멀고 아름다운 동네
안녕히 가십시오와 어서 오십시오.
거푸 받은 두 번의 인사가 그를 쓸쓸하게 하였다.
서울은 막무가내로 그들을 밀어내었다.
온갖 책략을 동원해서 그들을 쫓아낸 뒤 안녕히 가십시오라고 음흉한 작별을 고했다.
달리는 트럭의 짐칸에 실려서 그는 부천시의 인사를 받았다.
저 반지르르한 인사말 속에는 또 어떤 속임수가 담겨 있는 것인지,
새삼 불안에 떨며,
아니 추위에 떨며 그는 펼쳐지는 새 풍경을 바라보았다.
원미동 사람들_양귀자
두 달을 채 못 채우고 짐을 뺀다. 잦은 이사. 넓고 넓은 서울에서 '집'이라는 희망을 갖지 못해 내쫓기듯 배부른 아내와 늙은 어머니, 어린아이를 안고 '멀고 아름다운 동네'로 향한다.
'여기저기 난립한, 똑같은 모양의 집장사 집들이 공터들 사이에 어색하게 서 있는 한적한 거리'를 몇 분 달려 '암회색의 어두운 공장지대와 굴뚝의 시커먼 그을음'과 잇대어 그들이 살아갈 동네.
그곳에 모여사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원미동 23통의 지도를 그려나간다.
대기업에서 관리직으로 일하다 하루아침에 해고당하고 외판원으로 나선 진만이 아버지의 고군분투기.
땀의 대가를 믿는 강노인이 고집스레 지키고 선 마지막 땅조각.
서울에서 무슨 사정인가 대학을 잘리고선 머리가 살짝 이상해진 원미동 시인 몽달씨와 23통 5반 반장인 형제슈퍼 김반장 사이의 묘한 이해관계.
마지막 터전을 찾아온 인삼 찻집 홍마담과 뒤늦은 사랑에 빠진 행복사진관 엄씨.
비 오는 날이면 가리봉동으로 떼인 돈 받으러 가는 겨울엔 연탄장사, 여름엔 공사판 막일꾼 임씨의 넋두리.
알뜰살뜰히 돈을 모아 김포상회에서 김포슈퍼로 도약한 경호네와 형제슈퍼 김반장 간의 아슬아슬한 가격경쟁. 그리고 새로 생긴 싱싱청과를 향해서는 똘똘 뭉친, 그들의 텃새 부림.
'똥쌀 데가 없으면 처먹지를 말아야지!' 칼끝 같은 목소리에 배를 움켜잡는 지하생활자와 마침내 그가 마주한, 아무리 두드려도 대답 없던 102호 주인아주머니의 동굴 같은 속 사정.
자동차 바닥 커버를 제작하는 자그마한 공장. 보너스를 요구하며 파업에 나선 공장 노동자와 이제 겨우 빚 좀 가려보려는 사장의 별반 다를 바 없는 처지.
개발의 중간지대에서 살아가는 그들의 이야기는 때로는 이기적이고, 때로는 안쓰럽기도 하며, 어이없어서 웃음이 나는, 그런 시시콜콜한 이야기들이다. 도시 변두리 사람들의 서늘한 삶의 이야기가 묘하게 따듯하게 느껴진다. 아마도 이웃 간에 서로 얽히고설킨 시절에 대한 향수와 소외된 시민으로서의 동질감이 뒤섞여 느껴지는 감상인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