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섬트레커 Apr 22. 2024

충남의 제주도, 부러울게 없는...보령 장고도

-[섬여행](108)


섬으로 가는 길은 늘 에움길이다. 풍랑이 거세거나 해무가 짙으면 여객선의 운항은 중단된다. 섬에 간다고 해도, 물때가 맞지 않으면 섬의 속살을 보지 못한다. 썰물 때라야 명소를 볼 수 있는 섬들이 많다. 그래서 섬으로 가는 길은, 늘 더디고 기다림이다. 어쩌면 섬 여행이 주는 매력이다. 보령의 섬들인 삽시도와 고대도외연도, 그리고 이번 장고도는 이렇듯 느림의 연속이었다.


고대도와 함께 태안해안국립공원에 속한 섬


충남 대천항에서 서북쪽으로 21㎞ 떨어진 장고도는 면적 1.5㎢, 해안선 9.5㎞의 아담한 섬이다. 보령시 오천면사무소에 의하면 3월 말 현재 121세대 223명이 거주하고 있다. 섬 모양이 멀리서 보면 장구처럼 생겼다 해서 장고도라 불린다. 고대도와 함께 태안해안국립공원에 속한다.

장고도 전경

섬에는 이렇다 할 큰 산은 없으나 50~60m급 봉우리들이 구릉지를 형성하며 여기저기에 송림을 형성해 놓았다. 북서풍은 바닷모래를 밀어 올려, 섬 북쪽에 모래사장도 만들었다. 그래서 남녀 누구나 시나브로 섬 한 바퀴를 돌기에 그만이다. 지하수도 풍부해 현재도 200마지기가량의 논농사를 짓는다. 5~7월에는 마을 뒤 염전에서 천일염을 생산하기도 한다.

장고도 염전

그러나, 장고도 주민들의 가장 큰 수입원은 바다다. 주변 해역은 수심이 낮고 갯벌과 암초 등이 잘 발달되어 바지락, 해삼, 전복은 물론 멸치, 까나리, 갑오징어 등 연안 어족이 서식하기에 좋다. 섬이 제주도만큼이나 아름답고 해산물이 풍부하다 하여, 사람들은 장고도를 ‘충청남도의 제주도’, 또는 ‘황금의 섬’이라 부른다.


매월 사리 때 마을주민들 바지락 캐기에 분주


봄기운이 한층 더해가는 주말, 대천항에서 아침 7시 20분에 출발한 여객선을 타고, 8시 30분 장고도 대멀선착장에 도착한다. 일시 북적이던 선착장은 승객들이 저마다의 목적지로 빠져나가자 금세 한산해진다. 선착장에 덩그러니, 여객(旅客)과 등산복 차림의 부부만 남았다. “어디서 오셨느냐?” 물었더니, “대구에서 왔다”고 한다. 예전에는 산을 많이 다녔는데 나이 들면서 섬이 좋아져, 신안의 섬들을 두루 다녔다고 한다.

대멀선착장에서 바라본 장고도 남서쪽 해안

장고도 트레킹은 대멀선착장에서 시계 방향이든 시계 반대 방향이든 상관없이 진행해도 된다. 그래도 장고도의 명소인 명장섬을 제대로 탐방하기 위해서는 최대한 썰물에 도달하면 좋다. 


선착장에서 남서쪽 해안로를 따라 10여 분 걷던 중, 경운기 주변에서 서성거리는 어르신 4분을 만났다. 모두 80대로, 바지락을 캐러 가기 위해 바닷물이 빠지기를 기다리고 있다고 한다.

바지락을 채취하기 위해, 썰물을 기다리고 있는 장고도 주민들

장고도에는 어촌계에서 관리하는 바지락양식장과 마을주민 누구나 채취할 수 있는 바지락 밭, 그리고 외지인이 체험할 수 있는 바지락 밭이 구분되어 있는데 마을 주민이 채취하는 바지락 밭에 가는 분들이다. 

