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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섬트레커 May 10. 2024

고양이를 부탁해...통영 용호도

- [섬여행](109)


'고양이 반려 섬'으로 특화되고 있는 섬


고양이에 대한 비호감을 떨치게 된 계기는 프랑스 작가, 장 그르니에의 ‘고양이 물루’를 읽고 난 후부터다. 그의 에세이 「섬」에 고양이 물루 이야기는 이렇게 시작된다.


“짐승들의 세계는 온갖 침묵과 도약들로 이루어져 있다. 나는 짐승들이 가만히 엎드려 있는 모습을 바라보는 것을 좋아한다. 그때 그들은 대자연과 다시 접촉하면서 자연 속에 푸근히 몸을 맡기는 보상으로 자신들을 살찌우는 정기를 얻는 것이다.”

용호도 고양이 분양센터의 고양이

우리나라에 고양이가 들어온 시기는 9세기 전반으로 추정한다. 완도에 청해진을 두고, 중국-신라-일본을 무대로 해상무역을 하던 장보고 선단에 의해, 중국에서 신라로 넘어왔다는 것이다.

고흥 애도의 고양이 포토존

국내 섬 중에 고양이를 컨셉으로 관광객을 불러 모으는 곳은 고흥 애도이다. 그런데 최근 고양이 반려 섬으로 특화하여 주목받고 있는 섬이 있다. 바로, 통영 용호도-. 통영시는 지난해 9월, 용호도에 전국 최초로 ‘공공형 고양이 보호 분양센터’를 조성했다. 통영시에서 유기된 길고양이나 아픈 고양이들을 구조해 이곳에서 새 삶의 터전을 제공해 주고, 추후 원하는 가정에 분양해 주는 역할을 한다.


2018년 용초도에서 '용호도'로 이름 바꿔


한산도, 추봉도와 함께 통영시 한산면에 속한 용호도는 통영항에서 여객선으로 40여 분 거리에 있다. 섬의 최고봉인 수동산(秀東山, 192m) 기슭에 용머리 풀이 많이 자생하고, 섬의 형상이 용과 호랑이가 싸우는 모습 같다고 하여, 용호도라 이름 붙여졌다. 섬에는 마을이 두 개인데 용초마을은 큰 마을과 작은 마을이 있고, 호두마을은 섬의 동쪽 끝에 위치해 죽도와 마주하고 있다.

(사진 위) 여객선이 용호도 용초마을에 도착하고 있다. (사진 아래) 섬의 안내도를 보고 있는 관광객들

섬의 이름은 원래 용초도였다. 그런데 용초도란 지명이 용초마을만 대변하는 듯하여, 호두마을이 주민들의 소외감이 컸다고 한다. 이에 섬 주민들의 건의를 받아들여, 국가지명위원회는 2018년 2월 용호도(龍虎島)로 섬 이름을 변경했다. 용초마을에서 ‘용(龍)’자와 호두마을에서 ‘호(虎)‘자를 따서, 새 이름을 정한 것이다.


6.25 당시, 전쟁 포로수용소가 있던 용호도


그런데 한려수도 해상에서 평화롭게만 보이는 용호도는, 현대사의 비극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다. 용초마을 선착장에서 가장 먼저 눈에 띄는 것은 한국전쟁포로수용소 유적지 안내문이다. 포로수용소 하면, 흔히 거제도를 떠올리지만 통영의 추봉도와 용호도에도 포로수용소가 있었다. 현재 용호도에는 급수장, 한국군 근무지, 저수지 및 댐, 제3구역 수용동 등 20개소의 포로수용소 유적지가 남아있다.

(사진 위) 포로수용소 가는 길. (사진 아래) 포로수용소 한국군 막사 유적

용초마을 선착장에서 왼쪽 해안도로를 따라 조금 걸으면 팔각정이 나오는데, 이곳에서 포로수용소 유적까지는 가파른 시멘트 임도를 따라 500여 미터 오르면 된다. 용호도 포로수용소는 1952년 6월에 설치돼, 1954년 4월까지 약 3년 동안 유지됐다. 포로수용소가 설치되면서 용호도 주민들은 갑작스럽게 한산도 진두를 비롯해 여러 마을로 흩어져 수용되는 고통을 겪었다.

용초 큰 마을 전경. 한국 전쟁 당시 갑작스럽게 포로수용소가 설치되면서, 섬 주민들은 인근 한산도의 여러 마을로 흩어져 수용되는 아픔을 겪었다

용호도 수용소는 세 구역으로 나뉘어 있었는데 외곽경비는 한국군이, 행정 및 관리책임은 미군이 맡았다고 한다. 1952년 6월 30일부터 거제도에 있던 북한 인민군 장교와 사병 8040명이 이곳으로 이송되었다. 그리고 1953년 4월과 9월, 두 차례로 나뉘어 북한으로 송환됐다. 이어, 1953년 8월 5일부터는 북한 포로수용소에서 귀환한 국군포로들이 이곳에 수용되어, 사상 교육과 군사훈련을 받은 후 재입대하거나 귀향했다.

