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붕 없는 미술관’으로 알려진 전남 고흥의 연홍도를 여행하다 보면, 자꾸 눈길이 가는 곳이 있다. 바로 완도 금당도다. 바다 건너편에 설악산의 어느 능선을 압축하여 펼쳐놓은 듯한 금당도는 연홍도에 설치된 미술품들의 주요 배경이다.
금당도 초가바위/사진=완도군
‘지붕 없는 미술관’ 연홍도 미술품들의 배경이 되는 섬, 금당도
이런 금당도가 2021년 전라남도 '가고 싶은 섬 가꾸기 사업'에 선정됐다. 전남도는 8개 섬의 신청을 받아 섬 전문가들로 구성된 평가 위원들의 심사를 거쳐, 섬 고유 생태자원 및 매력적인 섬 문화를 간직한 금당도와 진도 금호도를 최종 낙점했다.
고흥 연홍도에서 바라본 금당도
이에 따라 전남도는 내년부터 매년 10억씩 5년 동안 50억을 두 섬에 지원하여 마을 경관 개선, 생태복원, 문화관광 자원 개발 등 특색 있고 차별화된 콘텐츠를 가미해 여행객들이 ‘가고 싶은 싶은 섬’으로 변화시킬 계획이다.
금당도는 면적 12.983㎢, 해안선 길이 37.4㎞로 1986년 완도군 금당면으로 승격됐다. 서쪽 최고봉 상랑산(220m)을 비롯해 봉지산(195m), 가학산(185m), 복개산(178m), 공산(138m) 등 비교적 기복이 심한 산들 사이에 마을이 형성되어 있으며, 현재 500여 가구에 1000여 명이 거주하고 있다. 사방으로 펼쳐지는 남해의 푸른 바다와 보석같이 박혀있는 주변 섬들을 구경하기 위해 전국에서 많은 등산객이 찾는다.
금당도 세포전망대에서 바라본 세포리해안과 비견도(우측)
또한 태초의 시간이 파도와 풍우로 빚어 놓은 해안 기암괴석(금당 8경)을 보기 위해 유람선 투어를 즐기는 여행객들도 많다.
금당도는 섬이 커서 하루 일정으로 산행과 유람선 투어를 병행하기는 어렵다. 따라서 먼저 트레킹을 한 후 나중에 유람선 투어를 할 요량으로 ‘가고 싶은 섬 사업' 추진위원장님께 전화를 드려, 트레킹 코스를 문의했다. 그랬더니, ‘차우리 공산 코스’와 ‘세포리 세포전망대 코스’를 추천해주신다. 더욱이 금당도에 오거든 연락을 하라는 친절한 말씀에 든든한 마음으로 녹동항으로 향한다.
세포전망대에서 바라본 고흥·완도 비취색 바다의 매력
녹동항을 출발 금당도로 향하는 여객선. 정면은 거금대교
아침 9시 15분, 차도선 ‘평화훼리5호’가 첫 기착지인 금당도 울포항을 향해 출발한다, 소록도와 거금도를 잇는 ‘거금대교’ 좌측으로 적대봉 정상이 운무에 가려져 있다. 이어 지난 4월에 다녀온 연홍도와 돌올한 기세로 바다 위에 병풍처럼 펼쳐진 금당도 사이를 지난 여객선은 10시 10분경 울포항에 도착한다.
추진위원장님께 전화로 도착 소식을 알렸더니, 본인의 차로 픽업하러 득달같이 달려온다. 먼저, 공산으로 올라가는 입구를 안내한 후 다시 차를 몰아 세포전망대 입구인 세포마을까지 달린다. 태양은 아침부터 이글거리며 작렬하는데 얼마나 고마운 일인지 모르겠다. 덕분에 금쪽같은 시간을 절약하고 체력 소모를 덜 수 있게 됐다.
세포마을에서 세포전망대 가는 길
세포마을 입구에서 세포전망대까지는 왕복으로 4km에 이른다. 이 코스는 금당적벽길로도 불리는데 400~500m 정도 시멘트 길을 걷다가 좌측으로 오르는 데크길부터는 임도로 이어진다.
하트전망대에서 바라본 비견도(가운데)와 멀리 고흥 거금도
중간에 하트전망대를 거쳐 세포전망대로 이어지는데 햇볕을 가릴만한 큰 그늘이 없어 땀이 비 오듯 쏟아진다. 그래도 조망이 좋아 마음을 다독이며 한발 한발 내딛는다.
