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번 브런치글에서 최근 헤이그 최고사법재판소 ICJ의 미얀마 정부에게 로힝야 주민들의 권리 보호와 학대 방지를 위한 긴급 조치를 명령한 것과 관련하여 다루었다. 그리고 간략하게 로힝야 주민들의 상황을 이해하기 위해선 미얀마의 시민권 변화, 독립 이전 역사, 종교적 갈등 등에 대해서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언급을 했었다. 사실 최근 2017년 미얀마 군부에 의한 로힝야 주민들이 거주지의 화재와 학살(?) 근거가 세상에 드러나기 전 그들의 관계에 대해서는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은 사실에 기반한 자료를 찾기가 좀 힘들어보인다.
그럼에도 나는 방글라데시 한 대학의 교수가 쓴 라칸인 주의 로힝야 주민들의 식민 이전 역사를 바탕으로 현대 로힝야 '위기' 이전 그 위기의 발달 전개과정을 역사적 관점에서 간략하게 설명하려고 한다.
여기 간략하게 유튜브/ 위키피디아를 보고 요약한 로힝야 주민들의 기원이라고 '믿어지고 있는' 아라칸 왕국의 개보에 대해서 살펴보자.
기원전 3세기 - 8세기 - 아라칸 왕국은 동남아시아 지역의 왕국들 중에서 초기에 나타난 오래된 왕국 중 하나이다. 시작은 불교와 힌두를 중심으로 형성되었고, 8세기즘 무슬림 문화를 받아들이기 시작했다고 한다.
8세기 - 이 시기를 기점으로 무슬림의 아라칸 지역으로 많이 왔으며, 이들 대부분은 인도의(벵갈리족)에서 온 것으로 알려져있다.
9-14세기 - 아랍 상인들과의 거래와 무역이 활발했고, 동시에 아라칸 왕국과 벵갈 왕국 사이 교류도 왕성했다.
15세기 - 10세기 경부터 버마족들의 왕래도 있었다고 믿어지는 아라칸 왕국 땅을 버마왕국의 보다우파야 (Bodawpaya)왕이 점령을 하게되면서 당시 아라칸 로힝야 민족의 다수가 당시 벵갈 (오늘날 인도)로 피난을 떠나게 되었다.
19세기 -영국의 식민 지배가 이루어진다. 그러면서 전 아라칸 지역을 포함하여 버마 전 지역이 영국의 인도령 (1858 - 1947)에 에 들어가게 되고, 넓은 의미에서 영국인도령 다른 지역에서 버마 땅으로 인프라산업 프로젝트를 위한 노동을 위해 이민을 오게된다. 20세기 - 1942년 - 1942년 아웅산 수찌와 일본의 합작으로 영국은 버마 땅에서 후퇴를 하게 된다. 이후 버마족들은 영국령 인도 지배하에서 이주를 온 무슬림계 (로힝야족 포함) 차별을 시작한다.
20세기 - 1942년 - 1942년 아웅산 수찌와 일본의 합작으로 영국은 버마 땅에서 후퇴를 하게 된다. 이후 버마족들은 영국령 인도 지배하에서 이주를 온 무슬림계 (로힝야족 포함) 차별을 시작한다.
보다 오늘날 로힝야 주민들의 상황과 밀접하게 연결되어있는 20세기 근현대 역사 상황을 살펴보면
1942년-1943년 사이에 영국 지원/지지(하는) 을 받은 로힝야무슬림 족과 일본 지원/지지(하는) 아라칸 불교계 사이 물리적 충돌이 일어난다. 영국의 반공격 시도는 결국 실패로 돌아가고, 이를 계기로 아라칸 지역 내 민족적 갈등과 분리는 더욱 더 고착화 되었다고 한다.
1945년- 일본이 2차 전쟁에서 지자, 버마땅은 다시 영국의 지배를 받게되었다. 영국은 그들이 떠나기전 로힝야 족에게 아라칸주 독립에 대한 약속을 지키지 않으며, 로힝야를 외면한다. 당시 라카인주에 거주하는 로힝야 민족들은 파키스탄으로 통합되고자 하는 의지와 운동이 강했음에도, 버마 초대 지도자 (대통령) 우 누 (U Nu)는 로힝야가 버마의 충실한 불교신자이자 국민임을 발표한다.
3년 뒤 1948년 버마 독립이후부터 60년대까진 아라칸의 로힝야들의 정치 참여와 국회의원 선거 당선도 소수지만 당선이 되기도 했었으나, 60년 이후 로힝야의 정치참여를 제한하는 움직임이 시작되었고, 마침내 1982년 미얀마의 시민권법개정을 통해 공식적으로, 노골적으로 '로힝야'를 인도계 후손이라는 명목으로 시민권을 인정하지 않았다. 심지어 이미 당선된 아라칸 주 출신의 정치인에 대해선 정치참여권을 박탈하기도 했는데, 그 이유는 그녀의 부모가 로힝야라는 이유였다.
시민권의 자격을 영국 식민지배 이전부터 거주했던 사람들로 규정하며, 영국 지배 당시 이민 온 사람들은 시민 자격이 될 수 없다고 규정했다. 미얀마 정부는 로힝야 족의 라카인 주에서의 세기에 걸친 거주와 역사를 모두 부정했다. 그들의 근거는 그들이 '영국령 인도' 지배 당시에 인도에서 넘어온 '이민자'들이라는 것이다.
