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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도대체 무엇을 기대하며 살아왔던가?

존 윌리엄스의 "스토너"를 읽고

by 윤지아

존 윌리엄스의 스토너라는 책을 접하게 된 것은 아주 우연한 일이었다. 남편이 Yes24의 무료배송금액을 채우기 위하여 둘러보다가 단지 표지가 예뻐서 샀다는 것이다.

'단지 표지가 예뻐서'

충분히 그럴 수 있다.

그런데.. 저 목탄으로 얼굴 절반만 그린듯한 그림이 '예쁘다'니..

뭐 '예쁨'의 기준은 다 다른 거니까.

여하튼 우연히 이 책은 나에게로 오게 되었고, 우연히 만나지 않았으면 어쩔뻔했나 싶다.

책을 다 읽고 나서, 곧바로 다시 처음부터 다시 한번 더 읽고 싶다는 생각이 든 책은 이 책이 처음이었다.

뭐랄까 영웅담처럼 가슴 뛰는 전개는 없지만, 그렇다고 권선징악의 시원함이 있는 것도 아니지만, 그냥 우리 인생처럼 잔잔하고 꾸준히 완주한 느낌을 주었기 때문이다.

표면적으로는 스토너라는 남자의 일생을 그린 소설이다. 그러나 그의 삶이 내게 준 울림은 뼛속 깊이 박혀 계속 되새김질하듯 이 한 문장을 반복하게 되었다.

"넌 무엇을 기대했나"


이런 나의 깊은 감동에도 불구하고, 작가는 소설 첫 부분에 주인공인 스토너에 대하여 이렇게 소개한다.

스토너는 미주리대학교 교수로서 그저 그런 삶을 살았고, 딱히 유명하지 못했다고,

동료들 사이에서의 평가도 보통 정도였고, 학생들에게도 그러했다고.

향후 학교의 역사에 남을 만큼의 교수는 아니었지만, 그래도 뭐 나름대로 평이한 삶을 살다가 죽었다고 말이다.


세상에 이렇게나 미지근한 소개가 어딨을까.

그러나 특별한 듯 단조로운 그의 삶의 완만한 굴곡을 보며, 평범한 삶이라기보다 "평탄한 삶" 꽤 "순탄한 삶"이라고 표현하고 싶다.

나이마다 해야 할 숙제(취업, 결혼, 육아, 업무성취 등)를 해 냈고, 별다른 이슈 없이 평온하게 마감한 삶.

오히려 요즘 우리는 이런 삶을 살기가 더 어려워져서일까.

그의 삶이 순탄하게 느껴진 이유는, 설마 내가 지금 바라는 것이 저런 삶이기 때문일까.

내가 정말 바라는 삶은, 이루고 싶었던 것은, 그래서 지금 기대하고 있는 것은 대체 무엇일까.



줄거리


농부의 아들로 태어나, 부모님의 농사일에 도움이 되기 위하여 미주리 농과대학으로 진학한 그는 우연히 들은 영문학 교양수업에서 셰익스피어의 소네트에 매료되어 전공을 문학으로 바꾸는 결정을 한다. 어쩌면 이게 그가 한 인생의 가장 큰 결정이었을 것이다.

농부에서 교육자의 길을 걷게 된 그는 한 사교모임에서 이디스라는 여성에게 첫눈에 반하여 결혼을 한다.

좀 더 넓은 집으로 옮기기 위하여 수업을 늘리고, 처가의 도움을 받아 제대로 된 저택으로 이사를 하고, 집들이를 하며 조금은 형식적인 결혼생활을 하지만 그레이스라는 사랑스러운 딸도 얻게 된다.

대학에서는 대학원생들에게 중세 르네상스 문학을 열정적으로 가르치며 보람을 느낀 그는 일과 가정 사이에서 거의 행복하다고까지 느낀다.

그리고 그 수업을 들은 캐서린 드리스콜이라는 젊은 강사와 사랑에 빠져 다시 열정적인 연애를 하기도 한다.

