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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정현 작가 Mar 10. 2023

라면도 과자라구요

삼남매의 겨울밤


겨울은 유난히 밤이 깊고 길다. 

그것도 겨울방학 기간에는...


잠은 오지 않았고,

심심하고, 따분할 것 같은 지루한 밤.

그냥 스쳐 지나가는 밤이 왠지 아쉬웠다. 


뭔가 스릴있는 일을 준비하거나 꾸밀 때, 가슴이 콩닥거리지. 


안방에 주무시는 엄마, 아빠 몰래 

건넌방에 있는 우리의 가슴을 콩닥거리게 하는

일명 '라면 과자파티'는 이불속에서부터 시작됐다. 


잠자려고 누웠지만, 

어제 오후에 엄마가 사다 놓은 라면박스가

눈 앞에 또 어른거린다. 

(심지어, 그 라면박스가 우리 방에 있다.)


어젯밤, 처음으로 생으로  부셔 먹었던 라면 맛을 잊을 수가 없었다.


"이럴수가...생라면이 과자보다 더 맛있다니"

 그 맛을 본 순간 알아버렸다. 

언니랑 남동생도 같은 생각이었던 모양이다.


"언니야~ 우리 라면 하나 뿌셔 먹자?"라는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누워 있던 남동생이

컴컴한 밤인데도 밝은 눈을 등대 삼아,

벽장 옆으로 슬금슬금 가더니 라면박스로

손이 벌써 가 있었다. 


"그럼 한개 만 먹자." 라는 언니의 숨 죽이는

결정에 우리도 덩달아 조용히 대답했다. 

"알겠어, 좋아"


남동생이 금새 라면 한개를 가지고 와서

이불 속에서 봉지 사냥 중이다. 

빠지직 뽀스슥...  뜯어지는 라면봉지 비닐 소리에

나의 가슴은 아까보다 더 콩닥거리기 시작한다.


"야~ 비닐 소리가 너무 크잖아! 조심 조심해!" 라고

주문을 외듯 다그치면서,

엄마, 아빠께 들키지 않으려는 마음을 실어서 

나는 동생의 손을 힘껏 부여 잡았다.  


깊고 푸른밤, 

어둑해서 침침했던 방은 


펼쳐진 봉지 위 라면으로 달빛이 스포트라이트가 되어 비춰주고 있었다. 

언니와 남동생과 함께 이불 속에서, 나란히 엎드려

뿌스럭 뿌스럭..부셔서 생라면에 야채스프를 뿌려서 과자처럼 먹기 시작했다. 


입 속에서 터지듯 부셔지는 라면 소리를

조금이라도 덜 내려고,  

침으로 녹여서 오물거리며 먹는 맛과

몰래 먹는 맛의 조합이 꿀맛이다.


먹다가 우리들끼리 눈이라도 마주치면,

엄마, 아빠 몰래 뭔가를 하고 있는 것 만으로도 스릴있고 즐거워서 그런지

서로 키득거리면서 한참을 웃는다. 

거기에 남동생과 장난끼가 서로 발동하면,

라면을 먹다가 간지럼 먹이고 발장난도 친다. 


우리들의 웃음소리가 방 밖으로 퍼져 나가는 줄도 몰랐다. 




웃음소리와 라면봉지의 부스럭대는 소리가 장단을 맞춰 요동칠 때,

 안방에 계신 엄마, 아빠에게도 들린 듯 했다. 


"너희들 어서 자야지? 장난치지 말고 얼른 자라!"

아빠의 기침소리와 함께 엄마가 우리 방을 향해서 한마디 하신다. 


"네" 라고 오물거리는 라면을 얼른 삼키고,

우리는 동시에 대답을 했다. 


잠 자라는 엄마의 말씀에

긴장의 태세를 늦출 수 없지만,

엄마의 경고성 멘트가 오히려 


"너희들 뭐하는지 엄마가 대충 알고 있지만, 

엄마가 너희들 방으로 가진 않을테니, 조금 놀다가 어서 자거라"

라고 하는 것 처럼 들렸다. 


