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암릉미 넘치는 선왕산과 환상의 하트해변이 있는 아름다운 섬
신안군 비금도를 가기 위해 여수에서 새벽 5시 20분 출발해 암태도 남강선착장으로 향한다. 압해도와 암태도를 연결하는 천사대교가 놓이기 전까지는 비금도를 가려면 목포항으로 가야 했다. 하지만 지금은 암태도 남강선착장을 많이 이용한다. 목포에서 차도선으로 비금도에 갈 경우 1시간 40분이 소요되지만 남강선착장에서는 40분이면 도착한다.
무안 운남면과 압해도를 연결하는 김대중대교를 지날 무렵, 아침해와 해사한 이마받이를 했어야 하는데 일출은 맥이 빠졌다. 일시적 해무이길 바랐으나 부윰한 미세먼지는 8시 20분 남강항에 도착해서도 좀체 나아지지 않는다.
아침 9시 정각에 출발한 여객선은 팔금도와 암태도를 연결하는 중앙대교 아래를 통과해 추포도 옆을 지난다. 멀리 암태도와 추포도를 잇는 추포대교가 희미하게 보인다. 추포대교는 1.82km의 연도교로 5년 동안 공사를 마치고 지난해 3월 완공됐다. 전라남도와 신안군은 추포도와 비금도를 잇는 연도교 건설을 추진하고 있다. 시간은 좀 걸리겠지만 이 다리가 완공되면 비금도는 물론 도초도까지 자동차로 가게 될 전망이다.
날씨는 차갑지만 잔잔한 해수면 위로 미끄러지듯 유영하는 배는 곧이어 자그마한 세 개의 무인도가 형제처럼 도열해 있는 삼도(三島)를 지난다. 썰물 때는 섬이 드러나 하나로 연결된다는데 오늘은 수반 위 수석처럼 반쯤 바닷물에 잠겨있다.
9시 40분, 배는 비금도 가산선착장에 도착한다. 얼핏 보니, 하선하는 승객은 20여명인데 차량은 10대 정도다. 비금도와 도초도를 연계하여 돌아보려는 여행객들이 가져온 승용차들과 요즘 제철인 시금치를 운송하려는 트럭들이다.
선착장 좌측에는 옛 염전에서 흔히 볼 수 있었던 향수 어린 수리차를 돌리는 염부의 모습과 독수리 형상의 조형물이 서 있다. 수리차는 비금도가 천일염 제조의 시발지임을, 독수리 형상은 비금도의 모양새를 상징하고 있다. 동에서 서로 산맥이 지나는 비금도는 마치 새가 날개를 활짝 펴고 비상하는 모습을 하고 있다. 그래서 비금도(飛禽島)라 불린다.
가산선착장을 벗어나자 좌측으로 대형 염전지대가 펼쳐진다. 대동염전이다. 비금도는 광복 후 한국 최초로 천일염을 생산한 곳이다. 천일염 생산에 최초로 성공한 사람들은 평양에서 염전 기술을 습득하고 해방 후 고향인 비금도로 돌아온 '박삼만'과 그의 기술을 바탕으로 천일 염전조성을 시도한 '손봉훈' 이었다.
이들은 7명 내외의 조합을 구성하여 1946년 3월에 수림리 앞의 갯벌을 막아 시험염전 축조를 시작했다. 최초의 천일염전은 성공했다. 이것이 대동염전의 시작이다. 대동염전은 근대산업유산의 가치를 인정받아 등록문화재 제362호로 지정되어 현재에 이르고 있다.
드넓은 염전지대와 함께 논밭 여기저기에서 푸릇하게 자라는 시금치 모습이 시야에 들어온다. 1996년 3월 비금농협에서 고유상표로 출원 등록한 이른바 '섬초'다. 비금도의 섬초는 재래종으로 갯벌 게르마늄 토양에서 생산된다. 비금도 시금치가 맛이 좋다고 차츰 외부로 알려지면서 1980년대부터 상업적으로 본격 재배되기 시작했다.
섬초는 매년 9월에 파종해 12월부터 이듬해 3월 말까지 세 번 정도 수확한다. 한겨울 추위 속에서 바닷바람과 눈서리를 견디느라 땅바닥에 붙어 자란다. 잎이 두껍지만 부드럽고, 강한 단맛을 지니고 있다. 비금도 섬초가 당도가 높은 이유는 무질소화합물이 많기 때문인 것으로 알려졌다. 칼슘과 철분, 부드러운 섬유소가 들어있어 발육기의 어린이와 임산부에게 좋은 알칼리성 식품이다.
가산선착장에서 차로 10여분 달리자, 오늘 트레킹 코스인 그림산과 선황산((255m)의 우뚝 솟은 모습이 시야에 들어온다. 멀리서 봐도 산줄기가 예사롭지 않아, 암릉미 넘치는 백두대간의 어느 준령을 보는 듯하다. 트레킹의 시작점은 상암주차장이다.
