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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정현 작가 Mar 30. 2021

애인, 엿 그리고 형부

형부 잘 계시죠?

언니에게 애인이 생겼다

고등학교 3학년 대입학력고사 입시를  얼마 두지 않았던 내게 언니가 고백했다.


당시에도 언니를 따라 다니는 뭇남성들이 있었지만,

딱히 언니가 그들에게 어떤 이벤트나 상황에도 휘말리지 않았었다.

그가 나타나기 전까지...


그래도 난, 그 중 한 사람이 더 늘었구나 생각했기에 그것이 중요한 일이라 생각치 않았다.


그럼에도 다른 날과 다른 분위기였던 것은 분명했다.


언니를 좋아했던 뭇 남자들에 대한 얘기를 내게 한 적도 없었다.

그랬기에, 언니가 자신의 애인을 소개한 것은

우리 집안 역사의 한줄기가 바뀌는 큰 사건이었다.


자신의 애인을 소개하는 언니의 모습 또한 무척 진지했고,

나 또한 허투로 그것을 들을 수 없는 상황이었다.


"빼어난 미모의 언니에게 또 누군가 홀딱 빠졌구나!

언니에게 빠져든 저 인생을 어쩌랴" 라고 중얼거리고

끝내기엔 가볍지 않은 사실을 알게 된 순간이었다.


 언니가 그의 사진을 보여줬다.

언니의 눈에서 무한 사랑의 레이져 불빛이 발사되는 듯 했고,

싱글벙글 흐뭇한 미소를 머금으면서 단체 사진 속 한 명을 가리킨다.


그녀의 애인이란다.


아닐거야...몇 번을 머릿속으로 설마 설마라 하고

고개를 가로 저으며 언니에게 부정의 신호를 보냈다.

그러나, 언니는 나의 반대를 아랑곳하지  않은 채,

자신의 사랑을 확증이라도 하는 듯 확신에 찬 모습이다.


언니는 이미 그를 향한 충만한 사랑으로 콩깍지가 씌워져 있었고,

앞으로 함께 할 불확실한 미래가 닥쳐도 충분히 감당할 열정이 가득했다.


이미 빠져도 푸욱 빠졌다.


나는 마음 속으로 이번엔 진짜가 나타났구나 했다.

"이를 어쩐다, 진짜 큰 일이네..."


마음 졸이며, 앞으로 부대낄 언니의 사랑을 걱정했다.

언니의 사랑이  그리 오래가지 않을거라는 막연함도 내심 품기도 했다.

당연히 연애는 그런 것이다라고 쉽게 생각했다.


주변에 언니를 좋아하며 연모해서 줄 섰던 학교 선배나 친구들이 많았고,

알아서 때 되면 포기하고 나가 떨어진 인물들이 꽤나 있었기에,

그 애인 또한 그럴 사람 중의 하나로 인지했었다.

적어도 나는 그러길 바랬다.


또한, 촉망받는 미래의 멋진 커리어를 쌓아갈 언니의 앞길을 두고서

사랑이라는 핑계로 그가 가로막고 있는 듯한 느낌이 들어서 무조건 싫었다


그 이면에는 이 세상에 단 하나 뿐인 언니인데다가,

나만의 언니를 향한 애착관계를 떼어가는 사람이라는

나의 유치한 저너머의 생각도 장착된 상태였다.


대학 입시를 며칠 앞둬서 그런지 나는 신경이 무척 예민한 상태였다.


그날 밤, 언니는 집 앞에 찾아 온 애인으로부터 선물을 받고 돌아왔다.

"정현아! 오빠가 너 시험 잘 보라고, 모찌하고 엿을 보냈네. 이거 받아"


언니의 애인을 반대하고 인정하지 않았던 내게,

그는 내게 진심어린 선물 공세를 시작한 것이다.

시큰둥하게 선물을 받아 든 내게 언니의 싱그러운 미소가 방안에 드리워져 있다.


포장지를 뜯어 팩 뚜껑을 여니,

차지면서도 도톰하게 빚어진 하이얀 가루 묻혀진 찹쌀모찌와

하얀 면포에 정성스럽게 싼 갱엿이 수북이 놓여 있었다.

정말로 직접 집에서 엿을 달여서 만들어 놓은 것으로 착각할 만큼

정성스럽게 만들어진 모양이었다.

이미 나는 그의 찹쌀떡과 면포로 싸여진 갱엿 선물을 받아 든 순간부터 무장해제 되고 말았다.


"엿이 입 안에서 살살 녹네" 라고 말 하는 순간

언니의 애인은 미래의 나의 형부로 낙점되고 말았다.


엿 바꿔서 형부가 되는 특권을 얻었다니,

누가 따라한다고 해서 언제든 마법이 통하진 않겠지만,

그 날 갱엿은 나에게 마법처럼 통하고 말았다.


우연이 필연처럼 다가왔다.


내가 그들의 관계를 인정하는지의 여부가 뭐 그리 중요하게냐마는,

그래도 그는 그녀를 사랑했기에

그녀의 동생에게 인정 받고 싶은 마음은 인지상정이었을거고,

그의 행동은 상받을 만큼 정제되면서도 정성스러웠다.


그가 내게서 '미래의 형부' 로 인정받게 된 첫날이었다.


이제 동지가 된 미래 처제 1호를 시작으로 내 밑의 2, 3, 4호는 순식간에 포섭되고 말았다.

물론, 내 밑의 2,3,4호 또한 입시 때마다 찹쌀떡과 엿 선물, 졸업식 때 꽃다발 등,

여러가지 이벤트가 늘 그들 앞에 도사리고 있었다.


한결 같은 그의 진심과 정성이 깃든 선물로

동지의 마음을 사로잡고 만 것이다.


변함없이 언니를 사랑한 것은 필요 조건이었고,

언니의 동생들을 아껴주는 것은 충분 조건으로 완성되었다.


그 날 이후로 나는 나의 미래의 형부에 대해 이야기 할 때마다,

친구들에게 입에 침이 마르도록 팔불출처럼,

자칭 '나의 유일한 최고의 형부' 로 자랑하고 다녔다.


드디어, 나도 형부가 생겼다.


그렇게 그는 언니의 애인에서 반려자인 옆지기로 30년 이상,

알콩달콩 동고동락 중이다.



나의 형부는 모른다.

내가 그가 사 준 갱엿을 먹고,

미래의 형부로 그를 낙점했던 사실을~~


평생 환자를 돌보느라 바쁜 와중에도,

처제가 왔다는 소식에는

늘 한결같은 마음으로 따뜻한 미소와 포옹,

마음 깊은 배려, 잊지 못 할 선물 등,

무수한 디테일 속 형부의 진심이 울리는 순간을 맞이할 때마다,

감사한 마음 뿐이다.


"형부! 30여 년 전 그 갱엿 참 맛있었어요."



 https://youtu.be/TCUNvCjLrTo

Mezzo Sop. Cecila Bartoli :  G. Rossini, Il Barbiere Di Siviglia, 'Una voce poco fa'

(메조소프라노, 세칠리아 바르톨리 : 로시니, 세빌리야의 이발사 중 '방금 들린 그대 음성' )






어떤 엿을 먹어도 형부가 선물해 준 그 때의 엿맛은 아니올시다.

당신은 엿 바꿔치기로 나의 형부가 되셨습니다.

2021. 03. 30. 가원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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