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삿포로 북동부에 <모에레누마 공원>이라는 곳이 있다.
워낙 넓어서 그런지 자전거를 타고 돌아다니는 사람이 많은 곳이다.
이제와 생각해보면 그 당시 뭐에 씌었었던 게 틀림없다. 나는 대담하게도 친구에게 자전거를 대여하자고 제안했다. 자전거 고수인 친구가 괜찮겠냐며 걱정했지만 괜찮다고 했다. 어이없게도 탈 수 있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기어코 자전거를 빌린 나는 대여소 직원에게 타는 법을 가르쳐 달라 청했다. 전남친, 언니에 이은 세 번째 희생양이었다.
친절한 일본인 직원은 무척 당황했을 텐데도 대여소 앞 공터에서 나에게 출발하는 법을 가르쳐주었다.
나는 과연 혼자 출발했을까?
될 리가 있나.
직원이 아무리 열심히 가르쳐줘도 나는 비틀거리기만 할 뿐 출발하지 못했다.
점점 민망해진 난 얼마 못 가 포기를 선언했다.
기어코 남의 나라까지 가서 민폐를 끼친 순간이었다.
그날 난 신나게 자전거를 타는 친구 뒤에서 자전거를 '끌고' 다녔다.
굴욕적이었다.
그 일이 어지간히도 마음에 걸렸었나 보다.
일본에 다녀온 후로도 문득 문득 자전거 생각을 하며 집착을 하던 중, 기가 막힌 광고 하나를 발견했다.
구청에서 주최하는 무료 자전거 교육 광고였다.
나는 홀린 듯 그 자리에서 구청 홈페이지에 가입해 교육을 신청했다.
이것은 나에게 주어진 마지막 기회였다. 이번에도 안 되면 자전거는 영원히 포기하자 다짐했다.
교육은 4주간, 매주 토, 일요일 오전 10시부터 12시까지였다.
아침잠이 많은 나에겐 말도 안 되는 스케줄이었다. 돌이켜 보면 저걸 해 낸 게 놀라울 따름이다.
그 당시 가족 말곤 누구도 나의 은밀한 수업에 대해 알지 못했다.
주변에서 이런 공식 교육을 받고 자전거를 배웠다는 사람은 듣도 보도 못했기 때문에 왠지 모르게 남사스러웠던 것이다.
교육 첫날, 떨리는 마음을 안고 약속 장소에 도착했다.
나보다 먼저 도착한 수십 명의 사람을 보자 안심이 되었다. 세상에 이렇게나 자전거를 탈 줄 모르는 성인이 많다니…
우리는 모두 관종처럼 구청 이름이 박힌 형광 조끼를 입고 팔꿈치와 무릎에 보호대까지 찼다.
준비는 모두 끝났다. 이제 타기만 하면 된다.
주말의 중랑천엔 사람이 매우 많았다. 산책하는 사람들, 운동하는 사람들, 쫄쫄이를 입고 전문가용 자전거를 탄 채 쌩쌩 달리는 아저씨들까지, 모두가 우리를 주목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냥 흘깃 보고 지나쳤지만, 어떤 아이들은 '저 아줌마들 뭐 하는 건가' 싶은 표정으로 외계인 보듯 대놓고 쳐다봤다. 다 괜찮았는데, 쫄쫄이 아저씨들이 내 심기를 불편하게 했다. 그들은 우리를 향해 '파이팅!' 하며 큰 소리로 외치더니 핸드폰으로 사진을 찍으며 미친 듯이(이건 내 망상 아니었을까) 웃었다. 그게 꼭 나를 비웃는 것만 같아 자격지심이 일었다. 당장 사진을 지우라고 소리치는 상상을 하면서 혼자 몰래 도끼눈을 뜨고 아저씨들을 노려보았다. 지금 생각하면 우습기 그지없다. 그게 뭐가 그렇게 자존심 상하는 일이라고 열을 냈단 말인가. 그 아저씨들은 순수하게 응원해 준 것이었을 텐데.
다행히 교육은 그 모든 굴욕을 감내할 만한 가치가 있었다.
자전거 하나 배우는데 무슨 한 달이나 걸리냐고 생각하겠지만, 다 이유가 있다.
지금까지 나에게 자전거를 가르쳐 준 사람들은 모두 내 뒤에서 함께 달리다가 스리슬쩍 손을 놓는 고전적인 방식을 택했다.