오전 10시 10분부터 산행을 시작한다. 산행 시작점부터 서서히 고도를 높여나가는데 반대편에서 내려오는 사람 소리가 들린다. 밤새 비박을 하고 하산하는 듯한 젊은 남녀 트레커 4명이 큰 배낭을 메고 내려온다.
그림산과 선왕산은 그리 높지는 않지만 다도해의 수려한 자연경관을 감상할 수 있는 산이다. 그러면서도 등산로가 안전하고 깔끔하게 잘 정비되어 있어 전국에서 많은 사람들이 찾고 있다. 암벽, 능선, 숲들이 적절히 조화를 이루며 오르내리는 재미가 쏠쏠하다.
제1포토존으로 오르는 길은 철제 계단을 바로 치고 갈 수도 있고, 바위를 우회하여 가는 쉬운 길도 있다. 포토존에 오르자 임리 상수원지와 수대리 방향의 들판이 조망된다. 방향으로 보면 수대리 들판 너머가 도초도인데 시야가 부윰해 보이지 않는다. 그림산 정상까지는 계속 오르막이다. 군데군데 조망처에서 본 그림산과 투구봉, 그리고 사방으로 트인 풍광은 그야말로 그림처럼 아름답다. 그런 이유로 그림산이라 불린다고 한다.
그림산에서 투구봉까지는 지근거리지만 오르내림의 연속이어서 조심스레 발걸음을 옮긴다. 투구봉은 해발로 보면 그리 높지 않은데 오뚝하게 돌출되어 있어서 그런지 위용이 느껴진다. 수많은 나무 테크로 연결해 놓아 마치 사뭇 신비스러운 느낌을 자아낸다.
투구봉은 왕복하는 코스로, 테크로 만든 길 덕분에 쉽게 다녀올 수 있다. 투구봉과 어우러진 테크 길 자체가 한 편의 풍경이 되었다.
투구봉에서 원점 회귀하여 선왕산으로 가는 길은 급한 내리막 경사가 한동안 이어진다. 그러더니, 죽치우실에서 다시 팔각정 쉼터까지 가파른 오르막이다. 오늘 트레킹 구간 중 업다운이 가장 심한 코스다.
이곳에서 급경사를 치고 올라가니 정자가 나온다. 젊은 부부가 쉬고 있다가 채비를 정리하고 있다. 섬 산행에서 사람들을 만나기 쉽지 않은데 오늘은 예외다. 파란 지붕을 한 죽치마을이 동화 속 마을처럼 보인다. 트레킹에 심심치 않게 발걸음을 옮길 때마다 기기묘묘한 기암들이 출현한다. 마치 삼 형제가 서로 다른 곳을 응시하고 있는 듯한 모습이 있는가 하면, 입을 맞추며 하트 모양을 연출해낸 바위들도 있다.
이러한 풍경들을 지나 선왕산 정상을 앞에 두고, 왔던 길을 되돌아보니 통영 사량도 지리산에 와 있는 듯 산세가 웅장하다.
급기야 비금도에서 가장 높은 선왕산 정상이다. 멀리 도초도나 명사십리해수욕장들은 보이지 않지만 여기저기 능선 아래로 잘 정돈된 평야지대와 크고 작은 저수지들이 눈에 띈다. 저수지가 많다는 것은 그만큼 이곳 산세가 깊다는 증거다. 저수지들은 옥토로 변한 비금도 평야의 젖줄기가 되어주고 있다.
100여년 전의 강화도처럼 비금도도 현재 논의 60~70%가 바다였다고 한다. 본래는 여러 개의 섬이었으나 무려 십 수 차례에 걸친 간척사업을 통해 많은 섬들을 연결했다. 조선 중기까지는 지동·당두·내촌·구기 등 11개의 포구가 있었는데 그 이후 매립과 간척을 거듭하면서 오늘날의 비금도를 만들게 된 것이다. 무에서 유를 창조한 인간의 투혼 현장이다.
선왕산 정상에서 하누넘해수욕장 방향으로 조금 직진하자 일제 강점기 군사시설이라는 푯말이 붙어 있다. 선왕산 일대에는 일제강점기에 축조된 것으로 추정되는 포진지 등 군사시설들이 곳곳에 존재한다는 내용이다. 비금 칠발도 앞바다를 지나 군산 고군산도 등 서해안을 따라 북상하는 배들의 해상활동을 감시하고 저지하는 최적의 요충지였기 때문이다.
날씨가 맑을 때는 이곳에서 새들의 낙원이자 지나는 배들의 등대 역할을 하는 칠발도가 보인다고 하는데 오늘은 보이지 않는다. 무인도인 칠발도에는 1만여 쌍의 바다제비, 수백 쌍의 바다쇠오리, 국제적 멸종위기종인 섬개개비, 매, 칼새 등이 둥지를 틀고 번식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칠발도는 1982년 천연기념물로, 2009년 유네스코 생물권 보전지역으로 지정됐다.
