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 백거이의 <억강남>
憶江南
江南好 風景舊曾諳
日出江花紅勝火
春來江水綠如藍
能不憶江南
좋구나 강남이여, 그 절경 일찍이 잘 알지
해뜰 때면 아침노을에 강변의 꽃들 붉게 타오르고
봄이면 쪽빛 초록빛 푸르른 강물
어찌 강남을 그리워하지 않으리
江南憶 最憶是杭州
山寺月中㝷桂子
郡亭枕上看潮頭
何日更重遊
강남의 추억이여, 항주가 제일 그립구나
산사의 달빛아래 월계꽃을 찾고
정자에 올라 누워 강의 물결을 바라보네
언제나 또 가서 노닐 수 있을까
江南憶, 其次億吳宮
吳酒一杯春竹葉
吳娃雙舞醉芙蓉
早晩復相逢
강남의 추억이여, 그 다음은 오나라 궁전이리
오나라 술 한잔에 여린 대나무 잎새 띄우고
오나라 여인들의 쌍쌍 춤을 보며 그 연꽃 같은 미모에 취하네
언젠가 다시 만나리
내 고향 수원은 이름처럼 물이 많은 도시다. 곳곳에 호수가 많은데, 그중에 서호가 있다.
화성의 서쪽에 있다하여 서호라 할텐데, 사실은 중국 항주에 있는 서호에서 이름을 딴 것이다.
항주의 서호야 세계적으로 유명한 호수이니 두말할 나위가 없고
수원의 서호 역시 나름의 맛과 멋을 지닌 아름다운 호수다. 수원 8경에 들어간다.
당연히 서호를 사랑하고 자주 산책을 간다. 사계절 모두 너무나 좋다.
또한 젊은 시절 상하이에서 박사 유학했던 나는 항주에 자주 갔고 항주의 서호도 무척 사랑한다.
자 그토록 아름다운 서호, 중국의 시인 묵객들이 그냥 지나쳤을리 없다.
항주 서호를 이야기하면서 소동파와 백거이를 빠뜨릴 수 없다. 서호를 노래한 수많은 시인 묵객 중에서도 그들의 서호 사랑이 특히나 각별하기 때문인데, 둘 모두 항주에서 벼슬살이를 한 이력이 있다. 당나라 백거이가 항주에 임명되어 왔을 때 서호의 제방이 무너져 농사를 망치는 것을 보고 다시 둑을 쌓았으니, 그의 성을 따 백제라 부른다. 그로부터 200년 뒤 송나라 소동파가 항주에 왔을 때 농민들이 가뭄으로 고생을 하고 있었다. 호수 바닥에 침전된 진흙을 파내어 다시 제방을 쌓았으니 그의 이름을 따 소제라 부르게 되었다. 관리로서의 애민정신이 엿보이는 대목이면서 이로써 그들은 서호에 영원히 자신들의 흔적을 남기게 된 것이다. 그리고 당송팔대가로서, 중국 최고의 문인으로서 그들은 서호의 아름다움과 그 낭만을 멋지게 노래했고, 그것은 천년의 시간을 건너 지금까지도 애송되고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