그러던 중 동료교수인 로맥스가 지도하는 한 학생과의 갈등에서 빚어진 로맥스와의 악연은 끊임없이 스토너를 괴롭히게 된다.

로맥스는 스토너에게 불이익을 주기 위하여 온갖 비열한 방법으로 그를 괴롭히지만 스토너는 별다른 감정 없이 그대로 따를 뿐 별로 신경 쓰지 않는다. 그러나 로맥스는 학과장이라는 지위를 이용하여 스토너와 불륜관계에 있는 캐서린을 압박하여 학교를 떠나게 만들고, 스토너는 처음으로 크게 동요하는 모습을 보이지만 결국 그녀를 잡지 않는다.

그녀가 떠나고, 그럭저럭 정년퇴직 때까지 교단을 떠나지 않고 열정적으로 다시 학생들을 가르친다. 로맥스가 그에게 퇴직을 권유하지만, 굳건히 2년간 연장을 주장하던 스토너는 결국 암에 걸려 퇴직을 결정한다.

집에서 마지막 시간들을 보내는 스토너는 지금까지 자신의 삶을 돌아보며, "나는 도대체 무엇을 기대했는가"라는 질문을 던진다. 곧 기억이 흐릿해지고, 자연스럽고 평온한 죽음을 맞이한다.



스토너의 두 친구


스토너는 같이 대학원 과정을 밟고 있던 데이브 마스터스와 고든핀치와 단짝까지는 아니지만 평생에 영향을 주는 벗으로 지내게 된다. 셋은 함께 종종 모여 술 한잔을 하곤 했는데, 데이브 마스터스는 교육자로서 완벽히 준비된 인물로, 풍부한 토론 주제를 내놓았다. 반면 고든핀치는 조금은 느슨하고 여유로운 성격의 소유자였다. 1차 세계대전이 터져 징병이 될 때에는 고든핀치는 감정적으로 호소하며 적극적으로 나라를 지키러 가고 싶어 했으며, 데이브 마스터스는 그저 삶의 경험 중 일부로, 대수롭지 않게 출전했다. 그러나 스토너는 진지하게 고민하였고 그 싸움에 끼고 싶지 않다는 판단을 내려 대학을 떠나지 않았다.

전쟁이 끝나고 고든핀치는 과거의 느슨한 느낌을 벗어버리고 성숙해진 모습으로 돌아왔고, 데이브 마스터스는 유럽의 첫 번째 작전에서 전사한다.


옳고 그른 판단이냐를 떠나 온전히 고민하고 자신의 고집스러운 학문적인 갈망을 위하여 군입대를 하지 않는 것을 선택한 그는 데이브와 달리 자신의 삶의 결정들을 꽤나 진지하게 고심했다.

그리고 향후 입대를 하지 않아 얻게 될 불이익에 대하여도 충분히 이해하고 받아들였다.

결국 전쟁에서 돌아온 고든핀치는 대학 내에서 승진을 거듭하지만, 스토너는 퇴직까지도 정교수가 되지 못하게 된다.

그러나 이런 부분은 그에게는 전혀 중요한 일이 아니었다.


소설의 첫 부분에서 죽어버린 데이브 마스터스는 짧은 등장임에도 스토너의 일생에 영향을 미친다.

그의 정신이 스토너의 기억 속에 쭉 살아서 지적인 대화를 나눴던 유일한 기억으로 남겨진 것이다. (캐서린을 만나기 전까지는)

데이브 마스터스의 총명하게 빛났던 학부 시절과, 어이없이 바스러진 목숨을 보며 스토너는 무슨 생각을 했을까. 입버릇처럼 유럽에 가보고 싶다고 말하던 데이브가 가볍게 선택한 결정이 유럽에서 영영 돌아오지 못하는 결과를 맞이해 버릴 줄 그는 알았을까.

