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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공구공오 Apr 10. 2020

밤이 되면, 떠올리자!

돌아갈 곳이 있다는 것에 대해.

날 스쳐지나 가던 사람들은 말한다. 소심한 사람들은 사람 사귀는 게 정말 힘들겠다고. 처음에는 어색한 분위기 때문에, 말도 잘 못 붙이는 성격에다, 남의 의견에 이리 저리 끌려 다녀 결국 그 관계는 기형적인 모습으로 참다 못해 부러질 거라고. 어느정도는 맞는 말이었지만, 나에겐 그런 경우는 거의 없었다. 다행히도. 나의 인간관계에서는 오히려 나의 소심한 성격이 멀리 떠나와도 다시 돌아올 품을 마련해주는 사람들로 가득 채워 주었기 때문에.





난 방송부 부원으로서 활동했던 초기에 가장 후회했던 것은 ‘친구’가 없는 점이었다. 다들 각자 반에서 짝을 이뤄 온 아이들이 대부분이었고, 서로 다들 모르는 사람과 말 섞인 힘든 분위기 때문이었을까 처음이란 단어가 지배할 무렵, 서로 형식적인 인사와 말만 건넬 뿐이었다. 남자아이들은 모르겠지만, 여자아이들 사이에서는 마음을 털어 놓을 ‘친구’를 한 명씩 차지하기 위해 은근한 신경전을 펼치고 있었다. 난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 필요한 말만으로 관계를 진행해 나갔었다. 솔직히, 내가 지금까지 생각해 보았지만, 방송실에서 내 본심을 드러낼 만한 말들을 거의 하지 않았던 것 같다. 친구들의 화젯거리에 맞추어 이야기의 불씨를 던져주는 제 3자, 즉 방관자 역할로 그들을 찬찬히 뜯어보고 지켜보고 있었다.



제 3자 역할이란 말이 거부감이 들 수도 있겠지만, 소심한 성격을 가진 나로서 정말 괜찮은 역할이었다. 굳이 나서서 친구를 사귀어 맞지도 않는데, 불편한 관계를 만들고 싶진 않고 싶은 이유가 가장 큰 것이었다. 그리고 난 친구를 사귈 땐, 그 사람의 행동과 성격을 면밀히 관찰한 후에, 대하는 것이 사람과의 관계를 맺을 때 무심코 튀어나오는 버릇이었다. 후에, 사이가 멀어져도 뒤틀려지는 조짐이 보여도, 그 사람에 맞게 바로 고칠 수 있게 하는 기술이 나에겐 무척이나 필요한 요소였으니. (적고 보니 사회부적응자 같지만, 그건 아니다.) 그렇다고, 제 3자로서 편안한 방송부 생활을 했던 것은 아니다.



 그나마, 제일 힘들었고, 2년동안 했던 고민은 ‘밥을 누구랑 먹어야 되나?’ 이었다. 방송부는 점심시간 오후 2시부터 매일같이 회의를 해야 했기 때문에, 일찍 먹는 식사권이 부여되었다. 하지만, 나랑 친하게 지내는 반 친구는 식사권이 부여되지 않아, 혼자 뛰어 먹고 와야 되는 상황이었다. 지금은 ‘혼밥’이란 것이 너무나 편하지만, 다른 사람의 시선이 내 세계의 반 이상을 차지할 시기였으니, 넓은 공간, 사람들로 가득 채워진 급식실에서 혼자 먹는다는 것은 내게 큰 공포였다. 초반에는 방송부 친구들이 내가 같이 먹을 사람이 없다는 것을 알게 되어 같이 먹자고 하였지만, 그들의 호의가 나에겐 부담으로 다가와 얼마 못 가 밥을 굶기 일수였다. 하지만, 정말 다행히 방송부가 아닌 같이 먹을 친구가 가끔씩 생겨나, 점심은 그럭저럭 챙겨 먹게 되었다.



