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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 애 Jan 28. 2023

자유에는 책임이 따른다

난관에 부딪치다

 우리는 히스로 공항에 도착하자마자 기차를 타고 런던 중심부인 패딩턴 역으로 이동했다. 런던에 도착한 그 순간부터 여행의 설렘에 긴장감이 더해지고 있었다. 이 신혼여행의 총책임자는 나였다. 사실 실상은 어떠할지언정 우리 관계에서 항상 표면에 나서고 있는 사람은 나였다. 성향이 본디 주도적일뿐더러 특히 이번 여행의 경우 내가 호텔과 여행사(일반 여행사가 아닌 출장과 관련된 예약을 돕는 비즈니스 여행사였다.)에서 근무한 이력이 있기에 내가 맡는 것이 옳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런던에 도착한 그 순간부터 그 책임감에 날이 서 있었다. 상상하는 것과 실제로 보는 것은 많이 다르다. 마치 TV나 그림을 보듯 해외를 바라보는 것과 그 속에 들어가 있는 것은 많이 다른 문제였다. 일단 내 주변을 둘러싼 모든 것이 낯설다는 것이 나를 더욱 긴장하게 했다. 간판에 적힌 언어, 안내문에 적힌 언어 등 모든 언어가 모국어가 아니며 단일 민족 국가에 사는 나로서는 주변 사람이 대부분 나와 다르게 생겼다는 것도 꽤나 생경한 광경 중 하나였다. 우리는 그 흔한 워킹 홀리데이나 해외 연수 같은 것도 가본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당시 패딩턴역으로 이동하는 구글 타임라인


 그 낯섦의 소용돌이 속에서 정신을 붙잡고 첫날 내게 주어진 과제를 실행하기 시작했다. 첫 번째 과제는 '유심'이었다. 여행을 자주 다니는 사람에게는 '유심'이 뭐 과제씩이나 되냐고 하실지 모르겠지만 백 리 길 머나먼 타국에서 핸드폰과 인터넷은 거의 생명줄과도 같았다. 미리 구매한 유심을 런던에 도착하자마자 장착하고 미리 인쇄해 온 기차표와 안내 등을 보고 패딩턴 역으로 향하는 기차에 올랐다. 기차에 올라서인지 아니면 원래 유심 연결이 시간이 좀 걸리는 것인지. 유심을 꽂자마자 뾰로롱 하고 완벽하게 연결될 줄 알았던 인터넷은 꽤나 버벅거리고 있었다. 난 사실 그 짧은 순간에 상당히 많이 당황했다. 아까도 말했다시피 이것은 내 동아줄이나 다름없는 것인데 이것이 끊어진다면 나는. 하지만 내가 당황한 모습을 보이면 신랑도 당황할 것이란 생각에 "아, 원래 기차에서는 좀 걸려 - 기다려 봐."라며 여유를 부렸다. 속으로는 땀이 삐질삐질 흐르는 중에 다행히 인터넷이 연결되었고 나는 그제야 진심으로 안도한 표정을 지으며 "거봐, 내가 연결된다고 했지?" 하고는 쏟아지는 유심 사용 관련 문자들을 찬찬히 읽어보고 있었다. 그러던 중 우리가 예약한 에어비앤비 호스트로부터 문자가 도착했다.


 사실 이 에어비앤비는 예약할 때부터 조금 문제가 있었다. 우리는 여행 초짜로서 에어비앤비 어플 자체를 이번 여행 때문에 처음 깐 사람들이었다. 하지만 호텔이 아닌 에어비앤비라는 옵션을 선택한 이유는 한 도시에 일주일 정도 체류할 예정이었기 때문에 창문조차 열지 못하는 방 한 칸의 호텔은 너무 답답할 것 같았으며 뭔가 에어비앤비에 묵으면서 여기 사는 현지인이 된 듯한 기분을 느껴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에어비앤비를 택하게 되었는데 여기서 몇 가지 초보자의 실수가 발생했다.


 첫째. 동네를 보지 않고 위치만 보고 선택을 했다. 우리는 런던 중심부인 패딩턴 역으로 이동할 예정이었으며 딱 봐도 그곳이 중심 같아 보이기에 그 주변의 저렴한 에어비앤비로 검색을 해서 예약을 했다. 하지만 이는 그다지 현명한 선택이 아니었다. 위치도 중요하지만 동네도 구글 로드맵으로 확인을 했어야 했던 것이다. 우리가 예약한 곳은 아랍인들의 주 거주 지역으로 우리가 예약한 에어비앤비 골목으로 들어서자마자 영어가 아닌 온통 아랍어가 쓰여있었으며 주변에 걸어 다니는 사람들도 다 아랍사람들이었다. 아랍사람들이 싫다는 것이 아니라 영국에 온 기분이 전혀 나지 않았다. 꼭 에어비앤비로 예약할 생각이라면 구글 로드맵을 확인하는 것을 추천한다.

당시 예약 되어 있던 숙소 근처 로드뷰

 둘째. 후기가 전혀 없는 숙소임에도 겁도 없이 예약을 했다. 내가 찾은 숙소는 꽤 깨끗해 보였고 좁지 않고 꽤 넓어 보여 마음에 들었는데 후기가 하나도 없었다. 그래서 고민을 하던 중 호스트가 보유한 다른 숙소를 검색해 보니 여러 개가 조회되었으며 후기가 있는 것도 있었고 대부분 내용이 좋았다. '아, 이 사람은 숙소를 여러 개 가지고 있나 보다. 이건 새것이라 후기가 없나 봐. 믿을만하겠지.'라는 안일한 생각으로 환불도 되지 않는 숙소를 덜컥 예약했다. 하지만 예약 과정에서 백인이었던 호스트의 사진이 동양인으로 바뀐다던가 호스트의 이름이 바뀌기도 하였다. 나중에 알고 보니 이것은 개인이 집을 여러 개 소유한 것이 아니라 회사가 여러 개의 부동산을 구매해서 직원을 고용하여 에어비앤비를 진행하는 형태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여러분. 첫 여행에서는 무조건 슈퍼 호스트, 즉 후기가 많고 개인이 열심히 운영하는 곳을 가는 것이 안전합니다.


 아무튼, 조각조각난 문자에 내 멘털도 조각조각 나버렸고 에어비앤비에 등록된 번호로 전화를 해보았지만 받질 않았다. 기차는 야속하게 계속 패딩턴역으로 달려갔고 10통이 넘게 전화를 걸었지만 아무 응답이 없었다. 그렇게 우리는 패딩턴 역에 도착했다.


그 와중에 아름다웠던 패딩턴역

 잠시 멘붕이 온 것도 잊을 만큼 역은 아름다웠다. 역이 이렇게 아름다울 일인가. 몸집만 한 캐리어를 끌고 출구를 찾아 나가보니 비가 내리고 있었다. 아, 오늘은 운수 좋은 날이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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