이곳에선 무조건 혼자 한다. 누가 뒤를 잡아주는 일은 없다.
안 되면 될 때까지 강사가 1:1로 붙잡고 가르쳐준다. 자신의 수업에 낙오자 따윈 없다는 강사의 사명감에 감격할 지경이었다.
스텝 바이 스텝의 체계적 시스템 또한 믿음직했다. 어떤 각도로 올라 타 어떻게 출발해야 하는지, 코너를 돌 땐 어떻게 페달을 밟고 어디에 시선을 두어야 하는지까지 배웠다.
물론 여기서도 열등생이었던 나는 혼자 버벅대며 자주 헤맸다. 그래도 예전과 다른 점이 있다면, 쉽게 포기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수업 2주 차, 누구의 도움도 없이 혼자 출발해 처음으로 바람을 맞으며 트랙을 달리던 그 순간을 나는 잊을 수 없다.
행복했다. 이게 뭐라고.
한 달 동안 나는 단 한 번의 결석도 하지 않았고, 단 1분의 지각도 허용치 않았다. 마지막 날엔 1시간의 라이딩까지 모두 끝마쳤다. 마침내 해낸 것이다.
모든 수업이 끝난 후 다 함께 모여 기쁨의 물개박수를 칠 때 나는 속으로 나 자신을 격하게 칭찬했다.
드디어 자전거를 탈 줄 아는 성인이 되었다.
그 이후로 신나게 따릉이를 타고 동네를 누볐다는 후일담이라도 있었으면 좋겠지만, 아쉽게도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교육 이후론 또 이런저런 핑계를 대며 자전거를 멀리했다.
여름엔 덥다고, 겨울엔 춥다고, 덥지도 않고 춥지도 않을 땐 바쁘다고 안 탔다.
그렇게 1년이란 세월이 흐른 후, 생뚱맞게도 남이섬에서 자전거와 조우했다.
그리고 1년 후, 친구들과 올림픽 공원에 가서 또 탔다.
외국어, 수영, 피아노 같이 어릴 때 배워두는 게 절대적으로 유리한 것들이 있다. 겁도 없고, 습득력도 높은 시절에 배워두면 성인이 되어서도 잊어버리지 않는다.
나만 그런 걸 수도 있지만, 성인이 되고 나니 점점 겁쟁이가 되고 핑계가 많아졌다. 그러다 보니 무언가를 새로 시작한다는 것 자체가 부담스러워졌고, 어찌어찌 시작한다 해도 지속하기가 쉽지 않았다.
'이래서 안 돼, 저래서 안 돼, 다 늙어서 굳이, 다 늙어서 쪽팔리게.' 갖은 자기 합리화를 해 가며 도전을 피했다.
그렇게 이 핑계 저 핑계 대며 포기하는 게 많아졌고, 정신을 차려 보니 나는 제대로 할 줄 아는 게 하나도 없는 납작하고 재미없는 인간이 되어 있었다.
그럴 때 자전거를 배운 것이다.
나는 사이클 선수가 되고 싶어서 자전거를 배우려던 게 아니었다. 그냥 따릉이를 타고 동네 스타벅스나 도서관에 가고 싶은 것뿐이었다.
이제 나는 따릉이를 타고 원하는 곳에 갈 수 있다.
물론 여전히 잘 타진 못한다.
고수들처럼 차도 가장자리에서 타는 건 엄두도 못 내고, 인파로 붐비는 곳에선 자주 멈춘다. 자유자재로 사람과 장애물을 피하지도 못하고, 멀쩡하게 달리다 혼자 비틀거리기도 한다.
그래도 나는 내가 해냈다는 것에 자부심을 느낀다.
오로지 내 의지로, 내 부지런함과 성실함으로 이루어 낸 일이니까.
자전거 타기.
남들은 다 하는데 나만 못했던 것, to do list에 오래도록 남아 마음의 짐이 되었던 미션 하나를 클리어했다.
자전거를 통해 나는 깨달았다.
포기만 하지 않는다면 '이 나이'라도 못할 건 없다는 것을.
자전거를 못 타는 사람도 있냐고 묻던 그때 그 신입사원에게 말해주고 싶다.
"저도 자전거 못 탔었는데요.
이제는 탈 줄 알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