그리고, 제 3자로서의 가장 큰 장점이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은 그들의 속마음을 들을 수 있다는 거였다. ‘너는 말도 별로 없고, 조용하니, 비밀 잘 지킬 거 같아.’란 희한한 이미지를 씌워 나에게 종종 속마음을 들려주었다. 각 사람마다의 각 속사정과 비밀을 알고 나니, 방송부원들의 관계를 정확하게 파악할 수 있었다. 난 그 틈새에서 각 사람마다의 신뢰와 친분을 쌓을 수 있었다. 겉으로 눈에 보이는 친근함이 아닌, 속마음을 주고받는 이야기를 하는 사람으로서 방송부에서 한 켠을 존재할 수 있었다. 그렇다고, 아예 겉돌진 않았다. 시간이 지날수록 다들 친해져 갔었고, 난 내 소심한 성격을 친해지는 타이밍에 그렇게 녹여 낸 것일 뿐이었기 때문에.



 하지만, 그 관계를 형성하면서 깨달은 것이 누구든 ‘자기 일을 열심히 묵묵히 하는 사람’은 다른 사람과의 관계를 맺는 기회가 찾아온다. 내가 대학생이 되어도 이 사실을 바뀌지 않았다. 물론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관계에서 제일 중요한 건 신뢰이기 때문에, 자기 일에 책임을 가지고 열심히 하는 사람에겐 알게 모르게 믿음직한 이미지와 신뢰가 깔려 있다. 나처럼 소심한 사람들은 그 기회를 잘 포착하여, 저 깊게 묻은 속 마음까지도 털어놓을 수 있는 사람과 친구를 맺으면 된다. 그 뒤로는 자신이 하기에 달렸지만, 사람은 ‘끼리끼리’란 말처럼, 열심히 하는 사람에겐 열심히 하고 있는 사람이 붙기 마련이다. 질량 보존 법칙처럼 성질 보존 법칙 같은 인생에 큰 일이 일어나질 않을 경우, 나와 같은 성향을 가진 사람들끼리 말이 맞고, 친해질 기회조차 많아 지기 때문에, 그 틈을 잘 노리면, 좋은 친구를 사귈 수 있을 것이다.




지금까지도 방송부 친구들과는 연락을 가끔씩 하며 지내고 있다. 하지만, 방송부를 했다면 이것만은 알 거다. 방송부에서 화가 났던 일이나 속상했던 일들을 가장 잘 들어주는 방송부 외의 사람이 있었을 것이다. 내부에 있는 사람에겐 잘 못 말했다간, 소문이 쉽사리 퍼져버리니, 그 외부의 사람과 친분을 더 깊게 맺는 경우들이 종종 있을 것이다. 나도 여기에 포함되는 친구들이 있었고, 또 그 이상으로 나를 변화해주었던 고등학교 친구들에 대해 말하고 싶다. 이 아이들이 빠지면, 정말 섭섭하기 때문에.






고등학교에서 사귄 친구들 덕분에 내 소심한 성격 때문에 밀려오는 압박감을 줄일 수 있었다. 다들, 인터넷에 소심한 성격 때문에 인간관계에서 불편을 겪고 있는 사람들이 많다. 또한, 우리나라 사회도 적극적이고, 활발한 성격을 선호하는 편이고. 하지만, 내가 생각할 때 소심한 성격이기 때문에 가장 좋았던 점은 내 편, 내가 다시 돌아갈 수 있는 곳이 되어줄 깊은 관계인 친구가 내 옆에 있다. 양보단 질이란 말이 있듯이 가벼운 관계보다 내 어둠까지도 나눌 관계를 선호하지 않나. 난 그러한 친구들을 고등학교 때 많이 사귀었다. 특히, 고등학교 3학년 때. 고등학교 3학년은 정말 하루하루가 숨 막히고, 미래만을 위해 투자할 뿐이었다.



