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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지애 Jan 20. 2021

모호한 조선 사람들

한국에서 제외되는 한국 

내가 남북문제에 대해서 진지하게 관심을 갖게 된 것은 2014년, 2015년... 그러니까 내가 스물다섯, 여섯 일 때였다. 당시 나는 말라위에 있었다. 2013년 여름, 말라위로 교육 자원 활동을 갔었고, 홀로 작은 산골 마을에서 ''어쩌다,, 보니 2년 반 동안이나 살았다. 

(나의 말라위 삶에 대해서는 나의 브런치 북 '플라이 미 투 더 말라위'에서 더 실감 나게 볼 수 있다.�) 

https://brunch.co.kr/brunchbook/flyme-to-malawi


해외 생활을 처음 시작한 나는 영어와 현지어인 치체와를 동시에 배워야 했다. 어떤 언어든지, 처음 만나는 사람들과 인사를 나누면 우린 당연히 이방인이 어디서 왔는지 가장 궁금해한다. 마을 사람들이나, 시내에 가면 마주치는 (각국에서 온) 외국 친구들 눈에는 이 먼 아프리카 말라위에서 사는 동양 소녀가 내가 그들에 대해 궁금한 것 만큼이나 궁금할 것이다. 


넌 어디서 왔어?

웨얼 알 유 프롬?  "Where are you from?" 

무마 초케 라 쿠티? "Mumachokera kuti?" - 치체와로 말라위 공식어이다. 


나: 나는 한국에서 왔어!

아이엠 프롬 코리아 I am from Korea!

니마초케라 쿠 코리아 Ndimachokera ku Korea!


.

.

.

답을 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 90%의 사람들은 내게 다시 되물었다. 


북쪽? 남쪽? 

놀스? 올 사우스? 

"North? or South?" 


처음 만난 사람들에게 좋은 인상을 남겨야 한다는 생각에 아무 생각 없이 "사우스"라고 남한 사람이라고 '아무 문제없이' 대답을 했다. 그런데, 말라위에서 내가 지낸 시간이 길어질수록 내가 '남한'에서 왔다는 것에 다양한 반응과 질문을 하는 사람들을 많이 만나면서 나는 한반도에 대해서, 우리나라의 분단의 현실과 역사에 대해서 성찰을 하게 되었다. 


내가 남쪽에서 왔다는 사실이 나를 만나는 이들에게는 어떤 의미가 있을까? 

남한과 북한의 차이가 그리 크다면, 그 차이는 어디서 오는 것일까? 


내가 살던 산골 마을에는 인터넷이 없었다. 엄밀히 이야기하면, 2G 정도로 카톡 확인이나 이메일은 (신호가 좋으면) 실시간으로 확인할 수 있었다. 그리하여 나의 말라위 생활필수품이자 외부 세상과의 연결? 혹은 노출은 한국에서 미리 담아간 외장 하드에 담긴 각종 영상들과 읽을 자료들이었다. 


5개월 지내기로 했던 말라위 활동 기간을 1년 더 연장하게 되었고, 잠깐 귀국을 했다가 다시 파견이 가는 형태였다. 그때 나는 첫 장기 해외 생활을 하면서 나를 가장 자극시킨 그 문제. '남한과 북한의 차이는 무엇인가?'에 대한 나만의 깊이 있는 답을 찾기 위해 북한과 관련된 구할 수 있는 모든 영상들을 다운로드하였다. '앞으로 볼 시간이 많을 테니...' 하며 나는 다시 내 산골 집에 돌아갈 때까지 내가 다운로드한 영상들을 열어보지도 않았다. 


말라위로 돌아온 뒤, 나는 내가 받아온 영상들을 하나씩 보게 되었다. 


영상들은 하나같이 충격 그 자체였다. 

어째서 디엠지 너머 한반도의 아름다운 북쪽 지역은 그리도 힘들게 살아가는 사람들이 이토록 많다는 것인가? 내가 받아간 영상들은 대부분 2000년대 초반에 제작된 것들이었기에 영상들을 본 시점에서 10년 정도 격차가 나긴 했다 (북한에서는 94년도, 95년도에 일명 '고난의 행군'이라고 하는 식량 부족 위기를 겪었고, 약 1-2백만명으로 추정되는 사람들이 먹지 못해 아사한 것으로 보고되었다.).


