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가을날의 하루
유학 생활 3년차, 논문의 압박은 점점 몰려오고 진도는 좀처럼 나가지 않던 때, 상하이에 오면서 품었던 야심들이 점차 꺾이며 자꾸 헛헛함을 느끼던 그 시절의 어느 가을날, 그 날 하루를 기억나는 대로 따라가 본다.
아침에 일찍 눈이 떠졌다. 평소대로 라면 책상 앞에 앉아 억지로라도 논문 몇 줄을 꾸역꾸역 쓸 텐데, 왠지 모든 게 귀찮다. 그냥 대충 씻고 집을 나선다. 아무 생각도, 계획도 없이 동네에서 55번 버스를 타고 외탄까지 갔다. 차장 밖 풍경이 정겹다. 그리 멀지 않으니 대략 한 30분 안쪽이면 외탄에 도착한다. 아침 상하이 중심가는 여타의 도시들이 그렇듯 무척 분주하고 정신없다. 거리를 바쁘게 오가는 수많은 사람들, 그 사람들 속에 섞여 무작정 걸어간다. 외탄을 어슬렁거리며 걷다가 남경로 쪽으로 방향을 튼다. 남경로에 접어들어 정처 없이 걸으며 거리의 풍경을 구경한다. 다들 어딜 그리 바삐 가는가, 나는 왜 여기서 이러고 있나, 이런 저런 생각을 하면서 걷고 또 걷는다.
아, 아직 아침을 안 먹었구나. 그때서야 뭘 좀 먹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돌아보니 예원 근처에 와 있었다. 마침 눈에 맥도날드가 들어온다. 출근 시간이 막 지나서인지 의외로 가게 안은 한산하다. 늘 북적이는 그 공간이 조금은 낯설게 다가온다. 햄버거와 커피로 느긋하게 아침을 먹는다. 대개 아침은 집 근처 시장통에서 파는 산동식 딴빙과 두유 정도로 해결한다. 아침으로 먹는 맥도날드 햄버거 맛이 새롭다.
맥도날드를 나와 향한 곳은 복주로 서점가, 그 옛날 노신과 장애령이 거닐었던 그 서점거리를 어슬렁거린다. 딱히 책을 살 생각도 없으니 그저 이것저것 둘러본다. 새로 나온 책들이 뭐 있나 기웃 기웃, 전공 관련 책도 좀 살펴보는 식이다. 100년 넘는 전통을 가진 서점거리다 보니 책은 물론이고 이런저런 구경거리들이 많다. 다시 점심 때가 다가왔다. 이번엔 그냥 노점에서 만두로 대충 떼우고 만다. 발걸음을 인민관장 쪽으로 옮겨본다. 그 어느 한쪽에 앉아 담배를 한 대 피우며 지나가는 사람들을 구경한다. 아침하고는 다른 풍경이 펼쳐진다. 국제도시 상하이에는 외국인들도 참 많다. 다들 바쁘게 거리를 오간다. 자, 다음은 인근의 상하이 박물관이다. 물론 그 역시 진지한 관람이 아니다. 그냥 눈길 가는대로 설렁설렁 보다가 다리가 아파지면 의자에 앉아 한참을 쉰다. 좀 졸기도 한다. 박물관에 가면 항상 드는 생각은 우리네 인생이 얼마나 보잘 것 없는가 하는 것인데, 그런 의미에서 자신을 돌아보는데 아주 적당한 공간이 바로 박물관이다.
박물관을 나와 보니 얼추 저녁이 되었다. 날은 점차 어둑어둑해지고 있다. 피로가 몰려든다. 사람들이 아까보다 훨씬 많아졌다. 서둘러 돌아가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마침 인민광장에서 출발하는 버스 중에 집까지 가는 버스가 있다. 버스가 도착했다. 서둘러 버스에 올라 뒤쪽에 앉는다. 출렁이는 버스에 몸을 맡기며 눈을 감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