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유와 건설 중심의 산업화 시대를 대표하던 공간의 변화
‘문화비축기지’는 서울시 마포구 성산동 매봉산 아래 자리하고 있는 도시문화공원이다. 이곳은 41년간 산업화 시대의 유산인 ‘마포 석유비축기지’였으나 도시재생을 통해 시민을 위한 문화공간으로 재탄생했다.
최근 다양한 방송에 모습을 드러내는 문화비축기지는 이전에 비해 친숙하게 느껴진다. 2017년 새로운 모습으로 시민에게 다가왔다고 하지만, 매봉산 아래 구석진 곳에 자리하다 보니 그동안 관심 밖에 있었기 때문이다. 교통편도 불편해서 굳이 찾아보지 않는 이상 문화비축기지가 어디에 있는지 잘 모른다.
나름 서울의 이곳저곳을 돌아다녀 봤다고 자부했던 나도 작년에 처음 알게 되었다. 그것도 ‘석유에서 문화로’라는 신기한 슬로건과 ‘문화비축기지’라는 특이한 이름 때문이었다. 마침 그때 서울 밤도깨비 야시장이 열린다고 해서 느지막이 방문했었다.
생각보다 넓은 부지에 쾌적한 공간을 보며, 오랜 시간 석유를 보관하던 1급 보안 시설이라는 사실이 잘 믿기지 않았다. 동시에 문화를 비축하기 위해 준비된 공간이라는 인상을 받았다.
[T1 파빌리온]은 석유비축기지 시절 휘발유를 비축했던 탱크를 해체한 후 남은 콘크리트 옹벽을 이용하여 유리온실로 만든 공간이다. 앞쪽의 통로에서는 전시, 공연, 체험 활동을 할 수 있어서 '문화 통로'라는 이름이 붙여졌다.
긴 통로 끝에 매봉산 암반을 볼 수 있는 유리온실이 보인다. 외부가 보이는 투명한 유리천장으로 계절과 날씨, 시간에 따라 분위기가 달라진다. 감성을 자극하는 분위기 덕분에 가만히 있어도 기분이 좋아진다. 이곳에서는 전시와 워크숍, 소규모 공연을 주로 진행한다.
[T2 공연장]은 경유를 보관하던 탱크를 야외무대와 내부 공연장으로 만들었다. 해설사님의 설명에 따르면 처음에는 야외무대만 만들었으나, 우천 시 이용하지 못할 것을 고려하여 추가로 내부 공연장을 건설했다고 한다.
시원하게 개방된 야외무대는 매봉산을 뒤에 두고 높다란 하늘이 앞에 펼쳐져 있어 꼭 자연이 공연장의 일부가 된 것 같다. 실제로 이러한 구조 덕에 소리의 울림을 널리 퍼뜨릴 수 있다.
탱크 하부에 있는 실내 공연장은 200석 규모로 생각보다 많은 인원을 수용할 수 있다. 다양한 공연을 주로 하지만, 좌석 위에 작품을 두어 전시를 진행하기도 한다. 탁 트인 공간으로 색다른 전시를 보여주는데 꽤 신선했다.
[T4 복합문화공간]은 등유를 보관하던 탱크로 내부의 원형을 그대로 볼 수 있다. 거대한 철제 외벽과 파이프가 있는 내부의 모습은 석유로 가득했던 과거를 떠올리게 한다. 소리가 잘 울리는 밀폐된 공간으로 시청각을 이용한 공연이나 전시를 하기에 알맞다.
T4 탱크의 외부도 내부와 마찬가지로 석유비축기지였던 과거를 보여주는데, 탱크 외벽의 색을 보면 알 수 있다. 제일 윗부분은 시멘트의 회색이 보이지만, 그 아래로는 황토색을 띠고 있다. 군사 시설로 분류된 석유비축기지는 민간인이 알 수 없는 곳에 위치하게 되어 땅속에 묻어둔 것처럼 만든다. 그 때문에 회색과 황토색을 가진 외벽이 만들어진 것이다.
[T6 커뮤니티센터]는 T1과 T2를 해체하며 나온 철판을 활용해 만들어진 공간이다. 운영사무실과 창의랩, 강의실, 원형회의실, 카페테리아 등 커뮤니티 활동을 위한 공간으로 이루어져 있어 가장 활발하게 사용된다. 2층에는 탱크 안에서 하늘을 올려다볼 수 있는 옥상마루와 시민들이 휴식을 취할 수 있는 도서관 ‘에코라운지’가 있다.
이외에 다른 탱크로는 석유비축기지 당시 탱크 원형을 그대로 보존한 [T3 탱크원형]과 탱크의 안과 밖, 콘크리트 옹벽, 암반, 절개지를 온전히 관찰할 수 있는 [T5 이야기관]이 있다.
문화비축기지의 새로운 공간이 주는 신선함에 눈길이 갔지만 아직도 숨어있는 공간이라고 생각한다. 과거 석유를 보관하던 탱크에서 문화를 비축하는 공간으로 탈바꿈한 것은 분명하나 그 속이 채워졌다는 느낌은 덜 했기 때문이다.
외부로 모습을 드러내었지만 한 자리에 오래 있었던 거대한 탱크는 축적된 시간만큼 부피가 크기에 비어있는 공간이 더욱 눈에 들어왔다. 그래서 문화를 비축하기 위해 준비된 공간이라는 인상을 받았나 보다.
빈 캔버스와 같은 공간에 과거와 반대되는 친환경과 재생이라는 색채를 다양한 전시, 공연 등을 통해 채워나갈 수 있었으면 좋겠다. 의미가 부여된 도시에 존재하던 오래된 건축물이 누구나 쉽게 향유할 수 있는 문화공간으로 완전히 거듭나기를 바라며 글을 마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