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하이 센티멘탈

한국 작가들의 상하이 체험


20세기 초, 대략 1920-40년대 상하이는 아시아에서 가장 큰 대도시로서 화려한 도시문화를 꽃피우며 소위 아시아의 모던을 상징했다. 세계 각지에서 사람들이 상하이로 몰려들었고 돈과 이야기가 넘쳐났다. 동서양의 문화가 뒤섞이고 전통과 현대가 격돌하며 말 그래도 거대한 용광로처럼 그 모든 것들이 혼재했다. 아시아에서는 생전 보지 못했던 서구의 문물과 사상이 물밀 듯이 들어왔다. 은행, 호텔, 백화점, 경마장, 영화관, 나이트 클럽 같은 근대 문물이 빠르게 들어서고 번성했다.


당시 아시아 일대는 서구와 일본 제국주의 열강의 침략으로 신음하고 있었다. 일본에 의해 강제 병합된 한국은 상하이에 망명 정부, 즉 임시정부를 두고 조국의 독립을 위해 싸웠다. 이처럼 당대 상하이는 한국 독립운동의 주요 거점지이도 해서 우리와도 밀접한 관련이 있는 공간이었다. 그래서인지 우리 한국인에게 당시의 상하이는 그런 독립운동이라는 배경 하에서 주로 언급되고 다루어졌다.


하지만 당시 상하이를 독립 운동 공간으로만 다루는 것은 단선적인 관찰이다. 거대한 국제도시 답게 당시의 상하이에는 다양한 유형의 사람들이 모여 활동했다. 한국인에 국한시켜 보더라도 당시 상하이에는 공부를 하러 온 유학생들도 있었고 일확천금을 노리고 온 장사꾼들도 있었으며, 김염, 정기탁과 같은 영화배우, 영화감독도 있었다. 또한 이른바 화려한 상하이의 모던을 체험하러 온 수많은 모던보이, 댄디 걸들 또한 있었을 것이다. 최근 식민지하의 경성을 바라보는 시각이 과거와는 다르게 다양하고 폭넓어 진 것처럼 상하이에 대해서도 보다 다각도로 살펴 볼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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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상하이를 다녀간 여러 한국 작가들이 있다. 예컨대 심훈, 김광주 같은 당대의 일급 작가들이 상하이에 머무른 바 있다. 심훈은 19세에 상하이에 건너가 3년간 살면서 대학 교육을 받기도 했다. 심훈의 상하이 체험은 훗날 소설 <동방의 애인>에 직, 간접적으로 투영되었는데, 조선의 청년 2명이 중국으로 망명하여 벌이는 비밀 활동과 러브스토리를 담고 있다. 유명작가 김훈의 아버지로도 잘 알려진 김광주는 1929년 상하이로 건너가 해방 때까지 그곳에서 살았다. 10년이 넘는 시간 동안 상하이에 머문 셈이다. 또한 상하이 남양의과대학에 입학하였다가 중퇴한 이력이 있다. 김광주의 문학은 오랜 기간 중국 생활로 길러진 이른바 대륙기질의 호방함이 하나의 특징으로 간주된다. 그중 <북평에서 온 영감>은 해외에 거주하는 지식인의 불안상을 묘사한 소설로 알려져 있다. 물론 그들은 당대의 지식인으로서 식민지 조국의 현실에 민감하게 반응하였고 아파했으며 타지인 상하이에서도 시선은 고국을 향해 있었을 것이다. 또한 동시에 그들의 상하이 체험은 그들의 문학, 나아가 한국문학의 지평을 넓혔다고도 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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