학문적으로 깊게 고민하고 스토너와 고든에게 일침을 가하던 그는 어쩌면 그런 우연한 결정이 자신을 죽음으로 이끌게 될 수도 있다는 것을 알았을 것이다.

그리고 왠지 그라면 그조차 별로 상관없다고 생각했을 것같다..

"그는 언제나 유럽에 가보고 싶어 했지."

데이브를 자주 회상하던 스토너는 그 물음을 마음속에 항상 품고 있었을 것만같다.

데이브는 그토록 보기 원했던 유럽을 충분히 만끽하고 죽었을까, 아니면 제대로 보지 못하고 죽었을까.

그는 이 세상에서 기대하던 그것을 얻고 떠난것일까.

그의 궁금증에 고든핀치는 이렇게 말했다.

"아마 제대로 보지도 못했을 거야. 첫 번째 작전에서 바로 전사했으니까."


데이브의 그러한 결정은 스토너로 하여금 그를 잃게 했다.

그러나 데이브는 무엇을 얻었을까.

데이브도 삶의 마지막 순간 스토너와 같은 질문을 던졌을 것만 같다.



적에게 부당한 대우를 받아도 타격감이 없는 우직함


로맥스가 지도하고 있는 학생에게 낮은 학점을 주어, 그 학생의 앞길을 막을 뻔했다는 이유로 스토너와 로맥스와의 긴 싸움은 시작된다.

아니다. 싸움이라기보다는 일방적인 괴롭힘과 부당한 대우들이었다.

상대적으로 우위의 지위를 이용하여 로맥스는 스토너에게 불편하고 이상한 시간표를 제공하고, 고차원적인 수업을 하지 못하도록 1학년 교양과목으로만 배정하는 등 그가 할 수 있는 모든 방법을 동원하여 스토너를 괴롭힌다.

그러나 그럴 때마다 스토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오히려 좋다며 긍정적인 방향으로 생각한다.

갖은 괴롭힘에도 별다른 반응이 없어 약 올라하던 로맥스는 스토너의 가장 큰 약점을 건드린다.

결국 로맥스는 스토너와 불륜관계로 연애 중이던 캐서린이라는 젊은 강사를 위협하여 미주리 대학을 떠나게 한다. 그리고 그동안 한결같이 모든 것을 참아낸 스토너는 드디어 처음으로 분노한다. 그러나 이내 받아들이고 그녀를 잡지 않는다. 그녀가 떠나고 그다음 일주일간의 스토너는 열병을 앓으며 분노를 삭인다.

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학생들이 학교로 돌아와 저서를 준비하며 나름 행복한 한때를 보낸 스토너는 세월이 많이 흘렀음에도 로맥스와 긴장감을 유지하며 지낸다.

스토너가 정년퇴임을 앞둔 해, 2년 연장을 원하는 스토너를 강제로 자진퇴임할 것을 강요한 로맥스에게 스토너는 이렇게 말한다.


그가 로맥스와 하고 있던 게임, 묘하게 즐겁기까지 했던 게임이 갑자기 하찮고 비열하게 보였다. 피로가 덮쳐왔다. 그는 로맥스를 똑바로 바라보며 지친 목소리로 말했다. "홀리, 이미 오랫동안 자네와 알고 지낸 만큼 자네가 나를 나름대로 알고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네. 나는 자네가 내게 '줄'수 있는 것이나 내게 '할'수 있는 행동에 대해 조금도 신경을 써본 적이 없어. 전혀." 그는 잠시 말을 멈췄다. 정말이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피곤했다. 그는 힘겹게 말을 이었다. "중요한 것은 그것이 아닐세. 그건 한 번도 중요했던 적이 없어. 난 자네가 좋은 사람이라고 생각하네. 물론, 좋은 교수이기도 하고. 하지만 어떤 면에서 자네는 무식한 개자식일세." 그는 또 잠시 말을 멈췄다. "자네가 바란 것이 무엇인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퇴직하지 않을 걸세. 이번 학년 말에도, 다음 학년 말에도"

-존윌리엄스 <스토너> 중 발췌-

사회생활을 통해, 인간관계를 통해 난 언제나 내 적이 나를 어떻게 생각할지에 대해 신경 썼고, 그 공격에 영향을 온전히 받았다.

