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버트 조지 웰스 '타임머신'
‘... 예를 들어,
내가 어떤 사건을 아주 생생하게 떠올리고 있다면, 나는 그 사건이 일어난 순간으로 돌아가는 겁니다.
소위 정신이 여행하는 상태가 되는 거지요.
타임머신_하버트 조지 웰스
몇 장을 읽다 보니, 아… 왠지 익숙한 이 설정…. 읽었던 책이었다.
물론 sf모음집에서 읽은 거라 앞부분이 잘린 채로 중간부터의 내용이 어렴풋 기억날 뿐이다. 민망하지만 그때도 흥미롭게 읽었던 기억은 있다.
이런 책이 또 있다.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
한참을 읽다가, 뭐지? 이 낯익은 느낌은???? 주르륵 넘겨보다 보니 기억이 났다. 아… 이거 읽었구나. 어이없이 책을 내려놨었다. 근데 더 어이가 없는 건 그게 처음이 아니었다는 거다. 이상하게도 그 책은 지금도 내용이 잘 기억나지 않는다. 또다시 읽어봐야겠다.
여하튼 이 책의 앞부분에서 이야기하는 차원에 대한 토론이 매우 흥미로웠다.
‘시간여행자'는 우리가 차원에 대해 잘못 이해하고 있다고 주장하며 이야기를 시작한다. 우리는 길이와 너비, 두께를 가진 삼차원 공간에 살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실은 시간을 포함한 사차원의 세계, 각각 한 방향으로 끊임없이 나아가는 네 개의 일직선 상에 살고 있다고 주장한다.
한 사람이 반대한다. 삼차원 상에서 우리는 마음대로 이동할 수 있지만, 시간은 그렇게 할 수 없지 않냐고!!!
시간 여행자는 반론한다. 우리는 중력에 의해 마음대로 이동할 수 없다. 순간적으로 뛰어오르는 것은 가능하지만, 긴 시간 떠 있을 수는 없는 것이다. 인위적으로 인간이 과학에 의해 만들어낸 기구를 이용해 오를 뿐이다. 그러므로 시간도 특별한 어떠한 장치를 이용한다면 그 흐름에 반하여 이동할 수 있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이 논쟁을 읽다 보니 크리스토퍼 놀런 감독의 영화 ‘인터스텔라'가 생각났다. 당시 영화를 볼 때 중간중간에 나타나는 이상현상들이 미국 드라마에서 여차하면 등장하는 환상, 심령, 미지의 존재에 의한 현상으로 표현되는 것 같아 많이 실망했었다. 그래서 블랙홀을 통과하며 다차원의 세계, 죽죽 늘어진 벽장 같은 시공간 속에서 답을 찾아가는 장면을 보며, 내가 그 장면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다는 생각보다 영화적 표현의 한계라 생각하며 갑갑함을 느꼈다. 하지만 이 책을 읽으며 그 장면들이 다르게 이해되었다. 그는 상상하기 힘든 다차원의 세계를 최선의 방법으로 시각화한 것이다. 사차원의 한 단면을 잘라낸 순간, 그 시공간의 틈새를 이미지화 하기에 그 이상의 방법은 없을 듯하다.
중반부터의 이야기는 시간 여행자가 타임머신을 이용해 대략 80만 년 후의 '미래'로 가서 겪는 모험담으로 이어진다. 되려 과거로 거슬러 올라간 듯 원시적이고 휑한 도시의 모습은 작가의 염세적인 미래관을 드러낸다.
시간 여행자가 처음 마주한 미래의 인류는 조그마하고 아름다운 모습이었다. 그들은 사회 시스템이 완벽해져 감에 따라 점점 더 편안하고 안정된 삶을 살게 되었고, 그에 맞게 모습뿐만 아니라 지능과 삶의 방식도 변화해 있었다. 발전의 발전을 거듭하며 그들의 사회는 필요 없는 것들을 버리고 점점 단순해진 것이다. 그 과정 중에도 계급만은 변함없이 존재하였고, 결국 극단적인 두 종의 인류로 분류되어 전혀 다르게 진화(혹은 퇴화)하였다. 모든 것이 아름답고 평화롭게 보이는 그곳은 유토피아일까. 그 속에 보이지 않는 공포가 존재한다.
작가노트에서 그는 출판을 위해 쓰다 보니 초기의 작품 구상과 달리 뒷부분의 내용 구성이 많이 가벼워졌다며 스스로 아쉬운 평을 한다. 하지만 19세기 말에 쓰인 이 소설은 타임머신에 대한 최초의 과학소설이다. 그리고 디스토피아적인 미래사회를 보여줌으로 현재를 비판적으로 바라보는 시각을 던져준다. 조지 오웰이 떠오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