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인은 피고와 무슨 사이입니까

법정에서 만난 사람들, 그리고 그 이야기들

by 윤지아

현재 다니고 있는 회사에는 소송이 없다.

사실 소송이 없으면 회사에게는 좋은 게 맞다.

소송은 양 당사자 모두 잃는 게 너무 크기 때문이다.

법무 담당자로서도 좋다.

변론을 가거나 법무법인 미팅도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송무(소송업무)가 많았던 시절이 나에게는 많은 생각을 하게 해 주었던 날들로 기억된다.

사람들의 희로애락이 고스란히 느껴지는 그런 이야기들을 재판을 통해 몸소 겪었으니 말이다.



벌써 10년도 넘은 이야기이다.

당시 나는 한 대기업에 소송대리인으로 재직하였는데, 카드사 대출이나 대금미납건들의 대손처리된 건들을 소송으로 진행하는 업무를 담당했었다.

카드론을 안 갚은 건이라던가, 신차를 뽑고 3개월 이상 대금을 미납한 건들 같은 단순 대여금 사건들이었다.

사실 일반 기업의 소송이라면 커다란 사건 한두 개 또는 자잘한 사건 열댓 개 정도로 개별 건들에 다 정성껏 업무처리가 가능하겠지만, 송무를 주로 했던 그 회사에서의 내 업무는 그렇게 세심하게 건건이 다룰 수 없었다.

돈을 못 받았다는 사실만 증빙하면 되는 단순한 대여금 소송이기도 하고, 무엇보다 나 혼자 관리하는 사건만 3천여 건에 달했기 때문이다.

심지어 변론은 일주일에 한 번씩 있고, 담당 법원이 두 개 이상일 경우엔 일주일에 2-3회였다.

그리고 한번 변론을 갈 때마다 백여 건씩 승소를 받아내야 했다.

원고인 나의 회사 vs 피고만 100여 명의 사건을 한 번에 끝내야 하는 것이다.


물론 실제 그 100여 건 중 피고가 출석한 다툼 사건은 2-3건 정도밖에 되지 않았다.

즉, 나는 한번 법원에 갈 때마다 피고를 두세 명 만났다.

난 회사에 소속된 송무 담당 직원이므로 그들에 아무런 감정이 없었다. 그들도 역시 마찬가지였다.

재판이 끝나고 법정 밖으로 나오면, 형식적 납부 절차를 묻는 사람도 있었고, 때로는 감정을 호소하시는 분들도 있었다.

입사 초반에는 그분들에게 아주 친절히 대응해 주었던 것 같다.

한참을 늘어놓으시는 푸념도 들어드리고, 공감도 해드리면서 말이다.

대출 사기를 당하여 실제 본인이 대출받은 게 아닌 상황에 놓인 피해자를 만난 적도 꽤 있다.

카드를 분실했거나, 사기꾼에게 인감을 도용당했거나, 심지어 사랑하는 사람이 배신당하는 등 이유도 다양했다.

그러나 이런 사람들을 많이 만날수록 나는 지쳐버렸고, 형식적인 대답만 하거나 그 자리를 얼른 피하는 사람이 되어버렸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게, 피고에게 잡혀 푸념을 듣기엔 사무실에 들어가서 내가 써야 할 소장이 하루에 50건도 넘었기 때문이었다.

법원으로 외근 나와있는 시간도 아까워 죽겠는데, 붙잡혀서 쓸데없는 소리를 듣고 있자니 나는 점점 귀찮아지고 강퍅해져 버렸다.


사기를 당한 분의 하소연을 듣는다면, 일전 같았으면, 일단 이소송에는 져야 하는 게 법리적으로 맞지만, 이후 사기꾼을 찾아 별도로 불법행위에 기한 부당이득반환청구를 진행하라고 친절히 안내해 줬었다.

그러나 어느 순간부터는 재판이 끝나면 빠르게 법정을 나와 도망치듯 그 자리를 벗어난다거나, 피고에게 붙잡힐 경우에는, 적당히

"추가적으로 주장하실 게 있으시면, 재판부에 서면으로 제출하세요."라는 식으로 형식적 대답 후 자리를 떴다.

그렇게 변론기계가 되어가던 나날들 속에서도 여전히 잊히지 않는 사건들이 있다.


#1

피고는 중년이 좀 지난 듯 보이는 어머님이셨고, 휠체어에 앉아계셨다.

그리 춥지 않은 계절이었음에도 털모자를 쓰고 계셨고, 아들처럼 보이는 젊은 남자가 휠체어를 밀고 법정에 들어왔다.

카드값 미납으로 소송에 휘말린 그 나이 든 여자분은 그분 명의의 카드이긴 했지만 본인이 사용한 게 아니라 전혀 모르는 내용이라고 항변하셨다.

판사님께서는 내가 제출한 카드 사용 내용의 기록을 쭈욱 보시더니, 피고가 사용한 것으로 보이지 않는다며, 카드 사용 시 자필 서명을 한 부분을 추가적으로 제출하라고 하셨다.

카드사용의 목록에는 미용실, 모텔, 네일아트샵, 주점 등 유흥으로 소비한 내역이 몇 페이지에 걸쳐 빼곡히 들어 있었다.

법정에서 나온 후 피고의 아들이 나에게 잠시 얘기를 나누자고 했다.

"저희 어머니가 암 투병 중이세요. 당연히 카드를 직접 사용하신 적 없으시고요."