세포전망대에 이르니 좌측으로 세포리와 그 너머 공산, 비견도가 보이고 정면으로는 고흥 거금도 적대봉과 김 양식으로 이름난 시산도가 조망된다. 또한 그 우측으로 여수시에 속하는 손죽도와 초도가 희미하게 보이고, 완도군 중도와 신도, 평일도가 펼쳐저 있다.
세포전망대 뒤 팔각정
세포전망대 뒤 팔각정 쉼터에 앉아 휴식을 취하며 생각해 보니, 금당 울포항에서 녹동으로 나가는 마지막 배가 오후 6시 20분임으로 잘하면 공산 트레킹까지 마치고 배로 금당 8경의 일부라도 돌아볼 수 있을 것 같다. 그래서 발길을 재촉하기로 한다.
세포전망대에서 바라본 완도의 섬들
세포전망대에서 조금 올라와 목섬 방향으로 내려섰다가 해안을 끼고도는 해변 코스가 있는데 이 코스를 돌게 되면 아무래도 시간을 많이 허비될 것 같아 원점 회귀하기로 한다. 그리고 세포마을에서 차우리로 향하는 도중 추진위원장님께 전화를 걸어, 금당도 유람을 주선해 줄 것을 부탁했더니 수소문해 보겠다는 답변이 돌아온다.
공산~면사무소 트레킹에 이은 남해 해금강 ‘금당 8경’ 유람
공산 오르는 길
이제 차우리고개에서 공산을 향해 오른다. 공산은 해발 138m로 그리 높지는 않으나, 금당도 사람들에게는 예로부터 성지로 여겨질 만큼 신성시되는 산이다. 가뭄이 들면 마을 사람들은 공산에 올라가 정성스레 기우제를 지내기도 했다.
공산 정상에서 바라본 시원한 풍광
가파른 암릉지대를 올라 공산 정상에 이르니, 발치 아래 금당도를 둘러싼 산들과 사면의 바다가 시원스레 조망된다. 공산은 마치 연꽃 봉우리처럼 둘러싸인 느낌이다. 공산을 지나 금당산(쟁그랑산)으로 향하는 도중, 점심 먹을 곳을 찾는데 바위지대에 해송들이 뿌리를 못 내려서 그러는지 키가 작아 그늘이 없다. 간신히 몸을 가릴만한 소나무 그늘을 찾아 그 아래에서 점심을 한다.
공산에서 금당산, 가학산으로 이어진 능선
공산에서 금당산까지는 거의 평탄한 길로 이어지다가 금당산 정상을 앞두고 고도를 높인다. 그러나 막상 힘들게 도착한 금당산 정상은 수풀로 우거져 조망이 없다. 등산로는 복개산, 가학산 방향으로 이어져 있으나 금당면사무소로 가는 해안 트레일을 걷는 게 목적이기에 1km 남짓 되돌아온다.
해변 전망대
깎아지른 병풍바위 위 해안 전망대는 제법 시원한 바람이 불어와 더워진 심장을 식히기에 알맞다. 발치 아래 바다 위로는 강태공을 태운 낚싯배 여러 척이 닻을 내리고 있다.
차우리항
파도소리가 귀를 맑게 하는 해안 트레킹로를 따라 차우리로 돌아오니 오후 3시 30분이다. 추진위원장님의 배려로 배를 타고 금당 8경을 유람하는 기회를 얻었다. 통상 고흥 금진항에서 출발하는 유람선으로 금당 8경을 구경하려면 2시간인데 낚싯배로 빠르게 돌면 1시간 정도면 족하다고 한다. 그러나 어느새 바람이 거세져 갈 수 있는 데까지만 가보자며 금당 1경으로 향한다.
조선 후기 문인 위세직, ‘금당도’의 승경 노래한 ‘금당별곡’ 남겨
완도신문에 의하면 현재의 '금당 8경'은 본래의 '금당 8경'과 다르다. 본래의 '금당 8경'은 조선 후기 학자이자 문인으로 송시열과 민정중의 가르침을 받은 위세직이 지은 ‘금당별곡(金塘別曲)’에 등장한다. 금당별곡은 배로 금당도를 유람하면서 느낀 소회를 서정적으로 노래한 일종의 기행가사인데 정철의 '관동별곡'에서 영향을 받은 것으로 보고 있다. 관동별곡이 관동지방의 승경을 대상으로 했다면 금당별곡은 남해 금당도의 승경을 대상으로 노래한 것이다.