장고도선착장의 등대

어르신들을 뒤로하고, 장고도선착장(방파제)으로 향한다. 장고도에는 인근 섬 삽시도처럼 선착장이 두 군데가 있다. 썰물 때는 ‘대멀선착장’에 밀물 때는 마을 앞 ‘장고도선착장’에 여객선이 접안한다. 선착장(방파제) 끝에는 등대가 있는데 이곳에서 보는 장고도 마을은 한없이 평화롭고 고즈넉하기만 하다.


장고도 해안을 따라 이어진 백사청송(白沙靑松) 일품


장고도 남서쪽 해안 둘레길은 선착장 옆 산길로부터 시작된다. 진달래와 산벚꽃이 분분히 떨어진 해안 길 너머로 고대도의 선바위가 보인다. 그리고 그곳에서 조금 더 진행하니 배의 돛처럼 보이는 바위, ‘돛단여’가 선명하게 다가온다. 돛단여는 만조 때 멀리서 보면, 옹진 굴업도 앞 선바위처럼 보이기도 한다.

(사진 위) 장고도에서 바라본 고대도 선바위. (사진 아래) 장고도~삽시도 사이의 돛단여

마을로 다시 돌아와 염전길로 들어선다. 염전을 지나 해안에 이르니, 당너머해수욕장이다. 바닷물은 어느새 해변에서 500~600m 남짓 빠져있다. 단단한 모래와 삐죽한 갯돌들이 섞인 갯벌 위로 몸을 드러낸 해조류들이 한 폭의 수채화를 그려낸다. 이곳은 장고도어촌계의 해삼과 전복양식장이기도 하다.

(사진 위) 썰물 무렵의 장고도 북쪽 바닷가. (사진 아래) 바지락 캐는 섬 주민


당너머해수욕장에서 마을 길로 돌아와 명장섬으로 가야 하나, 내친김에 깊숙이 조간대를 드러난 해변을 따라 명장섬해수욕장으로 진행한다. 해수욕장 끝 지점에는 오랜 세월이 빚어낸 멋진 시 아치(sea arch) ‘용굴바위’가 있었다. 강홍삼 이장에 따르면, 한때 장고도의 얼굴이나 다름없던 이 용굴바위는 태풍 매미가 왔을 때 산 전체가 내려앉으면서 사라지고 지금은 일부 흔적만 남아 있다고 한다.

(사진 위) 옛 용굴바위(코끼리바위) 모습=보령시 제공. (사진 아래) 현재 용굴바위의 흔적

어느새 명장섬에서 직선거리로 가장 가까운 해안에 접근한다. 우측으로는 명장섬과 명장섬해수욕장을 연결하는 바닷길이 하얀 띠처럼 보인다. 모래와 자갈밭이 만들어낸 길로, 자동차가 다녀도 빠지지 않을 만큼 단단하다.

당너머해수욕장 끝에서 바라본 명장섬 모습

‘용굴바위’는 사라졌지만, ‘명장섬’은 여전히 장고도의 얼굴


명장섬 가는 길 양옆으로도 마을주민들이 나와, 삼삼오오 바지락을 캐고 있다. 연신 호미질을 하고 있는 60대 초반의 섬 주민을 만났다. 앞 양동이에는 캐낸 바지락으로 절반 이상이 채워져 있고, 뒤에는 이미 채취한 바지락을 묶어 놓은 한 뭉치의 그물망이 있다. 아주머니에 의하면, 채취한 바지락은 중간 수거상을 거쳐 대천해수욕장 일대 식당에 납품된다고 한다.

(사진 위) 명장섬 주변에서 바지락 캐는 모습. 멀리 태안반도가 보인다

장고도 바지락은 매월 사리 때(6~11물) 채취하는데 한 사리에 보통 40~50만원의 수입을 올린다고 한다. 여기에 어촌계원들은 어촌계가 운영하는 바지락, 해삼, 멍게 양식장에서 별도의 수입을 배당받는다. 장고도를 왜 부자 섬이라고 하는지 짐작이 간다.

