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적 나에 대한 기억
낯선 구불구불한 골목길을 들여다보며
어린 시절의 기억을 꺼내본다.
어제 지하철을 잘못 지나쳐 신이문역 4번 출구에 내려 터벅터벅 걸어왔다.
원래라면 조금 짜증 났을 상황인데, 이상하게도 마음 한편이 따뜻해졌다.
어릴 적 나는 호기심이 많아 골목과 골목 사이를 파고들며
낯선 길로 돌아 집에 오는 걸 유난히 좋아했기 때문이다.
딱 30년 세월을 뺀 8살 소녀로 돌아간 듯,
오래된 동네의 곡선과 굽이굽이 한 골목길이 반갑게 다가왔다.
얼마 전 나는 이 동네로 다시 이사 왔다.
어릴 땐 빗소리를 들으며 잠들었고,
나만의 일기장에 하루를 끄적였고,
딸깍 소리가 나는 선풍기 옆에서 수박과 미숫가루를 먹으며
여름을 견디던 그 시절의 내가 문득 떠올랐다.
그 아이가 그립고, 보고 싶어졌다.
30년이 흐른 지금, 나는 그때의 나보다 훨씬 많은 것을 겪고
다른 모습으로 자라났지만,
빨리 어른이 되고 싶어 달력을 세어보던 그때의 내 마음이
이제는 도리어 그리워지는 나이가 되어 있었다.
그때의 내가 그리워질 나이가 되었다.
13살 사춘기 딸아이와 씨름하고, 11살 아들과 아옹다옹하며 보내는 2025년의 나,
서른여덟 살의 시간은 그렇게 흘러가고 있다.
세상이 멸망한다던 2000년을 훌쩍 지나
나는 여전히 이렇게 멀쩡히 살아 있고,
앞으로도 살아내야 하고, 잘 헤쳐 가야 한다.
그런 생각을 하니, 어쩐지 마음 한편에서 오래된 원동력이 천천히 깨어나는 듯했다.
나는 어린 시절, 혼자서 이 골목 저 골목을 기웃거리며
모르는 길로 들어갔다가 또 다른 길로 빠져나오곤 했다.
방향도 모른 채 발길 닿는 곳으로 걷는 그 시간이
나도 모르게 나를 단단하게 만들었는지도 모른다.
시공간이 있다면, 다른 시간 속에 살고 있는 어린 나에게
잠시 찾아가 말해주고 싶다.
조금 더 행복하고, 조금 더 즐겁게 살아도 된다고.
너무 서두르지 않아도 된다고.
세상이 변해도 나의 본질은 변하지 않기 때문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