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섬여행] (110)
삼 년 전 여수에서 쾌속선으로 2시간 거리의 손죽도에 도착해 트레킹에 나선 적이 있다. 찔레꽃 향기 그윽한 섬을 한 바퀴 돌고 난 후, 여객선터미널에서 여수행 배를 기다리다가 50 후반으로 뵈는 한 아저씨를 만났다. “어디 다녀오시느냐?” 물었더니, “소거문도”라고 답한다.
소거문도는 국가에서 운항비를 보조하는 ‘섬사랑호’(57톤)을 타고, 손죽도에서 20여 분 더 가야 하는 낙도(落島)이다. 포항에 산다는 아저씨는 연휴를 이용해 고향 빈집에 종종 들렀다 간다고 했다. 한때는 학생 수가 40여 명에 이를 만큼 섬에 사람들로 북적였는데 지금은 예닐곱 가구만 남았다고.
손죽도에서 섬사랑호를 타고 가는 섬은 소거문도 외에도 평도와 광도가 있다. 전남 여수시 삼산면에 속한 이들 세 개의 섬을 흔히 ‘여수 오지의 섬’이라 부른다. 이들 섬들을 언제 가보나 벼르던 차에 여수 박근세 사진작가의 배려로, 광도와 평도를 다녀오게 되었다.
# 갈수록 거칠어지는 파도 위에 우뚝 선 섬
최근 여수~거문도 항로에 새로 투입된 ‘하멜호’는 이전 쾌속선에 비해 승선감이 좋으면서도 빨랐다. 아침 7시 55분 여수항을 출항해 나로도를 거쳐 9시 10시쯤 손죽도항에 도착한다. 손죽도에서 광도로 가는 섬사랑호는 오후 3시 30에 출발한다. 하지만 일행은 별도의 배편을 타고, 곧장 손죽도에서 남동쪽으로 17.6㎞ 떨어진 광도로 향한다.
연일 계속되는 폭염 때문인지, 바다도 비교적 잔잔하다. 그러나 배가 소거문 인근 배바위 지나 광도에 가까워질수록 파도는 점차 거세지기 시작한다. 마치 황천(荒天) 시 운항처럼, 파도가 선수를 덮쳐온다. 광도 주변 해역이 바람의 나라임을 바다는 새삼 일깨워 주었다.
바다 한가운데 우뚝 솟은 바위섬 광도는 해안선 길이가 500여 m에 불과한 작은 섬이다. 1917년경 입도조(入島祖)가 들어왔으니, 인근 손죽도나 평도에 비해 개척이 늦은 셈이다. 섬에 들어온 사람들은 섬 7부 능선쯤 되는 서쪽 사면에 삶터를 잡았다. 섬 최고봉 밑에는 쟁반 모양으로 완만한 지형이 형성되어 있는데 광도 사람들은 이곳을, 넓은 곳이라는 의미의 ‘너풀이’로 불렀다. 너풀이는 한자로 광도(廣島)가 되었다.
전성기 때는 20여 가구가 모여 살면서 소량의 고구마와 콩 등을 재배하는가 하면, 해안가나 주변 작은 무인도로 나가 돌김과 미역 등을 채취하기도 했다. 광도 밥상은 달래김치와 배말무침, 돌김, 물고기 등 모두 섬에서 얻은 것들로 채워졌다.
#광도의 얼굴이었던, 방 씨 할아버지 내외
손죽도에서 한 시간여 달려온 배는 급기야 광도 선착장에 도착한다. 선착장 방파제가 태풍으로 파손되어 접안 상태가 안 좋은 데다 너울성 파도가 심해, 배에서 내리는 일이 전쟁터나 다름없다.
선착장에는 이상훈 씨(65), 방영주 씨(70), 허종윤 씨(75) 등 세 분이, 마중 나와 일행을 맞는다. 모두 광도 태생이지만 지금은 여수에서 살고 있다. 보통 1주일에 1회꼴로 고향 집 관리 차원에서, 여수에서 광도를 찾는다고 한다. 이중 방영주 씨는 4년 전까지 광도를 지키다 돌아가신 방강준 할아버지의 아들이다.
방 할아버지는 젊을 적 어선 두 척을 통솔하며 만선으로 돌아온 적이 다반사였던 진정한 바다 사나이였다. 그런 그가 태풍으로 망가진 광도 선착장에 동력선을 띄울 수 없어, ‘스티로폼 통통배’를 직접 만들어 바다로 나가시곤 했다. 80이 넘어서도, 한나절에 쏨팽이 150여 마리를 낚아서 들어갈 정도로 노 어부의 내공은 빛났다.