표지판에서 200여m 정도 직진하면 내월우실로 내려가는 삼거리다. 우실이란 바람으로 인한 피해를 막기 위해 돌로 쌓은 방풍시설이다. 우실의 어원은 울실로서 마을의 울타리라는 뜻이다. 내월우실은 바다 쪽인 하누넘에서 불어오는 바람 때문에 피해가 크자 마을 사람들이 이를 막기 위해 산 능선에 성곽처럼 높이 쌓은 돌담이다.
내월우실 삼거리에 이르니 하트해변으로 불리는 하누넘해변이 비로소 보이기 시작한다. 해변 좌측 위로는 내촌마을에서 선왕산 자락을 지그재그로 넘어가는 해변도로가 카레이싱의 헤어핀 코스처럼 곡선미를 자랑하고 있다.
비금도는 이웃 도초도와 함께 신안군의 서쪽 가장자리에 위치하면서 중국 해역에서 불어오는 온갖 풍파를 막아내는 수문장 역할을 맡고 있다. 마치 이것을 증명이라도 하듯 거센 파도가 하누넘해변에 도착하여 부서지는 소리가 산자락 위에까지 세차게 들린다. 하누넘해변은 사랑하는 연인들의 심장처럼 그렇게 요동치고 있다.
제2포토존에서 조금 더 지나 서산사 삼거리에서 하누넘해변으로 좌회전한다. 암릉과 미끄러운 자갈이 섞인 길을 내려오니 좌우로 애기동백 군락지다. 하트해변의 쿵닥거림이 이곳까지 물들인 것일까? 애기동백꽃이 시집가는 신부이 얼굴처럼 환하다.
가는 모래로 형성된 하누넘해수욕장은 산과 섬들에 둘러싸여 아늑하기 그지없다. 양손 바닥으로 모래를 퍼올려 보았더니, 손가락 틈새로 어느새 다 빠져나가고 만다.
이곳에서 해변도로를 따라 하트전망대에 오르니 하트 모양의 포토 존이 있다. 옆 안내판에는 하트해변에 얽힌 전설이 적혀있다. 배를 타고 고기잡이 나간 하누가 돌아오기를 간절히 기원하는 너미, 하지만 하누는 풍랑을 만나 돌아오지 못하고, 이 사실을 알지 못한 채 하루하루 하트를 만든 너미는 지금도 하트해변에 누워 억겁의 세월을 기다리고 있다는 것이다. 산 너머 그곳에 가면 하늘과 바다밖에 보이지 않는다고 해서 하누넘이라 한다는 설도 있다.
하트전망대에서 내촌마을로 내려와 도초도로 향한다. 자동차로 20분쯤 달리니, 비금도와 도초도를 연결하는 서남문대교가 나온다. 다도해의 전경을 바라보면서 리아시스식 해안과 들길로 이어지는 드라이브 코스는 섬여행에서만 느낄 수 있는 묘미다.
서남문대교에서 도초도의 자랑인 시목해수욕장까지는 40~50분 정도 소요된다. 시목해수욕장을 들렀다가 나오면서 수국공원과 환상의 정원, 그리고 자산어보 촬영지 등을 둘러본다면 도초도와의 첫 만남은 어느 정도 성공한 셈이다.
다시 비금도로 돌아와 가산선착장에서 가까운 이세돌 바둑기념관과 명사십리해수욕장을 둘러본다. 비금도는 천재 기사 이세돌의 고향이다. 이세돌 바둑기념관은 그가 태어난 지동마을 옆 옛 비금 대광초등학교 건물을 리모델링하여 개관했다.
명사십리해수욕장은 4km에 달하는 고운 모래 해변과 친환경에너지를 생산하는 풍력발전기가 어우러져 장관을 이루고 있다. 부윰한 바다 건너 암태도인지 자은도인지 모를 섬들이 실루엣처럼 흐릿하다. 발길을 뒤로하고 오후 5시 배를 타기 위해 가산선착장으로 향한다.
1) 위 치
o 전남 신안군 비금면
2) 가는 방법 : 암태도 남강선착장 ↔ 비금도 가산선착장
o 주간에는 06:00부터 거의 1시간 간격으로 여객선이 운항되는데다 야간에도 운항되어
비금도를 드나드는데 전혀 애로가 없음.
* 비금도는 섬이 크고 볼 곳이 많은 데다 도초도 연계 여행이 가능함으로 승용차를 가지고
갈 것을 권함.
3) 비금도 트레킹(5.1km, 4시간 30분 소요)
o 상암주차장→그림산→투구봉→죽치우실→선왕산→내월우실 삼거리→하누넘해수욕장
→하트전망대
4) 도초도 가볼만 한 곳
o 시목해수욕장, 수국공원, 환상의 정원, 자산어보 촬영지 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