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섬트레커 Jan 24. 2022

인천 강화 주문도

- 서해 접경지대에서 만난 '북극 바다'


서울에 볼일이 있어 올라갔다가 내친김에 서해 접경지대의 섬, 강화 주문도를 가기로 한다. 이번에도 서울에 사는 친구들이 동참해주어 고맙고 설레는 마음뿐이다.



강화 친구의 산방(山房), 장작불 지핀 구들에서 하룻밤 


초저녁 강화도 양사면 친구의 산방에 도착했더니, 달짝지근하면서 입에 착착 감기는 숭어회와 간자미 매운탕이 기다리고 있다. 친구가 인근 선착장에서 장을 봐 온 싱싱한 해산물이다. 거기에 데워 먹는 와인, 뱅쇼가 등장한다. 해외에서 상사 맨으로 오래 근무한 친구 부부가 귤과 사과, 정향 등을 넣고 끓인 와인이다. 나름 와인을 안다고 생각했는데 쇼는 처음이다.


사실, 여수에 살다 보니 올 겨울 추위를 그리 느끼지 못했다. 눈도 어쩌다 내리는 데다 내린다 해도 눈발이 땅에 닿기도 전에 녹아버린다. 그런데 서울과 강화도에 오니 눈이 쌓여 있고 춥다. 남해안 일대와는 체감 온도가 어림잡아 9~10도 정도 차이 나는 것 같다. 추운 날, 뜨끈한 와인의 마리아주로 숭어회와 간자미 매운탕은 더할 나위 없이 제격이다. 더욱이 장작불로 데운 구들에서 구수하게 피어나는 겨울밤의 대화는 어느새 눈발이 되어 하나둘씩 마당에 쌓인다.                      

강화 선수선착장 해변. 멀리 진강산이 보인다

다음 날 아침, 주문도 행 배를 타기 위해 8시쯤 나서 화도면 선수선착장으로 향한다. 마니산 서쪽  끝단에 위치한 선수선착장에서 강화도 최북단 섬들인 볼음도와 주문도, 아차도를 차도선이 운항한다. 미리 예약을 했지만 여객선 대합실에서는 승선표라는 것을 별도로 작성해야 한다. 이른바 북한과 접경지역인 민통선을 출입하는데 따른 절차다. 배에 오르는데 선사 직원 옆에 군인이 서서 신분을 확인한다.                     

선수선착장, 삼보해운의 차도선

커다란 차도선에는 차량 서너 대와 승객 여남은 명이 승선했다. 아침에 선착장에서 합류한 우리 일행 아홉 명을 빼면, 그리 많지 않은 승객이다. 날씨가 추워 갈매기도 자취를 감춰서인지 여객선의 창밖은 더욱 을씨년스럽게 느껴진다. 출발할 때 잔잔했던 바다는 접경지역으로 향할수록 거칠어지고 불어오는 바람은 칼날처럼 매섭다.


선수선착장에서 서해의 접경지역으로 떠나는 배 


바다에 떠 있는 하얀 부표들을 헤집고 배는 서쪽으로 항해하다가 길게 모로 누워있는 석모도를 우측에 두고 북쪽으로 나란히 향한다. 승무원에게 부표의 정체를 물어보니 새우잡이 어장이라고 한다. 지금은 부표 밑에 그물이 없지만 봄부터 가을까지는 그물을 매달아 액젓을 담는 새우를 잡는다고 한다.                      

서해 접경지대로 향하는 배. 날씨가 추워 갈매기도 날개를 접었다

배는 볼음도→아차도를 거쳐 1시간 20여분 만에 주문도 느리선착장에 도착한다. 주문도는 최고점 봉구산(147m)을 중심으로 해안선 길이가 12.6km인 섬이다. 강화군 서도면 면소재지로 볼음도, 아차도, 말도 등을 부속섬으로 두고 있다.


주문도란 이름은 조선 후기 임경업 장군으로부터 유래했다고 한다. 장군이 중국의 명나라 사신으로 갈 때 임금에게 하직하는 글을 이 섬에서 올렸다 하여 아뢸 주(奏), 글월 문(文)을 써서 주문도(奏文島)라 했는데 세월이 흐르면서 주문도(注文島)로 바뀌었다는 것이다.                     