"아, 네 그러시군요. 그럼 혹시 카드를 분실하신 걸까요?"

나의 물음에 피고의 아들은 조용히 그건 아니라고 대답하며 말끝을 흐리셨다.

"분실이라고 하면 분실인데, 아마 아버지가 쓰셨을 겁니다."

나는 더 이상 해드릴 말이 없었다.

그저 쓸쓸히 휠체어를 끌고 엘리베이터로 향하는 그 뒷모습을 바라만 보았다.


#2

내가 담당하고 있는 사건중 가장 큰 다툼건이었다.

피고가 신차를 할부로 뽑았는데, 수개월 넘게 갚지 않고 있어 기한의 이익을 상실시키고 일시불로 차 값을 청구하는 대여금 사건이었다.

변론만 세 번 넘게 진행되었고, 심지어 증인신문까지 잡혔다.

피고석에는 언제나 부부가 함께 나왔고, 피고는 아내였다.

아내가 당사자지만 대부분의 발언은 남편이 하였고, 요지는 차를 인도받은 적이 없으니 차값을 낼 수 없다는 것이었다.

나는 당시 차량을 인도한 해당 대리점 직원과 여러 번 통화를 했지만, 인도증에도 문제가 없었고, 피고가 직접 차키를 받아갔다고 했다.

그러나 피고 측은 얼울해 죽겠다는 듯 차키를 받은 적도, 차를 구경한 적도 없다는 것이었다.

그럼 도대체 차는 어디로 증발했나?

결국 혼란에 빠진 재판부는 차량을 인도한 대리점 직원을 증인으로 신청하길 원했고, 사무실에 들어와 대리점 직원과 한참을 통화한 나는, 총 2명을 증인으로 지정하여 신청하였다.

한 명은 차량을 인도한 대리점 직원이었고, 또 다른 한 명은 피고와 함께 차량을 받으러 왔다는 피고의 고향오빠였다.

상황은 대리점 직원에게 증인출석을 부탁한다는 전화를 드리면서 정리됐다.

"아니, 제가 차키를 드리고 키 큰 남자분, 남편분이 직접 차를 몰고 가시는 걸 봤다니까요. 증인출석을 해도 저는 더는 드릴 말씀이 없을 것 같습니다."

대리점 직원의 말에 나는 순간 머리를 한 대 맞은 것 같았다.

"키가 크다고요? 남편분은 키가 작으신데요?...."

지금껏 변론이 끝나고 법정 앞에서 피고 부부와 수차례 이야기를 나눴기에 그 부부는 둘 다 키가 작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던 터였다.


고향 오빠.

고향 오빠라니.


지금껏 대리점 직원은 피고와 같이 온 남자손님이 남편인 줄 알았다고 했다.

두 증인은 증인신문일에 법정에 성실히 출석하였고, 피고의 고향오빠에게 나는 예정된 첫 번째 질문을 했다.

"증인은, 피고와 무슨 사이입니까"

재판이 진행되는 내내 나는 피고석에 앉아있는 남편의 표정을 살폈다.

그는 별다른 표정의 변화 없이 묵묵히 앉아있을 뿐이었고, 평소의 적극적인 모습은 온데간데 사라져 있었다.

결국 원고의 청구를 전부 인용하는 것으로 원고 전부승소 판결을 받았고, 법정에서 나온 피고 부부와 마주 했다.

피고의 남편은 나에게 허탈한 듯 이렇게 말했다.

"그럼 총 얼마 갚으면 되나요? " 남편의 질문을 듣고, 피고인 아내는 가만히 고개를 떨굴 뿐이었다.



사실 두건 모두 나는 전부승소를 받았다.

그리고 당시에는 다행이었다고 생각했다.

화해권고나 조정결정을 받으면, 본사에 품의서를 써야 했기 때문이다.

품의서를 쓰는 일은 업무도 아닌 것이 여간 까다로운 것이 아니었기 때문에 나는 가슴을 쓸어내렸다.

그러나 기분은 마냥 좋지 못했다.

그날의 피고들의 표정, 그리고 생략된 말과 그 침묵 속에 숨은 그 마음은 오래도록 잊히지 않았다.



나에게는 몇백 건 몇천 건의 소송이 그저 업무일 뿐이다.

그러나 누군가에게 그 소송은 평생에 한번 있을까 말까 한 사기의 경험이고, 사랑하는 사람의 배신을 깨닫게 된 중요한 순간일 것이다.

법정은 서면과 증거만 오가는 딱딱한 곳처럼 보이지만, 사실 사람 사는 냄새가 가득하고 숨기고 싶은 치욕적인 부분까지 잔인하게 문서화되어 드러나는 곳이다.

일을 일로만 인식하며, 오즈의 마법사 속 심장 없는 깡통로봇이 되어가던 나조차 그 몇 가지 사건들만은 십여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생생하기만 하다.


내가 최초에 법을 배운 이유는 내 사람들이 곤란한 일을 당했을 때 도와주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그 곤란한 일들이 업무로 다가와 귀찮고 힘들어질 때면 난 그때의 그 피고들의 얼굴을 떠올린다.

그리고 내 사람들의 사건이 잘 해결되기를 바라며, 이렇게 빌어준다.


나는 비록 매일같이 드나드는 법원이지만,

그들에게는 그 변론이 평생의 처음이자 마지막이 되었으면 좋겠다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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