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하이 센티멘탈

녹명서점

상하이 푸단대 근처 국권로에는 녹명(鹿鳴)서점이라는 작은 서점이 있다. 녹명이란 '사슴이 운다',라는 의미이면서 나아가 좋은 것이 있으면 함께 나눈다는 뜻을 나타낸다. 중국 고대 시가집 <詩經>에 나오는 구절인데, 주인의 문학적 감각을 엿볼 수 있는 이름이기도 하다. 이 작은 서점은 유학생활 3년간 가장 많이 드나든 서점이다. 아마 인문학 쪽으로 학위를 하는 푸단대 학생들 대부분이 그랬을 것이다. 그 정도로 전공 관련 필요한 서적들을 발 빠르게 갖춰놓은 서점이었다. 갈 때마다 이거다 싶은 책들을 발견하고 부랴부랴 사던 기억들, 자주 이용하는 단골이 되면서 할인카드도 만들게 되었다. 더구나 개인적으로는 더욱 각별한 것이, 첫 학기 기숙사 생활을 마치고 학교 밖으로 이사 나온 첫 번째 집이 바로 녹명서점 뒤에 있었다. 그러니 매일 녹명을 지나쳤고 참새가 방앗간 들르듯 수시로 들락거렸던 것이다. 주인과 친해질 수밖에 없었다.


몇 년 전, 그러니까 상하이를 떠난 지 10년 쯤 지나고 나서 녹명서점에 한번 들른 적이 있다. 이젠 머리가 허옇게 센 주인은 날 보더니 한 눈에 알아보고는 반가워했다. 나 역시 가슴 뭉클하게 그가 반가웠다. 나오는 길에 간만에 전공 책 한권을 샀는데, 굳이 그럴 필요 없다 했지만 주인은 끝내 할인 가격을 받았다. 아마도 반가움의 표시였을 것이다. 거리도 풍경도 많이 바뀌었지만 예전 그대로 있는 녹명서점이 무척 반가웠다. 오래오래 그 곳에 머물러 주었으면 좋겠다.

앞서 복주로 서점가 얘기도 하고 녹명서점 얘기도 했는데, 그밖에도 내가 자주 가던 서점들이 많았다. 우리나라 대학과 다르게 중국 대학가 근처에는 크고 작은 서점이 정말 많다. 국권로에는 녹명서점 말고도 푸단대에서 직영하는 푸단대학 출판사 서점이 있었고 동문 근처에도 자잘한 서점들이 몇 군데 있었다. 조금 멀리 떨어진 번화가 오각장 인근에도 여러 서점들이 있었다. 지금은 다 대형 매장으로 바뀌었지만 그 시절 오각장에는 다양한 종류의 작은 상점들, 특히 서점들이 참 많았다.


푸단대 내부에도 물론 서점이 있다. 오며 가며 서점에 들러 책들을 훑어보던 기억이 많다. <논어>, <사기> 같은 고전부터 시작해서 언어학, 중국 문학 관련 서적, 그리고 소설과 잡지, 신문까지 분야와 종류도 다양했고, 그러다 보면 시간 가는 줄 모르고 한참을 서점에서 보낸 적도 많았다. 어느 서점에서 조금 더 할인을 해준다고 하면 자전거를 몰고 씽씽 달려 마치 보물찾기라도 하는 양 필요한 책을 뒤지던 날들, 조금 더 큰 서점을 찾아 버스를 타고 시내로 나가던 날들이 떠오른다. 동료가 어떤 책을 샀다고 하면 나도 가서 사고, 필요한 책들을 서점 주인에게 써서 주문하던 기억도 난다.


그렇게 3년간 사들인 책이 적지 않았다. 사실 다 읽지도 못하고 꼭 필요한 책이 아닌 경우도 많았지만 책에 욕심을 부리던 날들이었다. 그렇게 상하이에서 배로 부친 책들이 큰 박스로 10박스 였다. 귀국 한지 13년, 상하이에서 가져온 책들에 더해 그 동안 사들인 책이 또 한 가득이다. 이제는 조금씩 비워내야 할 때, 여기저기 선물 삼아 주기도 하고 또 어떤 책들은 지역 도서관에 기증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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