그러나 스토너의 이 말에 난 크게 충격을 받았다.


- 나는 자네가 내게 '줄'수 있는 것이나 내게 '할'수 있는 행동에 대해 조금도 신경을 써본 적이 없어. 전혀.

- 중요한 것은 그것이 아닐세. 그건 한 번도 중요했던 적이 없어.


로맥스는 결국 그를 강제퇴임시키려 하였지만, 스토너는 이를 정정하며 다시 교단에 선다.

이후에 그를 교단에서 내려오게 한 것은 로맥스가 아니라, 암 때문이었다.

그동안 로맥스가 그에게 한 갖은 공격들을 스토너가 피하고 타협했다고 생각했었다. 그러나 이 부분으로 명확해졌다. 로맥스는 그의 인생에 아무 영향을 주지 못했다는 것이다.

적이 나에게 '한'행동이나 '할'수 있는 행동에 영향을 받지 않고, 온전히 내 안의 사유로 인하여 내 인생을 결정하는 삶.

로맥스와의 비열한 싸움에 로맥스만 존재하고 스토너는 없었다.

이것보다 완벽한 승리가 있을까.

스토너는 외부적 요인으로 인해 자신의 삶을 결정하게 두지 않았던 것이다.



이디스와 그레이스 모녀가 기대한 것은 역할에서 벗어난 자유였을까


내성적인 성격의 스토너가 사교모임에서 첫눈에 반한 이디스에게 적극적으로 다가가는 장면은 꽤 인상적이었다.

예상치 못한 직진남의 모습이랄까.

그녀를 자신에게 소개해달라고 고든핀치에게 당당하게 부탁하는 장면은 고든핀치만큼이나 나도 놀라버렸다.

그러나 나를 더 놀라게 만든건 이디스라는 여자의 반응이다.

처음에는 관심 없는 듯 말이 없다가, 스토너의 구애에 자신이 살아온 일생에 대하여 길게 늘어놓은 장면은 그녀가 가장 길게 말한 처음이자 마지막인 긴 대사였던것으로 기억한다.

친정 부모님께 무조건 빨리 결혼하고 싶다고 결혼일자까지 무리하게 당기며 그녀는 스토너에게 이렇게 말한다.

좋은 아내가 되어 잘하겠노라고.

왜인지 모르게 인형과도 같은 그녀는 정말 잘 하려고 노력하는 모습을 보이기는 했다.

그러나 중요한 행사때마다 맡은 역할을 잘해내려 고집을 부리다가도, 행사가 끝나면 무생물인 인형처럼 축 쳐져버리고 마는 것이다.

마치 열정적인 인형극을 보여주다 인형극이 끝나면 그대로 모든것을 멈춰버리는 것처럼.

딱 그런 느낌이었다. 배역에 충실하나, 자아가 없는 사람.


그녀가 말한 좋은 아내란 그렇게 형식적인 아내의 역할을 해내는 사람을 의미한 듯했다.

예쁜 가면을 쓰고, 스토너의 손님맞이에 힘쓰고, 손님이 돌아가면 180도 무기력한 표정으로 모든 것을 놔버리던가, 또는 자신의 실수를 되짚으며 역할을 잘 해내지 못한 것에 대한 히스테리를 부렸다.

집 청소에 대한 부분도 자신만의 일이라고 고집하며 도와주려는 스토너에게 자신의 영역을 침범하지 말라는 경고의 눈빛을 날리는가 하면, 관계개선을 위하여 선물공세를 해도 전혀 기뻐하거나 동요하지 않아 스토너를 기운 빠지게 해 버렸다.

