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써 비가 내리기 시작한다. 고작 9월인데, 올 해의 화창할 뻔한 여름을 거대한 화마가 거침없이 북미의 산을 휩쓸어 가듯 비가 쏟아진다. 예년 같으면 10월 중순쯤이나 우기가 시작하는데 지나가는 여름을 아쉬워할 틈도 없이 그렇게 거대한 화마로 지쳐가던 땅에 기다리던 비가 쏟아지기 시작한다.
그리고 10년 전 졸업 이후로 다시는 돌아갈 일이 없어 보였던 학교도, 새로운 공부도 시작한다.
일론 머스크가 그랬었다. 인생에서 학교는 그다지 필요 없다고 솔직히 말해서 학교는 사람들이나 만나러 가고 인맥 쌓으러 돈 여유 있는 것들이 재미있는 시간을 보내러 가는 곳이 학교랬다.
일론머스크의 다른 것들에겐 동의하고 싶지 않지만, 학교에 대한 의견은 동의한다.
근데 어디 의료 관련일이 그런 일인가. 나는 공부랑 거리가 멀다고 생각했는데. 요즘 들어 머리가 좋다는 말을 어릴 때 아빠한테 들은 이후로 많이 듣다 보니 가스라이팅이 되었는지... 정규직을 임시직으로 바꿔놓고 일단은 학교를 가기로 결정했다.
단 3주 만에 일어난 일이다. 이미 5월 말에 입학신청이 끝났건만, 아직까지도 인력이 부족해서 학비보조까지 해줘 가며 학생을 뽑아대 길래 봤더니 이미 닫혀있었던 지원창이 다시 열렸을 줄이야. 그만큼 기피 과목인가 보다.
과담당자: 9월 학기랑 내년 2월 학기 시작하는데 9월에 시작하는 거 한번 지원해 볼래?
나: 뭐 갑작스럽긴 하지만 해보지 어차피 하려고 했던 거
마침 키친도 같이 일하던 동료를 회사에서 누명 씌워서 해고해 버려 짜증이 머리끝까지 나있었다. 아니 사람 뽑기 힘들다고 지들 입으로 말해놓고 사람을 자르면 어쩌라는 일인가. 너네들이 맨날 인력부족이라고 해서 내가 정부 보조받으면서 진작 시작했을 공부 이제 것 미루면서 일해줬다. 근데 너네 마음대로 사람을 막 잘라? 그럼 나도 내가 해야 할 일을 해야겠네. 당근 그 잘린 동료를 통해 외국인노동자 커뮤니티, 노동청, 이민 노동청 다 신고해 놔서 내가 임시직일 때 일 들어오게끔 만들어놓는 것도 잊지 않고 준비했지. 근데 능력도 좋아? 일 할 사람들 있단다. 이야 이제 것 거짓말하면서 인건비 줄이려고 쇼한 거구나. 그 총괄 매니저 남아프리카 휴가가 있는 동안 사자 밥이나 되길 염원하며... 아니면 다른 회사 오퍼를 받아서 영원히 돌아오지 않는 걸로... 당신은 속이는 데 탁월한 능력 자니까. 매니저의 필수 덕목을 두루 갖췄으니?
내가 들어가는 과는 6개월 과정의 Heath Care Assistant이다. 사실 Nursing으로 가려했으나 막상 과목수도 부족하고 돈도 더 들고 해서. 졸업하면 일하다가 연계과정으로 간호과 연결될 수도 있고 일단 졸업하자마자 현장 투입이 가능하기에 실직기간이 거의 없다. 결정적으로 내가 잘 해낼지 모르기 때문에 일단 짧은 것부터 시작. 정부보조를 놓친 것은 안타까우나 정부보조로 들어가면 한 곳에서 1년을 일해줘야 만이 다른 현장의 구직의 자유가 허락하지만 난 일단 내 돈으로 들어가니 졸업하면 내 입 맛에 구직을 할 수 있다는 것. 일하다 영 이 일은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면 뭐 다시 하던 거 하면서 먹고살아야지 뭐.
이제 수업 2주 차. 30-40분 고속도로출퇴근 운전하는 것은 아직도 적응이 되지 않는다. 어쩜 운전하면 할수록 멀게만 느껴질까? 빨리 남은 12주의 수업이 끝나서 집 근처 요양원으로 실습 나가는 날만을 학수 고대 할 뿐, 15년 차 같은 길을 통근하는 직장동료가 대단해 보이다 못해 미친 건지 미련한 건지 라는 의문이 들어가기 시작했다. 왜 Exit으로 나가기까지 왜 이렇게 길게만 느껴지는 걸까?
강사들은 2명의 은퇴를 바라보는 3-40년의 경력의 두 간호사 할머니... 수업 시작부터 똥, 오줌 치워야 되는 얘기부터 시작하신다, 목욕도 시켜줘야 하고, 사람 병들어 죽어가는 과정 지켜봐야 하는 정신적 스트레스도 감당해야 하고, 환자 들었다 놨다 어깨 나가고 허리도 나갈 수 있으니까 조심해야 된단다. 그리고 꽤 많은 졸업생들이 진로를 바꾸기도 한다고 한다, 실제로 현장 실습 갔다가 지나가는 사람이 자기 기억하냐고 제자였다고 근데 너무 힘들어서 다른 일하고 있다고 하는 학생들을 종종 본다고...
워낙 3D 업종이라. 생각해 보니 옛날에 같이 미대 졸업한 오빠가 미술 쪽으로는 먹고살기 힘들어서 간호사 된다고 병원 들어갔는 데 똥기저귀 갈아주다 현타 왔다는... 뭐 든 밑바닥부터 시작하는 거 아닌가? 그리고 많은 사람들이 HCA를 평생업으로 하기도 한다. 넘쳐나는 베이비 부머 세대들을 감당하기에는 턱 없이 부족한 인력 구조 말하자만 버섯 모양 구조인지라 향후 20년간 상향 사업임은 분명하다. 문제는 내가 은퇴하면 우리 세대를 돌볼 세대가 엄청 인력부족일 거라는 점. 하지만 그때는 또 그때대로 대비책이 있겠지. 지금 많은 요양시설이 필리핀 인력으로 대체되고 있듯이. 아마도 내 세대쯤엔 아프리카에서 요양사들이 올 지 모를 일이다.
아무튼 오랜 시간 일모드였다가 10년 만에 학교 모드로 바뀌니 몸에서 이런저런 이상 신호도 보내온다. 그동안 뒤돌아 돌아보지 않고 일 만했다는 생각도 든다. 내가 요양사가 되기 전에 요양사가 필요하게 생겼다. (실제로 요양원에 젊은 나이에 쓰러져서 온 사람들이 있다!)
그보다도 정신없이 나가는 학교 관련 지출에 눈이 막 돌아가면서 뒷목이 댕기기 시작한다. 교재도 사야 하고 주차장 티켓도 끊어야 하고 면역검사도 받아야 하고 기름값도 무섭게 나가고, 이제야 깨닫는다. 아 학생이란 엄청난 소비계층으로서 지역사회 발전에 엄청난 이바지를 하고 있구나. 그네들은 참 소중한 존재인 것이다. 그리고 이 사회가 돈이 돌고 지역 경제가 돌아가는 것이다.
새로 지은 Heath and Science 학교 건물 꼭대기 전망에 아래를 바라보니 여기저기 파헤쳐놓은 공사터가 눈에 뜨인다. 학생들이 피 같은 학비로 증축하느라 분주해 보이는 모습들이다. 한국 대학들은 다들 학생이 부족해서 문을 닫는 다는데, 여기는 예외인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