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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섬트레커 Oct 13. 2020

포천 청계산에서 명지산까지

한북정맥 자락에서 왼종일 놀다

일 시 : 2014. 7. 27(일)

코 스 : 노채고개~청계산~귀목봉~명지3·2봉~명지산~사향봉~익근리 주차장

구간 및 산행시간 : 총 21km, 12시간 30분

교통편 :
- 갈 때 : 동서울터미널 포천 일동행버스(06 : 40분), 일동에서 노채고개까지는 택시이용(요금 7,000원)
- 올 때 : 익근리주차장에서 가평역까지 영업자가용(3만원)

누구와 : 집사람 


장거리 산행에 좋은 여름한껏 숲에 취해보자

오늘 산행은 한북정맥 노채고개에서 청계산~귀목봉~명지3·2봉~명지산~사향봉을 거쳐 가평군 익근리로 이어지는 총 21km 남짓 구간이다. 굳이 구간을 세분해 보면 노채고개에서 귀복봉 삼거리까지는 한북정맥, 귀목봉 삼거리에서 ~명지3봉 이후까지는 명지지맥에 속한다.

동서울터미널에서 아침 6시 40분 포천 일동행 버스를 타고, 일동에 도착하니 7시 30분이다, 다시 택시를 타고, 산행 출발지인 노채고개에 이르니 7시 45분쯤이다. 택시비는 7천원, 노채고개에는 동서울터미널에서부터 함께 온 중년의 남녀 두 분이 먼저 와 있다. 이분들은 나와는 반대방향인 노채고개 ~원통산~운악산~명지삼거리 구간을 산행한다고 한다.

시간으로 봐서는 아침 해가 떠있을 무렵이지만 장마철 하늘을 덮고 있는 두터운 구름 때문인지 해뜨기 전처럼 사위가 히뿌였다. 불어오는 바람 또한 시원하여, 마치 초가을 산행에 나선 기분이다.

노채고개에서 길매봉까지는 2,4km로 오르막이지만 그럭저럭 오를만하다. 뒤를 돌아 남서방향으로 내려다보니 저 아래 필로스 골프장의 잘 다듬어진 페어웨이와 그린이 보인다. 드문드문 페어웨이 위를 걸어가는 골퍼들의 모습에서 한가로움이 느껴진다. 태양이 구름사이로 잠시 얼굴을 내밀자 건너편 원통산 자락 준령들이 보였다가, 다시 구름 속으로 들어가자 산줄기들은 흔적도 없이 사라진다. 북쪽 방향의 청계산과 북동쪽 방향의 귀목봉, 명지산, 연인산 준령의 모습 또한 마찬가지다. 

작은 운악이라 부르고 싶은 암릉미 뛰어난 길매봉

약 1시간 반가량 오르니 길매봉(736m)이다. 정상에서 북동쪽을 바라보니 건너편에 청계산과 저 멀리 귀목봉, 명지산, 연인산 준령의 모습이 구름의 흐름에 따라 보였다가 사라진다. 자그마한 정상 표지석은 서울의 어느 산악회에서 세운듯한데 반 토막으로 중간이 갈라져있다. 길매봉은 한북정맥이 님진을 하며, 운악산을 일으키기 전 마치 예행연습을 해본 듯하다. 그런 탓에 동북쪽의 주능선은 작은 운악산이라 해도 손색이 없을 만큼 멋진 암릉지대다. 청계산 방향 등산로는 지금은 잘 정비되어 있지만 예전에는 크고 작은 사고가 많이 났을 것으로 예견될 만큼 아찔한 구간이 많다.

게다가 등산로는 거의 V자형으로 가파르게 떨어졌다가 다시 솟구친다. 동쪽 방향 들판에는 군 전차 훈련장인지 초록빛 대지위에 헤어핀 모양의 트랙들이 미로처럼 닦여 있다. 등산로 안부 좌측으로는 출입을 막는 철조망이 어른 키 높이 이상으로 쳐져 있다. 군데군데 부대장 명의의 출입통제 표지판이 보인다. 300여m 안부 구간의 둥산로는 앞으로 진행하기가 힘들 정도로 잡풀이 우거져있다. 행여 뱀이나, 벌의 공격을 받지나 않을까 우려하여 조심스럽게 수풀을 헤치고 지난다. 잡풀이 끝나는 지점부터는 가파른 오르막인데 전날 내린 비의 영향으로 땅은 질척거리고 바위는 미끄러워 진행하는데 예상 외로 많은 시간이 소요된다. 그렇게 해서 급기야 정상부와 연결되는 능선에 오른다. 