볼음도 선착장에 도착하고 있는 차도선. 어로저지선이 설정된 곳이라 어항 시설이 없다

주문도를 포함한 서도면의 4개 섬들은 북한과 맞닿아 있는 접경지역이라 출입은 물론 어업의 규제가 심한 곳이다. 어로저지선이 설정되어 있어 이곳 사람들은 황금어장을 눈앞에 두고도 농사에만 매달려야 했다. 썰물 때면 광활하게 드러나는 갯벌에서 백합과 조개, 굴을 캐는 게 어업의 전부다. 주민들은 수십 년째 이러한 불편을 겪어오고 있다.                     

좌측 섬은 아차도. 강화군은 주문도-아차도-볼음도를 연결하는 연도교 건설을 추진하고 있다

강화군은 이러한 현실을 타개하기 위해 이들 4개 섬을 잇는 이른바 '서도연도교'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이 사업이 완료되면 주민 삶의 질이 향상되고, 때 묻지 않은 섬 자원을 활용한 관광객 유치가 가능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우선 1단계로 주문도와 아차도를 잇는 주문대교 설계를 올해 착수하고, 아차도와 볼음도를 잇는 볼음대교 건설은 2단계 사업으로 2023년부터 추진한다는 계획이다.

또한 대빈창·뒷장술해수욕장 종합 정비와 해당화 명품길 조성, 관광기반 연결도로 건설, 살고 싶은 주문도 갯벌섬 마을 조성사업 등을 추진하기로 했다. 이와 더불어 서도면의 관광활성화를 위해 국방부-유엔사령부-지역 군부대와 협의해 불필요한 검문소는 폐지하고, 폐지가 어려운 검문소는 북상 조정한다는 방침을 세웠다.


하늘도 지쳐 끝난 갯벌, 얼어붙은 겨울바다 그 위에 서다

                     

주문도 느리선착장 해변

배가 도착한 느리선착장 근처에는 이렇다 할 어항 시설이 갖추어져 있지 않다. 그러나 선착장 좌측에 통발들이 쌓여 있고, 우측 해변에 고깃 배 한 척이 누워있는 것으로 보아 허가 받은 소규모의 어업은 가능한 모양이다.                     

느리선착장에서 주문2리로 가는 길

느리선착장에서 5분 정도 걸으니 서도면사무소와 파출소, 보건소 등 주요 행정기관이 위치한 주문2리가 나온다. 이곳에서 배너머고개를 지나 서도 초·중·고 방향으로 가려면 직진을 해야 하지만 우리 일행은 대빈창해수욕장으로 가기 위해 우측으로 향한다.                      

대빈창해수욕장에서 바라본 볼음도

다행히 미세먼지가 없이 맑은 날씨여서 트레킹 하기에는 그만이다. 대빈창해수욕장은 주문도에서 가장 큰 해변인데 백사장을 따라 소나무 숲이 잘 조성돼 있다. 대빈창은 옛날 송나라와 명나라의 사신을 영접하고 많은 상인들이 드나들던 기항지였다 한다. 자갈과 모래가 섞인 갯벌은 지극히 완만하여 바다 쪽으로 족히 십리가 넘도록 평편하다. 그렇게 펼쳐진 바다 저 멀리 수평선과 파란 하늘이 만나는 풍경은 가히 환상적이다.          

조간대에 뒤엉킨 얼음조각과 눈덩이

반면에 모래사장과 바다의 경계인 조간대에는 두터운 얼음조각들이 눈덩이와 함께 뒤엉켜 있다. 마치 겨울철 북극을 방문한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하늘도 그만 지쳐 끝난 갯벌, 얼음장 얼어붙은 겨울 바다 그 위에 우리가 서 있는 것이다.                     

