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전 충치로 때웠던 부분이 갑자기 부서져 치과에 가게 되었다. 부서진 부분만 다시 때우면 되겠지 하고 가볍게 생각했는데, 구멍을 메우고 이 전체를 덧씌워야 한댄다. 신경치료를 하지 않은 치아라 최소한만 갈고 강도 높은 재질로 씌워야 된대서 가격이 만만찮았다. 그래도 해야지. 할 수밖에.....
근데 젠장. 치료 후 이가 시리기 시작했다. 멀쩡하던 이가 갑자기 시리고 아프니 치과 의사 선생님이 그렇게 미울 수가 없었다. (일부러 돈 벌려고 잘못 치료한 거 아냐??? 이거 해서 얼마나 남겨먹으려고!!) 애써 참아보려 해도 도저히 견딜 수 없는, 치통이란 게 그리 고통스럽단 걸 처음으로 알았다. 두통, 치통, 생리통엔 게보린~ 을 생각할 겨를도 없이 눈물이 그렁그렁한 채 다시 치과로 달려갔다. 잔뜩 인상을 쓰고 들어선 내게 선생님은 얄밉게도 담담한 표정으로 신경치료를 하면 곧바로 괜찮을 거라며, 걱정 말라며 기계적인 움직임으로 마취 주사를 장전하셨다.(역시 일부러!?!) 치과 침대에 누워 온몸에 경련이 올 정도로 긴장했다. 눈을 가리고, 입을 벌리고, '좀 더 크게 아~'.
근데 이 신경치료라는 게 신경을 건강하게 치료하는 게 아니라 치아 속에 구멍을 뚫어 신경을 긁어 없애는 거다. '신경 삭제'라 해야 맞겠지. 아픔을 느끼지 않도록 신경을 없애버리는 치료. 정말 거짓말 같이 아픔이 사라졌다. 물론 처음 몇 시간은 마취 주사 약기운에 그런 거겠지만, 결국 고통을 뇌로 전달하는 장치를 끊어버림으로 더 이상 아픔을 느끼지 않게 한 거다.
치료를 마치고 집에 돌아오는 길에 갑자기 조금 두렵고 아쉬운 마음이 들었다.
아픔을 느끼지 않는 치아는 살아있는 치아일까. 고통을 좀 더 견뎌내야 했던 건 아닐까. 섣부른 엄살을 부려 내가 더 이상 느낄 수 없는 내 몸 한 구석을 만들어버렸다.
뭔가 씁쓸한 기분이 든다. 내 오른쪽 가장 안쪽 니는 더 이상 내게 말을 걸지 않는다.
좀비 같은 녀석이 내 입 깊숙한 곳에 숨어있다.
역시 치과는 이래저래 두렵다.
(아, 중간에 어마어마한 비용과 통증 때문에 너무 미웠지만, 그래도 꼼꼼하게 치료해주신 선생님께 감사. 그분도 내 이가 갑자기 시리게 될지 모르셨을게다. 그리고 잔뜩 짜증 섞인 내 표정에 당황도 하셨을 테고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