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하이 센티멘탈

근대 도시문화, 여인의 도시


개혁, 개방이 본격화되던 90년대 이후 중국에서는 올드 상하이를 호출하고 소비하기 시작했다. 1949년 신중국 성립 후 상하이는 의도적으로 억눌렸고 화려했던 올드 상하이는 비유컨대 박제가 되어버렸다. 새로 출발하는 중국의 입장에서 상하이는 치욕의 역사 공간, 자본주의의 병폐가 완연한, 지우고 싶은 공간이었을 것이다. 그러던 상하이는 긴 잠을 끝내고 개혁, 개방의 본격적인 드라이브를 걸기 시작한 70년대 말부터 다시 현대 중국의 중앙으로 재부상하게 된다.


주지하듯 아시아의 근대는 서구와 일본의 제국주의 침략과 궤를 같이 한다. 작은 어촌마을에 불과했던 상하이는 아편전쟁 후 불과 몇십년 만에 아시아 최대도시로 부상하게 된다. 상하이는 베이징, 시안처럼 오래전부터 중요시되던 도시가 아니고 근현대 들어와서 갑작스레 등장한 도시라는 점이 상당히 특이하다. 이후 상하이는 복잡한 정치적 상황과 별개로 서구의 온갖 근대문물이 말 그대로 물밀듯이 밀려와 아시아에서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화려한 도시문화를 꽃피우게 된다. 호텔, 백화점, 경마장, 나이트클럽, 카페, 아파트, 영화관, 전차, 자동차 등등의 신문물이 상하이를 가득 채웠고 중국은 물론 세계 전역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몰려들었다.


천재적 여류작가 장아이링은 자신의 소설과 산문에서 3, 40년대 상하이의 풍경을 정교하게 묘사하며 독보적인 풍경화를 완성한다. 가령 장아링은 아파트에 살며 사생활이 보장되는 아파트의 삶을 사랑했고, 자가용을 타고 남경로에 있는 영화관에 가서 할리우드 영화를 자주 보았으며 상하이를 누비는 전차의 소음을 좋아했다. 잡지에 투고를 해서 원고료를 받으면 립스틱을 사러 백화점에 갔다. 그 모든 것이 화려한 도시문화를 즐기는 고고하고 세련된 20대 젊은 여성의 일상은 40년대 상하이에서 펼쳐진 것이다.


중국 현대문학의 거대한 산이며 중국 민족혼의 표상으로 일컬어지는 대작가 루쉰도 종종 자동차를 타고 시내 영화관에 가서 영화를 즐겼다는 점은 조금 뜻밖의 느낌으로 다가온다. 그리고 상하이 도시문화를 대놓고 사랑한 젊은 작가들은 댄디보이. 모던 걸을 자칭하며 카페, 영화관, 나이트클럽을 자신들의 주요 활동무대로 놓고 이른바 중국 최초의 도시문학을 탄생시키기도 했다. 수많은 모던보이, 모던걸들이 그렇게 도시 상하이를 활보했던 것이다.



u=1920937866,26245736&fm=27&gp=0[1].jpg 3, 40년대 상하이 시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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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는 종종 여인에 비유되곤 한다. 화려하고 감각적인 모습 뒤에 감춰진 그늘과 우울, 그리고 드라마틱한 사연들, 그래서 그런 것일까. 아니면 활짝 만개한 뒤로 천천히 찾아오는 쇠락의 모습을 가진 도시가 많아서 일까. 그렇다면 상하이야말로 여인의 일생을 투영시키기에 좋은 도시다. 과거 올드 상하이에 대한 향수와 인상이 유독 강한 상하이는 여인의 굴곡진 삶과 많이 닮아있는 듯 하다.


현대 상하이를 대표하는 여류작가인 왕안이의 소설 <장한가>는 상하이의 한 여인의 삶을 따라가는 내용을 담고 있는데, 40년대 미스 상하이로 뽑힌 왕치야오의 굴곡진 삶을 따라 상하이의 격변과 슬픔을 유려하게 담아냈다. 앞서 언급했듯이 40년대 상하이를 대표했던 천재적 작가 장아이링은 아예 대놓고 자신이 얼마나 상하이를 사랑하는지를 말했고, 아파트, 백화점, 영화관, 전차 등을 세밀하게 묘사하여 당대 상하이에 대한 세련된 풍경을 담아냈다. 그녀의 작품에서 묘사된 상하이는 근대문물이 화려하게 꽃피운 공간이었다. 물론 그녀의 여러 작품에서 묘사되는 상하이 여인의 삶은 신산스럽고 불안하다. 신구문화와 동서문화가 정신없이 뒤섞이던 과도기 상하이에서 여성으로 살아내는 것은 녹록지 않았고, 장아이링은 그런 여인들의 삶과 슬픔을 정교하게 담아냈던 것이다.


현재의 상하이는 중국 어느 곳보다 화려하고 활기차다. 홍콩, 도쿄, 서울이 그렇듯이 상하이 역시 화려하고 변화무쌍한 모습을 가진 대도시다. 주거, 쇼핑, 문화시설이 잘 갖추어져 있으니 살기에 편리하고 활기가 넘치며, 특히나 많은 여자들이 그 곳에 살기를 선호한다. 상하이는 중국에서 여자들의 지위가 높기로 유명한 도시이기도 하다. 신중국이 시작되면서 내걸었던 슬로건 중에서 남녀평등은 주요한 과제였고, 그를 통해 중국사회에서 여인의 지위는 실제로 많이 바뀌었다. 그리고 여성의 지위가 가장 높은 곳으로 지목되는 곳이 또한 상하이이다. 많은 중국인들은 중국사회가 남녀평등의 사회라고 말하지만, 사실 여자는 여전히 사회적 약자다. 하지만 적어도 상하이만큼은 사정이 조금 다르다고 할수 있겠다. 상하이 여자들의 위치, 혹은 특징을 두고 많은 우스개 소리가 나오는 것도 그런 맥락에서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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