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주인, 이웃들
방동, 집주인
상하이에 살면서 이사를 몇 번 했다. 처음에는 학교 기숙사를 이용했지만 곧 학교를 나와 근처에 세를 얻어 생활했다. 석박사 학위를 하는 유학생들은 대개 그렇게들 생활하는 경우가 많았다. 장기적으로 따져보면 비용도 기숙사 보다 오히려 저렴했고 또 조용히 논문을 쓰기 위해서는 복작거리는 기숙사보다는 조용한 환경이 필요했다. 대신 파출소에 가서 신고를 해야 하는 등 약간의 절차가 있었지만 다들 그렇게 살았다.
보증금을 얼마간 걸고 월세를 내는 식으로 살았다. 나 같은 경우엔 두어 달 간격으로 몰아서 냈다. 처음 살았던 곳은 5층 이었다. 허름하긴 했지만 혼자서 살기엔 충분히 널찍한 집이었다. 가격이 저렴한 대신 가구나 전자제품은 없는 집이었다. 장판을 깔고 넓은 책상과 책장을 몇 개 사가지고 들어갔다. 커텐도 달고 이리저리 손을 보니 아늑하고 정겨운 나의 집이 되었다. 볕도 잘 드는 남향이었다.
중국어로 집주인을 방동(房董)이라고 한다. 그 집의 방동은 근처에 살지 않고 좀 멀리 살았다. 주인 아저씨는 원양어선을 타는 중년의 선원이었다. 그래서 3달에 한번 만나 방값을 치르곤 했다. 대부분 아주머니가 와서 받아갔다. 방세를 낼 때마다 미리 전화를 해서 약속을 잡고 냈는데, 이사할 때 아주머니가 그렇게 날짜 어기지 않고 꼬박꼬박 미리 전화해서 방값을 내는 세입자는 내가 처음이었다는 말을 들었다.
두 번째로 이사 간 집은 상하이 재경대 앞 쪽에 있었다. 엘리베이터 없이 5층을 올라 다니는 것에 지쳐서 이번엔 1층으로 잡았다. 본격적인 논문 집필을 앞두고 분위기 전환도 필요했다. 주인은 같은 건물 4층에 살았다. 내 집이 1층이었기 때문에 앞에 작은 마당이 있었다. 가끔 윗 층의 빨래 등이 마당에 떨어져 윗 층 사람들이 찾으러 오기도 했다. 마당 너머에는 이런저런 나무가 우거져 있어 계절이 지날 때 마다 다른 분위기를 연출했다. 두 번째 이사 간 그 집에서 딱 네 계절을 보내고 상하이를 떠났다.
살면서 안면을 트고 지내는 이웃이 생겨났다. 먼저 같은 건물, 같은 층에 사는 옆집과 자연스레 알게 되었다. 옆집엔 중년 부부와 고등학생쯤 되는 딸이 살았다. 5층이었고 엘리베이터는 없었다. 기억에 남는 건 아주머니가 매번 상하이 말로 안부를 묻곤 했던 점이다. 상하이 말을 모르니 표준어로 말하자고 했는데, 며칠이 지나 다시 만나면 또 다시 상하이말을 하곤 했다. 방학 때 한두 달 귀국할 때 엽집에 전기세, 수도세를 대신 내달라고 부탁하던 기억도 난다. 4층인가 3층인가에는 퇴직한 아저씨가 종종 노래방 기계로 노래를 부르곤 했다. 주로 아침 시간이었던 것 같은데 계단을 타고 내려가다 보면 문을 열어 놓고 노래를 부르는 아저씨를 보게 된다. 그러면 하오팅, 씨에씨에 하면서 인사를 주고 받곤 했다.
두 번째 이사 갔던 집은 주인이 같은 건물에 살았기 때문에 친하게 지냈다. 이사간 그해 겨울엔 두꺼운 솜이불을 선물해주기도 했다. 남자 혼자 사는 게 안쓰러워 보였는지 모르겠다. 대여섯살쯤 되던 귀염둥이 꼬맹이 딸도 기억에 남는데, 가끔 엄마와 함께 내려와 혼자사는 나를 신기하게 바라보곤 했다.
그리고 자주 가던 동네의 편의점, 식당, 서점, 과일가게 등등의 다양한 사람들과 이웃이 되어 오며가며 이야기를 나누고, 가끔은 같이 밥을 먹기도 하면서 친해졌다. 그들은 비번이거나 시간이 나면 가끔 집으로 놀러오기도 했다. 그러면 집에서 같이 영화를 보거나 간단히 맥주를 마시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