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 독해, 번역, 발표, 나와의 싸움
사실 스스로 박사생이라고 하지만, 그저 공식적인 타이틀이기에 한다는 것과 나 스스로 나의 장기적 소명(?)과 처음의 마음을 잃지 않기 위해 굳이 쓴다는 점을 밝힌다. 요즘 같은 시대에 고학력은 되려 이름값으로 무언가를 바라는 마음이 아니라 인생에서 해 볼 만한 가치 있는 도전이자 감히 조금 거창하게 이야기를 하자면 인류의 발전에 학문적 기여를 할 수 있다는 것에 큰 보람을 갖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아직 한참 멀었지만 말이다. 휴.
앞으로 매주 한 주를 돌아보며 나의 박사 생활과 관련하여 내가 한 활동들과 읽은 것들을 종합적으로 되돌아보고 기록하기 위해 일지를 쓴다. 그것을 나는 '댕크 타게 북'이라 칭한다. 20세기 정치철학에서 빼놓을 수 없는 독일계 유대인 한나 아렌트의 사후작 중 아직 영어로도 번역이 안 된 독일어판 책 제목이 댕크 타게 북이다. 독일어로 댕크 '생각' 타게 '하루' 북'책'을 합친 언어로, 매일의 생각과 영감의 일부를 모은 저널을 일컫는 말로써, 일반적 일기장의 의미보다 좀 더 철학적 깊이가 들어간 단어라고 한다. 아렌트 말고도 많은 철학자들이 이런 저널을 썼다고 한다. 언젠가 아렌트의 이 마지막 책을 한국어로 번역해서 세상에 내놓으면 정말 뿌듯할 것 같다.
아무튼 지난 두 달 동안 나는 두 개의 인텐시브 리딩 그룹이 생겼고, 분기별 콜로키움에 참가하게 되었다. 그 외에도 외부 학술제나 세미나 등도 요즘 코로나로 인해 보통 온라인으로 참여할 수 있기에 여러 곳에서 일어나는 회의도 참여를 할 수 있었다. 많이는 아니었지만, 하나는 베를린 자유대 (내가 박사하고 있는 곳)의 한국학과에서 미국의 바이든 대통령 시대에 동아시아 '인간의 안보' 분야가 어떤 영향을 줄 것인지에 대해 브뤼셀의 유럽 컬리지의 교수이자 지난 수년 유럽연합 동아시아 부의장 격으로 활동했던 전 정치인 분께서 인사이트를 나눠주셨다. 다른 콜로키움 하나는 나의 대학교 모교인 부산대학교의 여성 연구 학술회였는데, 주제가 한국전쟁과 여성이었다. 그중 북한 여성들의 경험과 탈북 관련 발표들이 있다며 내가 존경하는 우리 대학 교수님께서 이메일로 학술제 소식을 알려주셨다. 바로 이메일로 회의 참여 등록도 마쳤으나, 한 가지 불안했던 점은 한국에서 한국 시간 오후 12시에 시작하는 행사였는데, 그 시간이면 여기 독일은 새벽 4시였다. 그 시간에 내가 일어날 일이 만무했다. 그래도 알람은 맞춰두고 6시는 일어나서 들어야지 했는데, 웬걸... 그 전날 밤늦게까지 일을 하다가 다음 날 일에 대해서 깜빡하고는 알람을 맞추지 않고 잤다. 늦게 잔 탓에 심지어 9시가 넘어서 눈을 떴다. 부랴부랴 컴퓨터를 켜고 줌 링크를 따라 들어가니 마무리 질의응답과 행사 종료 전 담소를 행사 관계자분들께서 나누고 계셨다. 그거라도 들으면서 발표자분들의 프로필을 보고, 라이브 행사 속 인품을 보며 연락을 취하고 싶은 분들의 이메일 주소를 저장해두었다.
해외에서 공부를 하면서 국내의 관련된 담론들에 대해서 문외 해지지 않도록 노력한다. 결국 내 이야기도 한국의 역사와 정치 맥락을 벗어나고선 존재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래도 여성에 대한 이야기, 다양한 질적 연구 방법, 여러 사회, 문화적 맥락에서 여성들의 경험에 대해서 폭넓게 시야를 가질 수 있기에 난 베를린에서 공부를 하는 것에 매우 흡족하다.
거기엔 특히, 미국에서 장학금을 받으며 내노라는 대학에서 박사 과정을 밟고 있는 이들과 리딩그룹을 하면서 충족이 되는 것도 한몫을 한다. 유럽에서 미대륙의 장학생들과의 교류란 시차에 대해 항상 계산을 해야 하는 것을 빼면 너무 유쾌하고 질적으로 충만한 시간이기 때문이다.
