층의 백색 원형의 구조이다. 상단의 등화는 4초 주기로 점등되며 약 13km까지 불빛을 비춘다. 오도선착장에서 600여m 북쪽에 위치해 있다. 왕복 1.2km로 20여분 소요된다.
□ 송곡리 매향비(埋香碑)
매향비(埋香)이란 미래 구복적인 성향이 강한 미륵신앙의 한 형태로 향나무를 묻는 민간불교 신앙의례를 말하는데 향나무를 민물과 갯물이 만나는 지역에 오래 묻었다가 불교의식용 혹은 약재 등으로 사용했다 한다. 그 매향의 시기와 장소, 관련 인물들을 기록한 것이 매향비인데 암태도 송곡리 매향비는 2004년 시도기념물 제223호로 지정됐다.
□ 추포도(秋浦島) 노두길
추포도와 암태도 수곡리 사이에는 갯벌 위에 설치한 징검다리 노둣길이 놓여 있다. 길이 2~3m 총 2.5km에 이르는 노두는 주민들이 오래전부터 돌을 쌓고 사이에 자갈을 채워 전천후 바닷길 구실을 해왔다. 2021년 3월 추포대교가 개통되어 지금은 엣 노두의 흔적들을 육안으로 볼 수 있다. 추포도에는 암태도 유일의 해수욕장이 있으며 일몰명소로 이름나 있다.
□ 에로스박물관
이곳은 서각과 성(性)을 테마로 한 ’에로스 서각 박물관‘이다. 천사대교가 개통되면서 관광객들에게 이색 볼거리 제공 차원에서 2016년 개관했다고 한다. 폐교된 암태동초등학교 건물을 리모델링하여 이색적인 박물관으로 건립했다. 관람료는 성인 5000원이다.
□ 암태도 경유 가볼 만한 명소
자은도 분계해수욕장은 200~300년 된 해송군락지가 매우 아름답다. 특히 ‘여인송’은 늘씬한 미인이 물구나무서 있는 모습의 나무다. 그 외 1004뮤지엄파크, 무한의 다리, 둔장미술관 등이 있다. 안좌도 김환기 생가도 많이 찾는다. 김환기 생가에서 조금 더 가면, 유엔세계관광기구(WTO)가 세계 최우수 관광지로 선정한 ‘퍼플섬’이 있다. 암태도 남강선착장에서 여객선을 타면 비금도, 도초도도 갈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