전형적인 과거 여성상에 얽매인 모습.

그리고 그렇게 자랐을 그녀의 그동안의 삶이 안쓰럽기도 했다.

그녀는 그레이스라는 예쁜 딸을 낳은 뒤 더 이상 이 모든 형식적 역할에 질려버렸다는 듯 완전히 자신을 내려놓아 버렸다.

마치 모두 의미 없음을 깨달은 듯.

가만히 죽은 듯 누워 자신에 대해 생각하다가, 육아도 내려놓고 친정으로 떠난다.

이 시기 오히려 이디스가 없어서 편안한 느낌을 받은 부녀는 행복한 한때를 보낸다.

서재에서 서로 책을 뒤적이기도 하고, 조용한 대화를 나누며 스토너는 그레이스에게 깊은 사랑을 느낀다.

머리를 자르고 완전히 새로운 여성이 되어 돌아온 그녀는, 뒤늦게 자신이 무엇을 할 수 있을지를 찾으며 이것저것 시도해 보지만 그 무엇 하나에 정착하지 못하고 금방 그만둔다.

그러다 결국 그녀의 부모가 그랬던 것처럼 그녀의 딸인 그레이스를 타깃으로 온갖 교육과 사교적임을 강요하는 것으로 자신의 역할을 찾은 듯했다.

과거 자기 부모님이 그랬듯.

결국 스토너와 지적으로 깊은 내적 친밀감이 형성되어 있었던 그레이스는 점점 엄마의 등쌀에 아빠와 교류도 하지 못한 채 이디스처럼 눈빛이 멍해져버린다.

그리곤 잘 모르는 남자와 실수로 임신을 하고 집을 탈출한다.

도망치듯. 마치 그 시절 자기 엄마가 그랬던 것처럼 말이다.

2 차세계대전으로 남편을 읽고 유복자로 아들을 낳은 그레이스는, 향후 스토너와 술을 마시며 이렇게 얘기한다.

어쩌면, 일부러 잘 모르는 남자를 이용해서 임신을 한 것 같다고. 그냥 이 집에서 탈출하고 싶었다고.

그리고 스토너는 딸의 그 말을 이해한다.


처음엔 이디스가 무책임하고 나쁜 와이프라고 생각했지만, 그녀가 자란 환경과 처한 시대를 생각할때 이해가 가지 않았던 것은 아니다.

게다가 그녀는 그 결혼 생활 속에 자신의 행복을 찾으려 노력했다.

다만, 스토너의 배려를 받아줬더라면, 그 사랑을 온전히 받을 수 있는 인물이었다면 더 좋았을 텐데, 아쉽게 그녀는 그런 사랑을 받아들이는 법을 알지 못했다.

그리고는 자신이 기대한 바를 알지 못한 채 그를 경멸하기만 했다.

그런 자기 방어적인 태도가 결국 그 부부를 내적으로 갈라놓았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나는 이 부부의 결혼이 실패한 결혼이라고 할수는 없다고 생각한다.

서로를 이해하지 못하고 대화를 단절한 채 먹고살기 바빠 자기 생활만 하며 그저 같은 집에 사는 동거인의 느낌으로 결혼생활을 유지하는 부부들을 많이 봐왔다. 안타깝긴 하지만, 그래도 스토너는 그 결혼생활 중 심지어 행복하다고 한 순간들이 더러 있었다. 딸 그레이스를 통하여, 평온한 그 상황을 통하여.

행복한 부부란 어떤 부부 일까.

둘의 기대가 일치해야 하는 것일까.

이디스는 그 결혼생활을 통해 무엇을 기대했던 것일까.



서로를 깊이 이해한 사랑, 캐서린 드리스콜


불륜이라고 말한다면, 할 말은 없다.

그러나 스토너에게 진정하게 마음을 나눠준 사랑은 이디스가 아닌 캐서린 드리스콜이라는 젊은 교수였다.

