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언가를 그리워했던 내가 그립다
막연히 무언가 그리워지는 저녁이다.
부족할 것 없는 적당한 삶 속에서 무언가를 잃은 기분.
그리워할만한 대상을 떠올려 본다.
떠올리는 것만으로 가슴과 머리가 벅차올라 먼 미래까지 나만의 상상으로 잇던 그러한 대상들 말이다.
사람이거나 사랑이거나 꿈이거나 일이거나 그런 것들 말이다.
하나하나 떠올려 보지만, 예전 같은 우주는 펼쳐지지 않고, 그 대상의 형태만 머릿속에 동동 떠 있는 느낌이다.
예전에는 곧잘 ‘너 하면 생각나는 것들’이라는 목록에 대하여 떠올려 보고는 했다. 한 에피소드가 되는 단어들을 나열하는 것이었는데, ‘까만 뿔테안경, 카라멜마끼아또, 한쪽 귀걸이, 가로본능휴대폰, 까만 장우산 등등’ 이런 사소한 단어들을 짧게 나열해 보는 것이다.
그 단어들을 떠올리면 그 아이와의 에피소드가 떠오르거나 어떤 장면이 떠오르곤 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자 그 단어들은 점점 줄어들어 한두 개만 남아버렸다.
분명 추억은 사라지지 않았는데 내 기억은 사라지고 있는 것이다.
심지어 이제는 그 대상이 무엇이든 아무것도 떠오르지 않고, 그립지도 않아져 버렸다.
마음속 깊숙이 막연한 그리움이 답답해 온다.
분명 무언가 끄집어내고 싶은데 뭔지 모르겠다.
한참을 생각하다가 이런 결론에 이르렀다.
아마도
무언가를 그리워했던 내가 그리운 것 같다.
이게 맞는 것 같다.
그리운 무언가를 떠올렸을 때 밤새 상상해도 모자랄 만큼의 그리움으로 온 우주를 그려냈던 그때의 나 자신이 그리운 것 같다.
추억의 음악을 들었을 때, 마치 기억상실에 걸린 사람처럼 뭔지 모를 우수에 젖어드는 느낌이다.
그런 추억상실증 환자가 되어버렸다.
이제는 내가 무엇을 그리워했는지 그 그리워하는 모습조차 그리울 정도로 메말라버렸다.
이미 뜨겁게 타오르고 꺼져버린 연탄재마냥 푸석푸석하다.
정말 그립다.
무언가를 그리워하며 슬퍼하고 행복해했던 내 모습이
그리고 잊혀진 그 그리움의 대상들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