주거니, 받거니... 우리는 이제 남은 부스러기까지 다 먹었다. 


언니는 국민학교 6학년 쯤이었고, 나는 국민학교 3학년, 남동생은 유치원생

나의 국민학교 시절, 익숙한 겨울밤 풍경 중 하나였다.  

긴긴 겨울 밤, 우리의 '라면 과자파티'는 성공적이었다.


언제나 '라면 과자파티'는 해피엔딩이었다. 


우리방에 '브이라면' 한박스는 언제나 있었고,


그날 이후로도 스릴있는 밤을 맞이하고 싶을 때,

우리들의 라면서리는 계속되었지.


개구쟁이들이 소꿉장난 하듯이,

브이라면 한봉지를 뜯어서 이불 속에서 셋이 맛있게 과자처럼 

먹었던 겨울밤이었다. 

이불 밖은 추워서 온돌방 바닥에 손을 넣었다 빼면서 먹었던 겨울간식



'브 이 라 면'



나랑 동시대 인물 연예인인 똑순이 김민희가 브이라면 광고를 했었네~










기름으로 튀겨진 면발의 얇은 라면을 끓이지 않고, 

과자처럼 먹었던 즐거움이 있었다. 


요새처럼 트랜스지방에 나트륨 함량을 체크하고,

팜유가 건강에 해롭다고 하는 건강 상식은 차치하고, 


내 인생라면으로 들어 온 N사의 브이라면은 

공급생산이 중단될 때까지 나의 최애 간식이기도 했다. 

끓여서 먹는 것도 좋았지만, 단연코 생라면으로 먹어야 더 맛있었다. 

궁극의 이맛을 아는 사람이 또 있을텐데...


국민학교 3학년 때 쯤 나왔던 브이라면은 내가 느꼈던 

이전의 소고기라면이나 삼양라면과는 차원이 달랐다.

(생라면으로 먹을 때의 바삭한 식감이 내게 최고였다. )


얇은 면발이 건면으로 만들어지면서 바삭한 식감이 더 특별했고,

바삭한 면을 씹을수록 입안에 침이 고이기 시작하면 어떤 과자보다 더 맛있게 느껴졌다. 

거기에 야채맛의 풍미를 더한 스프를 뿌려 먹으면, 금상첨화였다. 


세상 누구 부러울게 없는 기분 좋아지는 중독성 강한 맛이었다.


그 때의 내 입맛은 그랬다. 


40년이 훌쩍 지난 지금에도 브이라면의 그 과자같은 바삭한 식감이 

가끔 생각난다. 

나의 최애 간식이었던 브이라면은 내게 잠깐 왔다가 사라진 간식이었다. 




몇 년 후에 브이라면은 더 이상 생산되지 않았다. 


기억 속에 남아 있는 과자식감의 브이라면 간식이 입안에 맴돌 때, 

어릴 적 입맛을 상기하고 싶어진다. 


가슴 콩닥거리면서 라면을 과자처럼 몰래 먹었던 밤이 가끔 그리운 것은

그 시절, 언니와 남동생과 함께 지냈던 건넌방의 추억이 깃들어 있고, 거기에 

'라면과자파티' 속에서 느끼는 끈끈한 형제애가 마음 속에 자리 잡은 듯 하다. 


어느새 언니와 나, 동생 모두 어느새 50줄을 훌쩍 넘어 버렸다. 


우리가 함께 했던 어린시절이 금새 지난 것을 직감한다. 


라면과자 하나 만으로도 겨울밤이 즐거웠고, 행복했던 날이었다. 

마음 속으로 그리는 형제의 정이 느껴지는 밤이다.

세월은 이렇게 무던히 매일매일 흐르고 있다. 


아쉽지만, 그것이 인생 아니겠는가?

.

.

.

"언니! 우리가 어릴 적 먹었던, 브이라면 생각나?"

"아우야! 너 그 브이라면 기억하고 있니?"

언니와 남동생을 만나면, 한번 물어봐야겠다. 

그 시절, 그 라면...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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