현재의 '금당 8경'/자료=완도신문
금당별곡 '금당 8경' 중 1경은 공산제월(孔山霽月)로, 공산 위에 휘영청 뜬 밝은 달을 노래한 것이다. 2경 사동효종, 성산효종(寺洞曉鐘, 聖山曉鐘)은 '복개산' 기슭 절골에서 울려 퍼지는 새벽 종소리와 불경 소리가 적막을 깨뜨리며 정신을 맑게 한다는 것에 대한 감탄이다.
3경 기봉세우(箕峯細雨)는 세포리 목섬 금당적벽의 깎아지른 기암과 그 사이 나무들이 가랑비와 안개 위에 떠 있는 모습에 대한 감탄이며, 4경 울포귀범(鬱浦歸帆)은 울포로 돌아오는 만선의 돛단배를 노래한 것이다.
5경 적벽청풍, 교암청풍(赤壁淸風, 轎岩淸風)은 세포리 가마바위로 불어오는 청아한 바람을, 6경 화도모운(花島暮雲)은 한 덩이 구름처럼 떠 있는 진달래 꽃동산 같은 작은 섬의 모습을 비유한 것이다.
비둘기 집 모양의 바위
7경은 학령낙조(鶴嶺落照)로 황금빛 저녁놀이 비단처럼 깔린 해상의 곱디고운 자태를, 8경은 각암목적(角岩牧笛)으로 봉동리 뒷산 뿔바위 위로 들려오는 소먹이는 초동의 피리 소리에 대한 감흥을 읊은 것이다.
반면에 현재 유람선을 타고 관람하는 금당 8경은 금당도 해안에 펼쳐진 기암괴석으로 구성되어 있다. 병풍바위, 부채바위, 스님바위, 교암청풍, 금당적벽, 코끼리바위, 남근바위, 초가바위 등이 그것이다.
금당도 ‘가고 싶은 섬 사업’ 완료되면, 1박 2일로 다시 찾을 터
배를 타고 바라본 병풍바위. 가을 단풍철에 더욱 비경을 자아낸다
배를 타고 바람을 가르며 제1경인 병풍바위로 향한다. 마치 설악산 공룡능선의 한 자락을 보는 듯 거대한 암릉미에 감탄한다. 가을에 단풍 든 모습이 더욱 아름답다고 한다. 예전에는 봄이 되면 병풍바위 근방에서는 여인의 분내와 같은 향이 진동했다고 한다. 풍란이 뿜어내는 은은한 향기였으나 요즘은 외지인들의 손길로 그 자취를 감추어버렸다고 한다.
주상절리로 이뤄진 부채바위/사진=완도군
2경은 병풍바위 우측에 있는 부채바위다. 각을 이루며 기둥처럼 솟은 주상절리가 쥘부채를 둥그스레 펼쳐놓은 듯한 모습을 하고 있다.
예전 마을의 상여를 보관했던 바위
3경은 스님바위다. 바위가 둥글고 반질반질하여 마치 스님 머리를 닮았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상여를 올려놓은 듯한 상여바위의 모습도 보인다. 4경은 교암청풍이다.
하단이 시루떡 모습을 하고 있는 교암청풍
서루떡처럼 늘어선 아름다운 해안절경을 스쳐가는 청량한 바람이 오가는 관광객들의 마음까지 깨끗이 씻어준다. 지질학자들이 지질 연구를 위해 많이 찾는 곳이기도 하다. 5경은 금당적벽이다. 세포전망대 아래에 깎아지른 듯한 절벽이다.
금당적벽
6경 초가지붕을 얹어 놓은 듯한 초가바위와 7경 코끼리가 길게 바다에 코를 늘어뜨리고 있는 듯한 코끼리바위, 8경 남근을 닮은 남근바위를 구경하려면 소화도와 대화도로 가야 하지만 배가 바람을 견디기 어려울 듯하여 이것으로 유람을 마무리한다.
남근바위(가운데)와 코끼리바위(우측)/사진=완도군
추후, ‘가고 싶은 섬 사업’이 완료되고 나면 1박 2일의 일정으로 차분하게 다시 찾아야겠다고 생각하며, 울포항에서 5시 20분 배를 타고 녹동항으로 향한다. 이번 여행에 많은 편의를 제공해주신 금당도 '가고 싶은 섬 사업' 추진위원장님께 깊이 감사드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