해변으로 휩쓸려 온 이구아나 형상의 나무가 멀리 분지도를 바라보고 있다

바다 저편 무인도인 분지도는 우주의 외딴 행성처럼 덩그러니 홀로 누워있다. 분지도는 소실점이 되어 해변의 모든 시선을 끌어 모은다. 어디에서 밀려왔는지 모르는 고사목이 분지도를 응시하고 있다. 생전에 바다를 그리워했던 나무인 모양인데 이구아나 형상이다.                     

뒷장술해수욕장에서 바라본 분지도

대빈창해수욕장이 끝나는 지점(고마이)에서 뒷장술해수욕장까지 썰물 때는 해변을 따라가면 바로 갈 수 있다. 하지만 들물 때는 좌측으로 난 데크길을 따라 400여 미터 직진하면 된다. 뒷장술해수욕장은 주문도 뒤쪽에 위치해 있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이곳 역시 간조 시 드러나는 거대한 갯벌에 조개와 백합 등 다양한 해산물이 서식하고 있다. 덩치가 꽤나 큰 겨울 철새들이 이곳에 머물다 갔는지 붉게 싸놓은 배설물이 어른 엄지손가락 보다도 굵다.                      

뒷장술해수욕장

이곳 바다는 더욱 광활하게 얼어붙어 있다. 대빈창 보다는 수심이 깊은데 최근 날씨가 영하 10도를 오르내리다 보니 두텁게 얼어붙은 것 같다. 서해 바다도 언다는 사실을 더욱 실감할 수는 현장이다. 해안가는 소사나무, 모감주나무 등으로 2010년에 조성했다는 해안방재림이 잘 조성되어 있다. 우측 저 멀리로는 옹진군 북도면 장봉도 앞에 떠 있는 동만도와 서만도가 보인다.




전국 어디에 내놓아도 손색없는 대빈창·뒷장술해수욕장 


뒷장술해수욕장 중간쯤에서 조금 벗어난 산기슭의 양지에 자리를 잡고 준비해 간 점심을 먹는다. 겨울에는 역시 화력 넘치는 버너에 끓인 쫄깃한 컵라면이 일품이다. 동행한 친구의 수고로움으로 일행 모두는 뜨끈한 라면 국물로 차가워진 속을 데운다.                     

살꾸지선착장으로 가는 해변

원래 트레킹 코스는 뒷장술해변이 끝나는 지점에서 좌측 살꾸지 방향으로 출구가 나 있으나, 우리는 해변을 우회하여 살꾸지선착장까지 가기로 한다. 자갈길과 뾰족한 바위로 이어진 해안을 지나는데 금세 밀물이 사납게 들이닥친다. 조수 간만의 차가 큰 서해안을 트레킹 할때는 항상 들물 때를 주의해야 한다.                     

살꾸지선착장 인근 해변. 멀리 마니산이 보인다

밀물은 갯벌에 몸체를 훤하게 드러내고 있던 무인도를 어느새 온전한 섬으로 고립시키고 만다. 바다는 예측보다 무쌍하게 변모한다는 것을 새삼 깨닫는다. 어렵사리 해변을 통과해 살꾸지선착장에 다다른다.                

살꾸지선착장에서 주문1리(진촌마을)로 가는 길 옆의 간척지

이곳에서 서도 중앙교회가 있는 진촌마을까지는 2차선 아스팔트 도로가 나 있다. 진촌마을 앞 농경지는 누대에 걸쳐 완성한 간척지로 육지의 웬만한 평야지대를 연상케 한다. 여기저기 논바닥에는 기러기들이 여남은 마리씩 떼를 지어 먹이를 주워 먹고 있다. 서해의 섬들은 철새들에게도 휴식을 제공하고 몸을 추슬러 떠나보내는 어머니같이 보배로운 섬들이다.


진촌마을은 행정구역상으로는 주문1리로 봉구산 남쪽에 위치해 있다. 우리나라 섬들에는 진촌, 진리 등 ‘진(鎭)’ 자가 들어간 지명이 많은데 조선시대 수군의 주둔지거나 관청이 있던 곳이다. 진촌마을에는 주문진(注文鎭)이 있었는데 주문첨사가 주재하면서 국영 목장을 관리했다고 한다.