(사진 위) 포로수용소 오르는 길에 바라본 통영 미륵도. (사진 아래) 용호도 수동산 정상


용머리해안의 황금바위...여수 개도의 청석포와 견줄 만


포로수용소 유적지를 거쳐 수동산 정상까지 트레킹 하고 난 후, 섬의 최고 명소인 ‘용머리해안’으로 향한다. 해안은 크고 작은 갯돌들이 펼쳐져 아름답다. 바다에는 강태공들을 실은 낚싯배가 옅은 해무 속에 떠 있고, 그 너머로 멀리 무인도인 소지도가 보인다. 그리고 우측으로는 ‘산호빛 모래시계의 섬’으로 이름난 비진도가 손에 잡힐 듯 다가온다.

(사진 위) 황금바위에서 동쪽으로 바라본 풍경. (사진 아래) 황금바위에서 바라본 비진도

용머리해안 남서쪽 끝에, 황금바위가 있다. 군데군데 황금빛을 한 바위가 많아 황금바위로 불린다. 여수 개도의 청석포처럼 여러 장의 너럭바위가 층을 이루고 있어 웅장하기 그지없다. 평소 백패커와 낚시객들이 자주 찾는 곳으로, 한쪽에는 낚시할 때 사용하는 것으로 보이는 나무의자도 보인다.

용초 작은 마을에서 고양이 분양센터로 가는 해안 길

황금바위에서 에메랄드빛 한려수도를 바라보며 한참 멍을 때린 후, 다시 용초마을로 되돌아온다. 그리고 해안도로를 따라 ‘고양이 보호 분양센터’를 향해 걷는다. 동네 수산물 보관 창고 외벽에는 고양이를 타일로 형상화한 ‘아트월(Art Wall)’이 인상적이다. 그곳에서 30여 분 느릿느릿 걷다 보니, 바닷가 모래 언덕에 있는 고양이 보호센터에 도착한다.


영화 ‘국화꽃 향기’ 촬영장, 옛 용호분교 터


고양이 보호센터는 옛 한산초등학교 용호분교 터에 자리 잡고 있는데 바닷가 백사장과 운동장이 마주하는 아주 낭만적인 곳이다. 실제로 밀물 때 파도가 치면 물보라가 교실의 창문에 물방울을 남길 정도였다고 한다. 위암으로 죽음을 앞둔 연인이 마지막 찾은 곳, 바로 이곳에서 2003년 개봉된 장진영과 박해일 주연의 영화, ‘국화꽃 향기’가 촬영됐다.

(사진 위) 용호도 고양이 분양센터. (사진 아래) 고양이 분양센터에서 바라본 한산도(좌측)와 추봉도(우측)

그런데 그 후 태풍 매미가 용호분교를 덮쳤다. 영화 촬영지였던 학교는 바닷물에 침수되는 피해를 보았고, 다시 신축됐지만 2012년 3월 학생 수 감소로 폐교되고 말았다. 그 후 10여 년째 방치되어 있던 것을 통영시가 리모델링을 통해 '고양이 보호 분양센터’로 탈바꿈시켰다. 아이들 웃음소리가 사라진 아쉬운 공간에 그나마 고양이들의 울음소리가 있어, 찾는 이들에게 즐거움을 주고 있다. 모두 통영시 관내에서 보내온 건강상태가 좋지 않았던 길고양이들이다.

고양이 분양센터 내부

이곳에서 고양이를 보살피는 집사는 현재 3명으로, 통영시 소속 관계자들이다. 최대 120마리까지 수용할 수 있는 시설에는 현재 20마리 정도가 머물고 있다. 함께 있던 30여 마리는 새 가족을 만나, 전국으로 분양되었다고 한다. 집사들의 보살핌 덕분인지 고양이들의 모습에서는 윤기가 흐른다. 집사들은 주말이면 서울, 대구 등지에서 바다 구경 겸 고양이를 보려고 오는, 가족 단위의 관광객들 맞이로 분주하다.

고양이 분양센터에서 호두마을 가는 길. 사진 가운데에 죽도가 보인다

고양이 보호센터를 나와, 우측 해안도로를 따라 섬의 동쪽 끝 호두마을로 향한다. 좌측에는 추봉도가, 정면으로는 멀리 거제도 망산이 바라다보이는 아름다운 해안 길이다. 호두마을에 도착해, 마을 뒤 ‘폭풍의 언덕’이라 이름 붙여진 해변으로 향한다. 몽돌과 바다가 잘 어우러진 해변인데 이름과는 달리 평온하기 그지없다.

호두마을 '폭풍의 언덕' 해변

1) 위 치

    o 경남 통영시 한산면 용호리


2) 가는 방법 : 통영항여객선터미널↔용호도

    o 통영항→용초(선착장) : (07:00, 10:30, 14:30)

    o 호두(선착장)→통영항 : (12:10, 16:10)

      * 예약 : 여객선 예약 예매 '가고 싶은 섬' 홈페이지

        ☎ 전화 : 한산농협 (055-641-5366, 5361)

호두마을 전경

3) 용호도 트레킹 (난이도 하, 8km, 3시간)

    o 용초항(용초마을)-해안가-임도-포로수용소 삼거리-수동산 정상-포로수용소 삼거리

      -용머리해안-용초마을-해안도로-고양이센터-폭풍의언덕-호두항(호두마을)

용호도 안내도. 하지만 수동산~호두마을, 수동산~고양이 분양센터, 호두산 트레킹 길은 정비되지 않아서 진행이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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