여름 청계산, 5~6년 전 겨울의 모습과는 완전히 달라

청계산(849m)은 피라미드 모양으로 우뚝 도드라져 있다. 청계산(광덕산)은 5~6년 전 겨울 청계저수지로부터 오른 적이 있다. 당시 8부 능선부터는 꽤 가팔랐던 것으로 기억되는데 눈이 많이 온 탓에 상당한 시간이 걸린 것 같다. 날씨가 흐려 조망 또한 전혀 없었다. 그래도 오늘은 가끔씩 조망을 할 수 있어 다행이다.

청계산에서 인증샷을 찍고, 간단하게 간식을 한 후 다시 귀목봉 삼거리를 향한다. 귀목봉 삼거리에서부터 귀목봉까지 1.2km 구간은 2주전에 도성고개~강씨봉~귀목봉~깊이봉~강씨봉 휴양림 코스를 하면서 지나갔던 길인지라 정겹게 느껴진다. 단지 다른 것이 있다면 그때에 비해 참취꽃이나 산나리꽃 동자꽃들이 이제 절정기를 지나고 있다는 것이다. 귀목봉 가는 중간에 우측 상판리 장재울 계곡으로 빠지는 등산로가 있는데 언젠가는 저 길도 가봐야겠다.

귀목봉(1,035m)에서 귀목고개(775m)까지는 1. 1Km 급경사 내리막이다. 귀목고개에서 점심을 할 생각으로 내려가니, 산행객 10여명이 이미 자리를 잡고 있어, 명지3봉을 향해 더 오르다가 적당한 장소에서 점심을 하기로 한다. 귀목봉 300여m 지난 그늘 밑에서 김밥으로 점심을 대신하고 하니 오후 1시 30분이다. 귀목봉에서 명지3봉까지는 약 1.5km로 가파른 오르막이다. 지나온 귀목봉이 마치 유명산 백운봉처럼 우뚝 솟아있어 청계산 방향에서 보는 귀목봉의 모습과는 다르다.   


명지3봉 인근에서 야생화와 희귀식물을 카메라에 담고 있는 노부부

끊임없이 이어지는 목재 계단과 철제계단을 올라 명지3봉(명지삼거리)에 이르기 바로 전에 각종 야생화와 식물을 카메라에 담고 있는 노부부를 만난다. 족히 70은 넘어 보이는데 높은 봉우리까지 올라올 수 있는 기력과 또한 부부가 하나의 취미를 갖고 몰두 할 수 있다는 것이 부럽게 느껴진다. 노부부에게 간단하게 수인사를 건네며 지난다.

드디어 도착한 명지3봉. 좌측으로는 명지2봉과 명지산이 우측으로는 아재비고개(1.6km)와 연인산으로 이어진다. 명지3봉에 올라 저 멀리 서남쪽을 바라보니 운악산, 청계산, 귀목봉이 그리고 동남쪽으로는 연인산과 그 산하의 줄기가 힘차게 뻗어나간다. 동북 방향 건너편으로 석룡산과 경기 제1봉 화악산이 잡힐 듯 보인다.

화악에 이어 경기 제2봉 명지산(1,267m)은 10여 년 전 인근리에서 계곡을 따라 초겨울 오른 적이 있는데 당시에는 비가 왼 종일 내려, 비에 젖은 생쥐모양이었다. 힘겹게 정상을 올랐으나 운무로 한치 앞이 보이지 않아 지금까지 내게 명지산은 안개속의 산이었다. 그러나 오늘은 어느 정도 조망이 좋아 다행이다.

아재비고개에서 연인산 구간은 산행은 다음차로 미루고, 오늘은 명지2봉을 지나 명지산으로 향한다. 명지3봉에서 명지산까지는 2.2km 정도이나 속도가 잘 나지 않는다. 집 사람이 무릎 에 통증이 온다며 제대로 걷지 못하기 때문이다. 너널 지대와 흡사한 구간이 많은데다 습기로 미끄러워 걸음은 더욱 더디다. 