앞장술해변에 안식처를 정한 '아름다운 동행' 나무 한쌍       

              

서도 중앙교회. 주민들이 헌금을 모아 건축한 서양 건축양식을 가미한 목조건물로 인천문화재자료 제14호로 지정됐다

진촌마을에는 1997년 인천문화재자료 제14호로 지정된 유서 깊은 서도 중앙교회(진촌교회)가 있다. 1902년 삼산면(석모도)에 거주하던 감리교 전도사 윤정일이 최초로 설립했다. 그 이후 1923년 주민들이 헌금을 모아 한옥으로 예배당을 새로 지었는데 1978년 서도 중앙교회로 이름을 바꾸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옆에서 보면 지붕이 여덟 팔(八) 자 모양인데 서양 건축양식을 가미한 목조 건물이라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고 한다.        

앞장술해변에서 바로본 석모도(좌측)와 진강산(가운데), 마니산(우측)

살꾸지선착장에서 오후 4시 15분 배를 타기 위해 진촌마을을 되돌아 나와 앞장술해수욕장으로 향한다. 앞장술 정면 바다 너머로는 석모도가 보이는데 우리나라 3대 기도처라는 보문사 뒤편의 눈썹바위도 희끗하게 조망된다. 이곳에서 살꾸지선착장을 향해 제방을 따라 걷는데 해당화 나무들이 검붉은 열매들을 메달고 겨울바람에 흔들거리고 있다. 유명한 주문도의 해당화 군락지다. 5~6월쯤 이곳에 온다면 홍자색 군락으로 피어 있을 해당화의 아름다운 모습을 볼 수 있을 것 같다.                      

앞장술에서 살꾸지선착장으로 가는 해변

살꾸지선착장 조금 못 미쳐 흰모래 해변에 누운 한쌍의 나목이 눈에 띈다. 파도에 껍질이 다 벗겨진 채 백옥 같은 몸뚱이만 남은 나무 두 그루다. 전생에서 부부 인연을 맺었던 것일까? 대체 이들은 어디에서 이곳까지 밀려오면서 함께 할 수 있을까? 중폭되는 궁금증이 뇌리를 깊숙이 파고든다.                     

두 그루의 나목. 수 많은 시련을 거쳐 해변에 나란히 안착해 있다

한강, 혹은 임진강 강가 어디쯤에서 살던 두 나무는 예기치 못한 폭풍우에 뿌리째 뽑혀 바다로 떠밀려 왔을 것이다. 해류는 둘을 갈라놓으려 했지만 끝내 떼어놓지 못한 모양이다. 두 나무는 한 몸뚱이처럼 붙어있으면서, 낮이면 파도소리와 바람을 벗 삼고 밤이면 쏟아지는 별빛을 벗 삼아 비로소 안식을 취하고 있는 듯하다. 비록 나무로 태어나 나무로 생을 마감했지만 참으로 아름다운 동행이다. 그 어떤 시보다 감동적이며, 그 어떤 잠언보다 위대하다.                     

살꾸지선착장

 


1) 위 치

    o 강화도 서도면 주문도  


2) 가는 방법 : 강화도 선수선착장↔볼음-아차-느리, 살꾸지

    o 선수-볼음-아차-느리 : 1일 3회 왕복

       소요시간 : 볼음 55분/주문(느리) 1시간 20분

    o 선수-살꾸지 : 1일 3회 왕복

      소요시간 : 35분  

     * 운항시간 및 예약 : 여객선 예약 예매 '가고 싶은 섬' 홈페이지

      - 전화 : 선수선착장(032, 932-6007), 주문 살꾸지선착장(032, 933-6975)                     

여객선 운항 안내도


3) 주문도 트레킹(11.3km, 4시간 소요) - 강화나들길 12코스(주문도길)

    o 느리선착장→배너머고개→주문저수지→서도초·중·고 입구→주문진→서도 중앙교회→해당화군락지

       →살꾸지→뒷장술해변→고마이→대빈창해변→느리선착장                               


주문도 트레킹 코스



한국섬뉴스에서 '섬여행' 더 보기

매거진의 이전글 전남 신안 비금도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