난 두 그룹과 함께 하고 있는데, 한 그룹은 여자 셋 (다 한국인인데, 다들 배경은 인터내셔널 한 분들이다. 한 사람은 말라위에서 자원 활동 때 나의 선임이자, 이후엔 친하게 지낸 언니였고, 다른 한 사람은 런던에서 석사를 하면서 홍콩계 영국친구를 통해서 알게 되었다.)이고, 다른 한 그룹은 나와 상대 박사생 분과 둘이서 하고 있다. 각 그룹 모두 2주에 한 번씩 각자 소개한 저널 아티클, 책의 한 챕터를 소개하고, 발표하며, 서로 의견을 나누는 시간을 갖는다. 미국에서 공부하는 이들은 박사를 하며 자신의 논문을 쓰는 거 외에 별도로 학교에서 주는 코스워크이며, 티칭 잡이 있기에 시간 내는 게 빠듯한 듯하다. 그에 비해 나는 내 논문을 쓰는 것과 우리 지도 교수 하에 있는 다른 젠더 및 정치 관련 연구하는 박사생들 사이 분기별 한 번씩 있는 이 콜로키움 외에 수업이나 다른 의무는 따로 없다. 거기다가 이제 막 시작했는데 하필 코로나로 학교에 가지도 못하기에 온라인으로 최대한 사람들과 어울릴 수 있는 것은 기회가 있을 때마다 하려고 한다.
그런데 난 '이것저것'하는 박사생이라 사실 석사 생떼 이런저런 변명으로 나의 완전히 아카데믹할 수 없는 성향을 빌미로 120% 노력하고 있지는 않은 것 같다. 영어에 대한 장벽도 아직도 있다. 한국어로도 발표를 하면 내 언어인데도 조리 있게 말하는 게 힘든데, 아카데미아에선 정말 어찌 다들 머리가 그렇게 빨리 돌아가는지 내 뇌는 소화하기 힘들 때가 많다. 그래도 런던에 있을 때에 비해서 지금은 독일에서 대부분 영어가 네이티브가 아닌 사람들이라 그런 면에선 다들 여유가 있다. 이것도 계속 더 읽고 꾸준히 모르는 단어도 외우고 실제로 사용하면서 훈련을 해야 하는 거겠지?
내가 박사 공부를 하는 것 중에 가장 큰 목표는 한국에서 탈북 여성들의 자기 계발과 성장을 위한 시민단체를 만드는 것이다. 정말 신기하지 않은가? 이 여성들이 남한 사람들이 북한 사람들에 대해 전형적으로 기대하는 이미지를 재현하고 보여주기 식이 아닌 그들만을 위한 단체가 없다는 것이 말이다. 물론, 인권 기반 단체나 문화 및 사회 참여 단체 중 여성들을 기반으로 (여성이란 이름을 내걸고) 하는 단체가 내가 알기론 딱 한 군데 있다.
지금은 한국에 온 지 이미 10년이 넘고, 정치, 철학으로 석사 공부를 하고 계시는 Y 선생님과 일대일로 일주일에 한 번씩 영문 저널을 함께 독해하는 것을 도와주고 있다. 처음에 목표는 이런 분들 8명 정도를 모시고 함께 책 (한글)을 읽으며 서로 의견도 주고받고, 기회가 되거나 필요하면 내가 여러 자료도 준비해서 조그만 세미나도 하고 그러려고 했는데... 탈북하신 여성분들 중에 한국에까지 오신 분들은 삶을 힘들게 살아내신 분들이 많다. 우리의 삶이 힘들면 사실 시간적으로나 아니면 그냥 우리 마음이 '한가히 여유롭게 앉아서 책이나 읽으며 사변을 논할 시간이 없게'된다. 내가 너무 주제 파악 못하고 혼자서 저 멀리까지 나가서 꿈을 꾼 것 같다.
지금도 선생님과 3번째 수업을 하곤 이번 주 수업은 수업 한 시간 전 이번 주는 어렵다며 다음 주에 보자고 연락이 오셨다. 말라위에서의 주민들과 함께 교육 사업을 하던 것이 생각났다. 더 나은 사람인척 하지 않고, 그렇다고 마냥 노닥거리는 일이 되지 않고서 누군가를 이끌고 그와 함께 무언가를 만들어간다는 것은 그 자체가 도전이면서 또 스스로를 괴롭히는 일이다. 그럼에도 하고 싶은가? 지금은 그렇다. 아직 초반이고 내가 좀 더 여성에 대해서, 이민자들의 삶에 대해서 다양한 맥락과 결에서 공부를 하는 것은 실제 삶에 아직도 그러한 맥락에 놓여있는 주체들에게 도움이 되기 위해서다. '도움'이란 단어 말고 더 나은 단어를 찾아야 한다.
'도움'이란 단어가 주는 함정을 잘 알고 있기에 그 행위 자체가 전혀 손가락 받을 짓이 아니면서 그것이 당사자에게 저지르는 큰 오류를 알고 있다. 심리적 상실, 기대, 배반 이런 것들은 때때로 우리도 의식하지도 못하는 사이에 우리를 좌절시키게 만든다. 한편, 당사자뿐만 아니라 함께 하는 상대도 그마저도 자연스레 '도움에 감사하다'는 표현을 하며 마침내 '스스로를 돕는 것'에 대한 면죄부를 준다.
아무튼 석 달 치를 한 번에 쓰려니 영 글을 끝맺기가 어려워지는 듯하다. 여기서 줄여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