천천히 걷다보니 이제야 보이는 동자꽃 산나리꽃 참취꽃

그러나 천천히 걷다보니, 속보산행 때 보지 못한 동자꽃 산나리꽃 참취꽃 등 야생화들을 느긋하게 구경하고, 맑고 고운 새소리도 흠뻑 듣는다. 특히 요즘이 뀅들의 번식기인지 숲속 미로를 따라 기어가는 퀭 새끼들을 많이 보았다. 또한 똬리를 틀고 용감하게 나를 향해 고개를 쳐든 살모사와 기 싸움도 벌인다. 그만큼 명지산의 생태가 좋다는 반증일 것이다. 이러구러 명지산 정상에 도착하니 오후 4시 30분쯤이다. 거기서 인증샷을 찍고 잠시 휴식을 취했다가 4시40분경 사향봉 방향으로 하산을 시작한다.

산은 정상이 높을수록 하산 길은 가파르다. 30여년 전 지라산 천황봉에서 북사면 칠선계곡을 따라 내려오는데 거의 50도에 가까운 급경사였던 것 같다. 명지산 정상에서 사향봉 거쳐 익근리 주차장까지는 7.9km다. 20여분 내려오다가 집 사람 무릎을 생각하여, 길가 바위에 걸터앉아 휴식을 취한다. 그때 가파른 된 비알을 치고 올라오는 한 산객이 모습을 드러낸다. 머리에는 모자 대신 하얀 밴드를 매고, 반팔에 반바지 차림이다. 검푸른 타원형의 선글라스를 끼고 있어, 정확한 외모는 볼 수 없지만 얼핏 보기에 60대 후반에서 70대 초반으로 보이는 노인분이다. 렉키 스틱에 장단지를 감싸는 등산용 스타킹을 신고 있는 것으로 보아, 초보 산객은 아닌듯하다. 


사향봉 가파른 하산 길에서 나이 80의 노(산객을 만나인생을 배우다

노 산객에게 ‘수고 많으십니다.’하며 수인사를 건넸더니, ‘어디서 오느냐’고 묻는다. 그래서 오늘의 진행방향을 말해줬더니, 잘 알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인다. 자신은 개이빨산 부근만 남겨놓고 한북정맥을 거의 마스터했으며, 또한 명지·연인지맥도 거의 섭렵했다고 한다. 그런데 사향봉 구간은 미답지여서 오늘 혼자 오르고 있다는 것이었다. 오늘 코스는 명지산~귀목봉을 거쳐 적목리로 내려갈 예정이란다.


내가 어르신 나이를 고려하여 ‘이 시각에 너무 늦은 것 아니냐’고 했더니, ‘야간산행이라도 해야지,,’하며 답하신다. 이어 묻지도 않았는데 “지금, 내 나이가 몇인지 아시오. 올해 팔십이요. 그런데 내가 해보니 등산만큼 좋은 운동이 없어요. 조금이라도 젊었을 때 더 할걸 하는 아쉬움이 남을 뿐이오. 우리 집 할머니는 올해 75세인데 집안에 누워있어요. 나는 1주일에 한 번씩 이렇게 꼭 산행을 나옵니다. 집에 있으면 답답하니까”하고 연이어 말씀하신다. 나는 할아버지 연세에 놀란다. 집사람도 믿기지 못하는 눈치다.

나도 모르게 박수를 치며 “어르신 참으로 대단하시고, 존경스럽습니다.”하며 진정으로 위로를 해 드리자,

“뭘 대단하긴. 등산이라기보다는 한 10분 걷다가 쉬고, 또 10분 걷다가 쉬고 하는 거지. 익근리 주차장에서 여기까지 4시간 30분 걸렸어.”

“내려가는 데는 얼마쯤 거릴까요?”

“응, 족히 3시간 30분은 잡아야겠지.”

선 자세로 호흡을 고른 어르신은 다시 발길을 재촉해 된비알을 오른다. 


내가 저 나이되면 과연 산행을 할 수 있을까? 또한 편한 등산로가 아니라, 전인미답의 험준한 등산로를 찾아 등산할 수 있을까? 정말 대단한 의지를 가진 할아버지다. 나는 마음속으로 할아버지가 오래도록 산행을 하기를 기원했다.

사실 인생이란 마음먹기에 따른 것 같다. 얼마 전 불러그를 검색하다가 89세 할아버지가 내 또래의 산객들에게 밀리지 않는 스피드로 등산을 하는 모습을 보았다. 인간의 신체적 조건은 각자 다르지만 젊었을 때부터 관리를 잘하면 90대 노 산객들의 출현도 결코 먼 얘기가 아닌듯하다. 