명장섬 해식동굴

명장섬은 작지만 볼 것이 많다. 섬 서쪽에는 이무기가 승천하기 위해 백여 년 동안 수도했다는 '용난바위'가 있고, 그 옆에는 아름다운 해식동굴이 있다. 또한 명장섬 퇴적 단층은 오랜 세월 지각변동이 선명하게 드러나 있어, 지질학적으로도 특화하면 매력적인 관광자원이 될 것 같다.

명장섬 퇴적단층

장고도는 200년 전부터 내려오는 전통민속놀이인 '등바루놀이'로도 유명하다. 음력 정월 대보름을 전후해 마을 처녀들이 굴과 조개를 캔 뒤에 함께 모여서 흥겹게 놀았던 놀이문화다. 등바루놀이는 명장섬 인근 바닷가에 크고 작은 돌들을 주워다가 등바루라 부르는 둥근 돌담을 쌓는 것부터 시작한다. 돌담은 안으로 사람들이 드나들 수 있도록 바다 쪽을 향해 1m를 터놓는다.

해변 송림에서 바라본 명장섬

200년 내려오는 전통민속놀이 ‘등바루놀이’


이튿날, 동이 트기 전에 마을 처녀들은 작업복을 입고, 어물채취 도구와 한복 등 필요한 소품을 가지고 돌방에 모인다. 그리고 바닷가로 나가 굴을 채취하며, 누가 더 큰 것을 채취했는지 내기를 하기도 한다. 이후 돌방으로 돌아온 처녀들은 한복으로 옷을 갈아입고, 모래사장으로 나가 각종 노래를 부르며 흥겹게 놀다가 해 질 무렵에야 돌방을 허물고 집으로 돌아갔다.

등바루 실물모형

예전에는 명장섬 해안가에 실제로 등바루가 있었으나 사라지고, 현재는 대멀선착장 인근에 실물모형의 등바루를 만들어 놓았다.

장고도 북쪽 둘레길

명장섬 해변에서 대멀선착장으로 가는 해안길 또한 걷기에 좋다. 해변 소나무 숲에는 여름이면 피서객들이 많이 찾는다. 명장섬 일몰은 서해안에서도 몇 손가락 안에 든다는데 뱃시간에 쫓겨 보지 못하고 다음을 기약한다.




1) 위 치

    o 충남 보령시 오천면 삽시도리


2) 가는 방법 : 대천항여객선터미널↔장고도

    o 대천항→장고도 : 1일 3회(07:20, 13:00, 16:00)

    o 장고도→대천항 :           (08:30, 13:00, 17:00)

      * 예약 : 여객선 예약 예매 '가고 싶은 섬' 홈페이지

        ☎ 전화 : 신한해운 (041, 934-8772)

대멀선착장에서 여객선을 기다리는 승객들

3) 장고도 트레킹(난이도 중)

    o 해안 종주길 (8.5km, 4시간 30분)

       대멀선착장→장고도마을→장고도선착장→해안 송림길→장고도마을→염전→당너머해수욕장→

       명장섬해수욕장→명장섬→대멀선착장

    o 장고도 둘레길(2km, 2시간)

       대멀선착장→명장섬해수욕장→명장섬→대멀선착장

       * 명장섬까지 트레킹 하려면 썰물 때에 맞춰가야 함.


4) 체험 및 숙박

    o 장고도어촌체험마을(www.장고도어촌체험마을.kr)/010-9401-2867

    o 장고도 그물체험(지혜네 민박 041-931-8808)

    o 숙 박 : 마도로스민박(010-9405-1098), 여객선 매표도 겸함.

                강동펜션(010-9415-3074), 태양펜션(010~2644~4314)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