아무런 대화도 통하지 않는 단절된 이디스가 있는 집보다는, 진정한 학문에 대한 의견을 주고받고 깊이 있는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캐서린 드리스콜의 작은 집이 그에게는 더 안정감 있는 집이었다.

비록 그 관계가 불륜이라는 상황으로 오래가진 못하였고, 로맥스의 공격으로 좋은 끝맺음도 못됐지만, 그래도 그들은 강렬하게 사랑했고, 깔끔하게 이별했다.

그들이 일주일간 여행한 한 별장에 그녀는 자신이 끼고 있던 반지를 그 별장의 벽틈에 끼워두고는 이렇게 말한다.

"무엇이든 하나 여기 남겨놓고 싶었어요. 너무 소녀 같은가요?"

그것은 그들이 사랑을 했다는 증거였고, 외적 표시였다.

이후 사표를 내고 멀리 떠난 캐서린은 스토너의 도움을 받아 완성한 저서 맨 앞장 헌사에 이렇게 쓴다.

"W.S에게"


그녀의 저서에 적힌 헌사를 보며 나는 마음이 뭉클했다.

결국 그녀에게도 이 사랑은 불장난과 같은 관계가 아니었다는 것.

진정으로 인생에 있어 잊을 수 없는 소중한 인연임을 강조하는 것. 그들의 사랑은 끝났지만, 별장에 남겨둔 그 반치처럼 그 흔적은 아름답게 남아있다는 것. 그래서 그의 인생이 더욱 풍성할 수 있었다는 것.


나는 지금 불륜을 찬양하는 것이 아니다.

그들이 기대한 것은 그런 것이었던 것이다.

완벽한 관계가 아니었다. 그저 인생에 있어 딱 한 번이라도 깊이 있게 마음을 나눌 사람이 필요했던 것이다.

난 이 관계가 스토너의 일생에 참 행복한 기억이었을 거란 생각에 캐서린의 존재에 감사했다.

무미건조한 그의 삶에 그녀는 그의 진정한 도피처였고, 학문적인 목마름의 해소이기도 했다.



성공과 실패를 구분하는 잣대


왜 자꾸 스토너를 실패한 삶이라고 표현하는지 모르겠다.

결혼생활도 실패?

교수로서의 명예도 실패?

로맥스와의 싸움도 패배?

자녀양육도 실패?

심지어 불륜도 실패?

아니 어쩌면 일부러 이 책에서는 반어적으로 더 그렇게 표현하고 있는 것만 같다.

우린 언제나 외부의 기준으로 모든 것을 판단하니까 말이다.


혹자는 스토너가 모든 것을 자기 기준으로만 판단하고 실행하는 이기적인 사람이라고도 한다.

그리고 입대를 하지 않거나, 이디스와의 관계 개선을 노력하지 않는 회피형 인간이라고도 한다.

하지만 난 스토너가 이기적이기보단 많은 부분을 포기하였으며, 회피했다기보단 타협한 현명한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죽음을 앞둔 스토너는 자신에게 몇 번이나 자문한다.

"나는 무엇을 기대했던가"

반복적으로 등장한 이 물음은, 결국 우리 모두의 삶에 대한 각자의 물음이 된다.

지금까지 난 무엇을 위해 살았고, 그래서 내가 원했던 것은 진정으로 무엇이었는지.

그래서 도대체 무엇을 기대하고 살았던 것인지.

결국 그는 그 모든 성공과 실패들이 아무 의미 없었다고 얘기하며, 평온하게 죽음을 맞이한다.


나는 그가 신념을 지키고, 주어진 상황에서 끊임없이 행복을 추구했던 완벽한 삶을 살았다고 생각한다.

좋은 교육자가 되길 원했고, 진정 사랑을 원했고, 행복한 가정을 꾸리길 원했던 스토너.

그는 정말 무엇을 기대했던 것일까.

그리고 우리는 무엇을 기대하며 살아가고 있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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