시차를 고려하더라도, 긴급 식량 재난이었다는 특수성을 감안하더라도, 북한의 정권 체제 자체가 그만큼 억압적이고 폭력적이라는 사실을 스물다섯이 되도록 모르다가 이 먼 아프리카 땅에서 깨달은 나 자신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 지 몰랐다. 정말 총체적 정체성 혼란을 겪었달까? 




나는 대학 시절에 다문화 가정 멘토링을 학교 다니는 내내 참여했다. 그를 통해 한일 다문화 가정, 필리핀&한국 다문화 가정의 아이들을 만났다. 그런데 이 멘토링에서 내가 공고문이나 프로그램 타이틀로만 봤던 또 다른 그룹이 하나 있었다. 바로 '탈북 가정 자녀 멘토링'이었다. 


'그러려니...' 했다. 


내 할 일만 했다. '그런 사람들이 있는가 보다.'...


... 


한국에 넘어온 이들이 정말 어떤 곳에서 왔는지를 알게 되기까지 난 이 먼 땅을 와야만 했다. 


내가 너무나 부끄럽기까지 했다. 

'왜 나는 여태 몰랐을까?'



말라위에 가면서 내가 생각한 나의 '꿈'은 꽤 명확했다. 

나는 말라위에서의 현장 경험을 통해서 정말 진취적으로는 나만의 NGO를 세워서 말라위에서 아이들이 공부하고 꿈을 이룰 수 있도록 도와주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아니면, 사회적으로 인정받는 국제 공무원이 되어서 유엔 기구에 소속되어 다양한 국가들을 돌아다니며 다양한 현장 프로젝트 운영 전문가가 되고 싶었다. 그럴 수 있었던 이유는 나의 어린 시절과 내 삶을 통해서 함께 나누고 살고, 내가 가진 것에 만족하는 것에서 나아가 그것을 적극적으로 우리 사회의 어려운 이들을 돕는것, 그 하나만이 나의 꿈이었다. 


북한의 공식 국가명은 북조선 인민공화국이다. 남한은 대한민국이다.  

너무나 자연스럽게 우리는 자랑스러운 한국인이라고 말을 한다. 맞아, "We are proud Korean." 이건 자연스러운데, 굳이 "we are proud South Korean"이라고 하지 않는다. 


우리나라 공식명칭은 The republic of Korea 이다. 대한민국 공화국. 

그렇기에 우린 우리를 그냥 Korean 이라고 부를 수 있다. 

북한의 공식 명칭은 The democratic people's republic of Korea 이다. 조선 민주주의 인민 공화국. 그렇기에 북한 사람들 역시 Korean 이라고 불린다. 


어쩌면 Korean을 한국인이라고 하는 것 보다 더 정확한 번역은 '조선인' 일 것이다. 영문의 맥락상 남한인지 북한인지 불명확할 경우에 말이다. 그리고 한국어도 마찬가지이다. 북쪽도 우리말을 쓰니까 말이다. 


번역의 어려움과 경계에서 나의 남한인으로서의 위치는 사소할 수 있는 생략 또는 무의식적 타자의 존재적 제외라는 보기보다 큰 질문과 숙제를 나에게 남겨주었다.. 적어도 나의 경우에, 남한 사람으로서 지구인으로서 살아가기 시작하며 제일 많이 받은 질문이었고 그 덕분에 지금의 고민과 연구 지점에 도달했다. 내가 소극적이지만 확고한 마음으로 시작한 북한 인권일과 지금도 북한 여성, 탈북 여성들의 주체 의식과 정치성에 대한 연구를 하는 이유는 내가 그토록 답하고 싶던 남과 북의 명확한 차이, 그 가장 극명한 차이란 인권과 억압적 사회구조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앞으로는 지난 삼,사년 동안 내가 이 질문에 대해 답을 찾아가는 과정과 거기서 만난 사람들과의 이야기, 그리고 그게 어떻게 지금의 박사 공부를 이끌었는지를 하나씩 풀어보고, 나 스스로도 되돌아보는 시간을 갖고자한다. 


 * 저와 비슷한 고민을 하셨던 분이나 하고 계신 분들의 의견도 궁금합니다. 우리 모두의 숙제이기도 하니까요. 

조선인이라는 단어가 익숙하신가요? 어색하신가요? 한국인이라는 단어는 얼마나 포용적 또는 제한적 단어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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