수백 년 고목비바람에 흙이 되어가는 모습 보니 인생은 너무 짧아

사향봉 1. 1km라는 이정표를 보고 내려오지만 사향봉은 어디에 있는지 쉽게 나타나질 않는다. 해발 1031m면 웬만한 산의 정상..거기서 주차장까지는 내리막이 계속될 것 같다. 숲은 원시림이다. 어른 서넛이 아름드리를 하고도 남을 고목이 세월에 쓰러져 둥그런 원통만 남아있다. 어떤 나무는 그루터기가 이제 흙이 되어가고 있다. 이런 자연 앞에서 인간은 한낮 초라해진다.

사향봉에서 이어지는 능선은 조망이 되지 않아, 마치 거대한 심해에 빠져있는 듯 그 종착역이 어딘지 짐작이 가지 않는다. 숲은 원시림으로 너무 좋지만 집 사람은 정상적인 걸음을 거의 걸을 수 없을 만큼 무릎 통증이 악화되어 숲을 감상할 여유가 없다. 부담을 덜어주기 위해 집사람의 배낭을 내가 멨지만 별효과가 없다.


더디게 크고 작은 봉우리를 오르내리다 보니, 사향봉(1,031m)이다. 사향노루가 서식하고 있어 그렇게 이름이 붙여졌다고 한다. 자료에는 사향노루뿐만이 아니라, 너구리제비 청솔모 등 일반 산에서는 보기 드문 야생동물들이 많이 서식하고 있다고 나와 있다.

사향봉에서 인증샷을 하려했지만 핸드폰 밧데리가 가물가물하여 그냥 지나친다. 사향봉에서 익근리 주차장까지는 4km 거리다. 길은 계곡 가파른 내리막과 듬성듬성 암릉지대가 이어진다. 이런 속도라면 익근리에서 가평터미널까지 가는 8시 20분 막차를 탈 수가 없을 것 같다. 등산로에는 어느새 어둠이 어슴푸레하게 내려앉았다. 길과 숲이 구분이 안 갈 정도다. 느낌이 이상하여, 신경을 곤두세워 보니 바로 앞에 어른 지팡이 굵기의 살모사가 똬리를 틀고 머리를 내쪽을 향해있다. 오늘 두 번째 보는 살모사로 소름이 끼친다. 잔뜩 긴장하여 스틱으로 땅을 여러 번 두드렸더니, 슬며시 머리를 돌려 숲속으로 사라진다. 명지산에 원래 뱀이 많은 건지, 냉혈동물인 뱀이 지열로 따뜻해진 대지에서 몸을 데우기 위해 나온 건지 알 수 없으나 불안한 마음에 헤드렌턴을 꺼내 쓴다. 


가평터미널행 8시 20분발 막차 놓쳤지만장거리 산행 무사히 마친데 감사

하늘을 향해 곧게 뻗은 잣나무들이 헤드라이트에 비친다. 산등성이 좌우로는 물 흐르는 소리가 세차게 들려오지만 등산로는 마치 물줄기와 경쟁하듯 길게 이어진다. 행여 버스시간에 맞추지 않을까 하여, 마치 무언가에 쫓기듯 황급하게 소롯 길을 내려온다. 집 사람은 무릎에 통증이 가중되었을 텐데, 무서운 인내로 참아내며 어서가자며 채근한다.

어느새 명지산 입구 가게의 불빛이 보인다. 드디어 도착한 익근리 주차장. 시간을 보니, 8시 25분이다. 가평터미널행 버스 막차가 떠난 지 5분 후였다. 조금만 더 서둘렀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몰려왔다. 하지만 아침 7시 50분부터 시작된 12시간 30분에 걸친 장거리 산행을 무사히 마친것에 감사하며 안도한다. 짐작컨대 오늘 코스는 성삼재에서 천왕봉 거쳐 중산리에 이르는 지리산 종주쯤에 해당하는 난이도였다.

가게에 들어가 간단하게 요기라도 하려했더니, 가게도 영업이 끝났단다. 가게에 택시를 부탁했더니 자기들 차량으로 가평역까지 가는데 3만원을 달라고 하여, 3만원을 지급한다. 가평역에서 9시 20분발 청춘 IRX를 타고 청량리에 도착하니 9시 50분이다. 청량리역 앞 식당에서 삼겹살에 소주 한 잔 하고, 중앙선 왕십리역에서 5호선을 갈아타고 집에 도착하니 밤 12시 20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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