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전거를 못 타는 사람도 있어요?"
두 눈을 동그랗게 뜨고 묻는 신입사원 앞에서 '나는 자전거를 못 탄다'라고 밝힌 불혹의 팀장님이 어색한 웃음을 지었다. 옆에 앉아 있던 나는 '그게 어때서? 나도 못 타는데?'라며 팀장님에게 힘을 실어주는 대신 은은한 미소를 머금은 침묵을 택했다. 마치 나는 자전거를 탈 줄 안다는 듯이.
남들 다 타는 자전거를 서른이 훌쩍 넘어서 배웠다.
자전거는 보통 어릴 때 아빠에게 배운다고들 한다.
아이가 탄 자전거 뒤꽁무니를 잡고 달리던 아빠는 아이가 '아빠, 절대 손 놓으면 안 돼!'라고 신신당부하면 '당연하지. 절대 안 놔!'라고 대꾸해놓곤 슬쩍 손을 놓아버린다. 그 사실을 모르는 아이는 자기가 혼자 자전거를 타고 있는 줄도 모른 채 신나게 달리다가 어느 순간 이상한 느낌이 들어 뒤를 돌아본다. 아빠는 손을 흔들며 흐뭇한 얼굴로 아이를 보고 있다.
내겐 그런 기억이 없다.
혹시 너무 어릴 적 일이라 잊은 건가 싶어 부모님에게 물어본 적이 있다.
“아빠, 왜 어릴 때 나한테 자전거 타는 법 안 가르쳐줬어?“ 아빠는 대답 없이 웃기만 했다.
농담 반 진담 반으로 왜 자전거를 안 가르쳐서 날 부끄럽게 하냐고, 이건 다 엄마아빠 탓이라고 했더니 옆에 있던 엄마가 콧방귀를 뀌며 별걸 다 부모 탓을 한다고 비웃었다.
자전거를 배워야 한다는 생각이 불현듯 들었다.
내 키의 반도 안 되는 꼬맹이들도 타고, 머리가 하얗게 센 노인분들도 타는 자전거를 젊고 사지 멀쩡한 내가 못 탄다는 건 말이 안 된다.
하지만 이 나이에 어떻게 배운단 말인가?
도와줄 사람이 필요했다.
(그 당시) 남친이 첫 희생양으로 지목됐다.
(불쌍한) 전남친은 곧 무슨 시련이 닥칠지 상상도 하지 못한 채 본인의 애착 자전거를 끌고 나와 함께 한강으로 향했다.
그는 도무지 혼자 출발할 줄을 모르는 내 뒤에서 땀을 비 오듯 흘리며 장장 1시간 동안 고통받았다.
미안했고, 민망했다.
결국 난 다음에 다시 하자며 급하게 자전거에서 내렸고, 우리는 말없이 집으로 돌아갔다.
이후 내가 다시 자전거를 타는 일은 없었다.
몇 년 후, 따릉이가 보급되었다.
나 빼고 서울 사람 모두가 따릉이를 타는 것만 같았다. 자전거를 못 탄다는 사실이 나를 부끄럽고 위축되게 만들었다. 그간 자전거를 못 탄다는 게 내 삶에 아무런 지장을 주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그러다 보니 생각이 자꾸 '자전거를 탈 줄 알았더라면...'으로 흘러갔다.
자전거를 탈 줄 알았다면 지하철역에서 사무실까지 10분 동안 걷는 대신 1분 만에 날아갈 수 있을 텐데.
자전거를 탈 줄 알았다면 동네 스타벅스에 가기 위해 버스를 탈 필요가 없을 텐데.
그런 생활 밀착형 생각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졌다.
나에게 자전거를 가르쳐 줄 다음 강사를 물색하는 건 예정된 수순이었다.
이번엔 언니가 내 레이더망에 걸려들었다.
언니는 몹시 귀찮아하면서도 주말에 나와 함께 집 근처 중랑천으로 향했다.
수업은 최악이었다.
넘어질까 두려워 벌벌 떠는 날 언니는 답답해했고, 나는 친절하지 못한 언니가 원망스러웠다.
운전은 가족에게 배우는 게 아니라고 하던데, 자전거에도 해당되는 말인 것 같다.
도무지 진도가 나가지 않아 슬슬 자매의 의가 상할 때쯤, 기적처럼 나는 혼자 달리기 시작했다.
동그란 트랙을 빙빙 돌며 신나 하는 날 보며 언니도 드디어 허리를 펴고 미소를 보였다.
그러나 하늘은 터키 아이스크림을 파는 아저씨처럼 나에게 기쁨을 줬다 바로 뺏어갔다.
아무런 장애물도 없는 공터에서 혼자 넘어져 피를 보고야 만 것이다.
탈 줄 알게 되었을 때 반복 연습을 해서 몸에 익혀야 했건만, 이때다 싶었던 난 손바닥의 상처를 핑계로 자전거를 다시 내팽개쳤다.(변명 같지만 실제로 상처가 너무 심해 다 나을 때까지 탈 수 없었다)
나 자신이 이렇게 한심하게 느껴진 적이 있었던가.
그렇게 또다시 몇 년이 흘렀다.
친구가 유학하고 있는 삿포로로 여행을 간 나는, 자전거로 인해 잊지 못할 굴욕을 당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