 가장 나이가 많은 학생으로서 방송부 후배들이 사고를 치면, 고등학교 3학년 방송부는 어떻게든 욕을 먹었다. 3학년 선생님도 친구들도 다들 예민한 시기이기 때문에, 혼선이 되어 1학년 방송이 송출되어 들리게 되거나, 모의고사 종만 잘 못 쳐도 따가운 눈초리로 ‘방송부 후배들 교육 잘 못 시켰나.’란 말이 여기 저기서 들려올 정도였다. 그럴 때마다, 참고 참아 터질 때면, 후배들에게 따끔한 말을 해주게 되었다. 3학년 방송부로서 참 억울하였다. 후배들의 마음은 무척이나 이해하지만, 예민함이 max가 된 하루들에 갇혀 사는 선배로서 후배들의 실수로 더 이상의 스트레스는 받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때마다 날 위로해준 건 고등학교 3학년 친구들이었다. 후배들에 대한 화가 머리 끝까지 날 때면, 과자 같은 달달한 주전부리로 내 마음을 녹여주고, 서로가 힘들 때면, 세상 심각한 표정으로 나의 이야기를 들어주었다. 그때는 뭐가 그리 새벽 감성에 물들었는지, 친구가 힘든 이야기를 하면 눈물을 머금고, 따뜻한 위로를 건네 주었다. 제일 컸던 변화는 내 얼굴을 싫어하지 않는 다는 것이었다. 매일 야자 마치고 들어와서 운동도 못 한 채 공부할 시간을 벌었던 나는 먹는게 나만의 스트레스 해소 방법이었다. 밤에 먹고, 6시간 자다가 다시 일어나서 학교에 가는 것을 반복하는. 난 내 고등학교 시절 중 건강하지 않는 생활로 인해 불어 나는 살과 여드름이 정말 싫었다. 그리고 내 자신을 스스로 마주하기 싫어, 내 얼굴이 드러나는 사진을 정말 싫어하였다. 그때마다, 친구들은 얼굴 하나하나 세세한 부분까지 칭찬을 해주고, 날 꾸며주었다. 그리고, 재촉하지 않고, 내가 스스로 변할 수 있을 때까지 기다려 주었다. 날 믿고 기다려 준다는 것이 그때도 지금도 정말 고맙고, 그런 사람들이 있다는 것에 눈물이 난다.



 고등학교 시절로 돌아가긴 싫지만, 선생님, 친구, 부모님 그리고 그들과 함께 만들었던 추억들이 참 그리워진다. 그러한 순간들이 차곡차곡 쌓여 예전처럼 항상 가깝게 있지 않는 시간이 지속되어도 난 내 이야기를 들어줄, 내 아픔을 공감해줄 친구가 있어. 란 위로로 견뎌낸다. 바다 란 사회 속에 성인이 되어 외딴 섬으로 던져 졌지만, 외딴 섬이 아니도록 저 멀리서 같이 유영하고 있는 친구들 덕분에, 든든하다.





돌아갈 곳이 있다는 것은 정말로 감사한 일이다. 성인이 되고 나서 가장 힘들었던 일은 익숙했던 사람과 환경과 멀어지면서 모든 게 낯선 곳에서 홀로 이겨내야 한다는 것. 그 속에서 피어나는 외로움이 정말로 버거운 일이었다. 하지만, 그럴 때마다 외로움을 같이 이겨낼 사람이 찾아온다. 내 성격이 어떻든 간에. 난 말도 잘 못 걸고, 인간관계 맺는 게 너무 어려워서 없을 거야. 라고 해도 그걸 기다려주는 사람이 분명히 있다. 여기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우리는 모든 사람과의 관계를 ‘신뢰’라는 단어를 밑바탕을 둔 채 명심해야 한다. 신뢰는 갓 겨울이 되어 얇게 얼어버린 강 표면 얼음판과도 같기 때문에, 천천히 그리고 조심하게 항상 긴장을 한 채로 지켜 나가야 한다. 어렵게 공들인 신뢰는 무너지기엔 너무 쉬운 것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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