할아버지 옆에는 항상 송봉순 할머니가 계셨다. 이웃 평도 출신인 할머니는 19세 때 광도로 시집와 5남매를 거뜬히 잘 키워 육지로 내보냈다. 광도 지킴이였던 방 씨 할아버지 내외의 삶은 ‘여름, 그 섬이 그립다’(KBS 다큐공감, 2015. 8. 29)에 방송되기도 했다. 현재 93세인 송 할머니는 건강이 좋지 않아 여수 요양원에 계신다고 한다.
할아버지 내외에 이어 광도를 최후까지 지키던 사람은 건강이 좋지 않아 요양차 서울에서 내려온 사람이었다. 이분은 4년 정도 광도에서 살다가, 올해 4월 몸을 회복해 서울로 떠났다고 한다. 그 후로 광도는 사실상 사람이 살지 않은 공도(公島)가 되고 말았다. 섬 소멸시대에 우리가 가장 우려하던 일이 벌어진 것이다.
#사방이 기암절벽, 남해바다가 품 안에
광도 선착장에서 가파른 바윗길을 낡은 모노레일로 타고 오르니 마을이다. 노후된 집 네댓 채와 지은 지 얼마 되지 않은 것으로 보이는 조립식 주택 예닐곱 채가 섞여 있다.
그런데 경치가 일품이다. 날이 좋으면 거문도 뒤로 제주도도 보인다. 마을에서는 그리스 산토리니에서 보는 에게해가 부럽지 않은 코발트 빛 남해바다가 품 안에 들어온다. 소거문도와 손죽도 너머로 지는 석양은 얼마나 또 얼마나 아름다울지, 상상만으로도 마음이 편안해진다.
그런 광도에 요즘은 섬사랑호는 거의 들르지 않는다. 광도에 오가는 사람들이 없기 때문이다. 섬의 생활환경도 불편 그 자체다. 전력과 상수도가 공급되지 않아 섬에 살려면, 태양광발전기와 우물물을 식수로 사용해야 한다.
무엇보다 문제는 좋지 않은 접안 시설이다. 선착장이 태풍으로 망가지면서 섬 주민들이 고기잡이에 사용하던 무동력선은 해안가에 방치되어 있다. 누군가 섬에 살려고 해도 특별히 할 일이 없는 것이다.
게다가 태풍이라도 불면 바람은 상상을 초월한다고 한다. 사방이 기암절벽, 넓은 바다에 덩그러니 솟은 광도는 온몸으로 바람을 맞아야 한다. 태풍이 오면 지붕이 날아간 것은 다반사다. 마당의 평상이 어디로 간지 모르게 날아간 적도 있다. 그래서 지붕을 함석으로 바꾸고, 그 위에 그물코처럼 로프로 지붕을 감싸고, 그 끝에는 물통이나 큼직한 돌멩이들을 달아 놓았다. 그런 날은 2~3일, 꼼짝없이 섬에 갇히고 만다.
#무인도로 전락한 광도가 지속 가능한 섬이 되려면
국책 섬 연구기관인 한국섬진흥원에 따르면 우리나라 464개 유인 섬(‘22년 말 기준) 중 인구가 10인 미만의 섬은 64개에 이른다. 이들 섬은 국가지원 사각지대에 있다. 현행법상 이들 섬은 개발대상 섬에서 제외되어 국가 예산 배분의 우선순위에서 밀리고 있다. 따라서 인구 10인 미만의 섬들은 광도처럼 향후 공도화 될 가능성이 크다. 섬진흥원은 향후 20년간 우리나라 섬 인구는 18.1% 줄어, 유인 섬 20개가 무인 섬으로 전락할 것으로 예측했다.
문제는 섬이 공도화 되면 모든 시설의 관리가 어려워 훼손될 가능성이 크고, 향후 이를 복구하기 위해서는 막대한 비용이 투입돼야 한다는 것이다. 섬 소멸은 그래서 국가의 손실로 이어지는 것이다.
섬이 소멸하기 전에, 국가는 섬 선착장 시설과 식수, 바람과 파도를 막아주는 방파제 정도는 마련해 주어야 한다. 그래야 육지의 집을 오가며 사는 섬사람들의 생활이 지속될 수 있을 것이다.
광도를 떠나기 전 선착장까지 배웅한 세 사람은 광도 선착장 정비에 힘을 보태달라며 호소한다.
“보시다시피 선착장이 망가져서 이틀 이상 이 섬에 머물 수가 없다. 섬에 사람이 거주하기 위해서는 제일 관건이 선착장 시설이다. 거기에 배를 끌어올릴 수 있는 인양기 시설 등이 추가된다면 오지 말라도 해도 사람들이 많이 몰려올 것이다. 접안 시설이 없기 때문에 섬이 비어 있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