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 강단에서 학생들을 가르친 지 벌써 15년이 되어간다. 설레는 마음으로 첫 강의에 선게 불과 얼마 전 인 것 같은데, 참으로 실감이 나지 않는 세월이다. 돌이켜 봤을 때, 선생으로서 15년의 시간은 대체적으로 유쾌했고 즐거웠다. 젊은 학생들과 강의실에서 교감을 할 수 있는 것은 퍽 매력적인 일이다. 나는 나의 지식과 경험을 전해주지만 나 역시 그들로부터 얻고 배우는 것이 많다. 그래서 교감이라는 말을 쓰는 것이다.
많은 학생들을 만나고 헤어졌다. 사회로 나간 많은 학생 중에 지금도 연락을 하고 자주 보는 학생들도 있다. 그것이 선생의 보람이다. 잊지 않고 안부를 전해오는 것, 학생이었던 그들이 쑥쑥 성장해가는 멋진 모습을 볼 수 있는 것, 거기서 커다란 보람을 느끼는 것이다. 결혼식에도 여러 번 초대되어 갔다. 결혼하는 제자의 모습, 부모의 마음은 아니겠지만 그 비슷한 감정을 느낀다. 모두들 소중하고 잊을 수 없는 제자들이지만 특히 더 기억에 나는 학생, 궁금한 학생이 있다. 선생도 사람이기 때문이다.
어쩔 수 없는 사정이 있어 휴강을 한 적은 간혹 있지만 아파서 수업을 펑크 낸 적은 없다. 선생은 아프면 안 된다. 역시 선생님으로 한 평생을 사신 아버지로부터 들은 이야기다. 나로 인해 많은 학생들이 소중한 시간을 허비하게 해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이 말에 나도 동의한다. 선생은 자기 관리를 잘 해야 되고 다른 직업인 보다 절제를 많이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많이들 말하듯이 요즘 젊은 학생들의 학교 생활, 참 힘들고 팍팍하다. 그래서 그것을 곁에서 지켜보는 나는 가슴이 아플 때가 많다. 부단히 애쓰는데도 뜻대로 되지 않아 아파하는 그들을 보면, 어떻게 해서든 내가 도와주고 싶고, 때로는 내가 대신 나서 해결해주고 싶단 생각도 든다. 그렇게 학생들을 이해하려 나름 노력하지만 한편으로는 타성에 젖어있는 나를 발견할 때도 있다.
대학 선생은 교육자로서의 역할 뿐 아니라 연구자로서의 위치도 있다. 부단히 연구하고 자신을 채찍질해야 한줌의 성과라도 낼 수 있는 것이다. 소년은 늙기 쉽고 학문은 이루기 어렵다. 언젠가부터 이 말을 절감하고 있다. 변변찮은 성과 없이 15년이란 시간이 흘렀다. 이제는 그나마도 귀찮고 피곤해서 하기 싫다고 느낄 때가 많다. 겨우 이건가 싶어 허망하고 실망스럽다. 하지만 계속해서 반성하고 노력하려고 한다. 게을러지지 않기 위해 부단히 노력하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