1962년 우누정권 (초대 수상)을 쿠데타로 밀어내고 네윈 (Ne win) 장군이 정권을 잡았고, 그의 정당의 사회주의 정책을 밀고나갔고, 로힝야에 대한 차별을 더욱 강화되었다. 군사정부는 1978S년 외국인 인구 겸열을 명목으로하는 킹드레곤 작전 (king Dragon operation)을 펼쳤고, 이때 20만명이 넘는 로힝야인들이 방글라데시아로 피난을 간 것으로 기록이 되어있다. 그러나 당시 군대는 이때의 폭력과 박해한 사실을 부인하고 있다. 이로 인해 미얀마 군부의 강간/ 종교적 박해/ 강제 노동을 피해 25만명의 로힝야 난민이 생겼다.
(사건 관련 구글 프로필: https://www.google.com/search?q=KING+DRAGON+BURMA+OPERATION&rlz=1C1OKWM_koKR872KR872&oq=KING+DRAGON+BURMA+OPERATION&aqs=chrome..69i57j69i64.5752j0j7&sourceid=chrome&ie=UTF-8)
1962년 쿠데타로 권련을 잡은 후, 1988년 민중저항으로 후퇴까지 16년 군부 독재를 한 네 윈 대통령
이후, 방글라데시아 정부의 유엔 중재로 인해 23만명의 로힝야 난민들은 라카인으로 돌아오게 된다. 이후 크고 작은 충돌이 라카인 주민/ 불교신자들과 로힝야/ 무슬림 주민들 사이에 일어난다. 라카인 주에서는 로힝야 주민들을 '테러리스트', '벵갈리 (인도 벵갈주민들을 낮게 부르는 명칭)', '불법 이민자' 들이라고 부르는데 이는 이렇게 그들의 역사성과 정체성을 공식적으로 부인하는 것으로부터 받은 영향의 일부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1989년 버마가 미얀마로 이름을 바꾸고 민주화를 하면서 동시에 '아라칸'주를 '라카인'주로 공식 명칭을 바꾼다. 라카인 주민들과 로힝야 주민들이 함께 살고 있는 역사적으로 '아라칸'이라고 불리던 지역명칭을 라카인 이라는 이름으로 공식화하면서 미얀마는 그들의 (골칫덩어리인) 로힝야를 그렇게 부정해버리려했다. '로힝야'에 대한 부정은 최근 아웅산수찌의 헤이그 사법재판소에서도 한번도 그 이름을 언급을 하지 않은 것과, 이 재판 이후 미얀마 내 대중미디어를 통한 미얀마 정부의 공식 입장에서도 한번도 그 이름이 언급되지 않음으로써 오늘날까지도 이어지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아쉬운 소리로 들릴 수 있지만 식민역사는 아프리카의 빈곤화와 분쟁과 부패의 이미지로 고착화된 아프리카 대륙처럼 동남/서남아시아에서 식민이후 새롭게 탄생한 소위 '제3세계 국가'들은 아직도 원하지 않게 그어진 국경과 분리에 그 진통과 발전 과정을 역동적으로 겪고 있다. 로힝야 주민들의 이슈는 최근에 갑작스럽게 일어난 제노사이드 (집단학살)이 아니라 버마왕국이 18세기 아라칸 왕국을 점령하고 19세기에서 20세기 중반까지 영국 식민지배와 일본의 간섭 기간을 걸치고, 독립과 군부독재, 불교중심의 버마민족중심 민족국가 형성을 해나가는 과정에서 형성된 것이다.
나로서도 인터넷 리서치와 대표적인 위키피디아, 독립 유튜브 영상 창작물, 방글라데시 교수의 논문을 바탕으로 요약한 것이라 사실 깊이 있게 미얀마의 국가 역사를 촘촘하게 다 알지 못한다.
현존 최대 규모의 로힝야 난민캠프인 콕스바 (방글라데시) C. IFRC
그러나, 미얀마의 로힝야 문제를 더 효율적이게 해결하기 위해서는 보편적 가치를 내세우는 국제인권법과 인도주의법에 대한 강조 뿐만 아니라 더 넓은 시야에서 그들의 정체성을 인정하면서도 어떻게 세대를 이어 박탈당한 '시민권'을 되돌려줄 수 있는지 생각해야 한다. 곳곳에 흩어져 난민촌 생활을 하고 있는 이들은 일시적 급성적 학대와 폭력에 시달리는 것이 문제가 아니다. 세대를 이어 '유령'같은 존재로 집단적으로 그렇게 없어져가는 과정에 놓여있는 것을 복구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우리가 당연히 여기는 시민권, 주민등록증, 여권, 거주등록증
이것들이 얼마나 우리의 삶의 질과 존엄에 지대적인 역할을 하는지 그것을 박탈당해보지 않은 사람, 아니 한번도 부여받을 기회조차 없었던 사람은 모를 것이다.
이 글을 통해서 조금이라도 우리 모두가 연대의 의미와 시민됨의 목적과 더불어 그것과 개인으로서 '나'와의 관계가 무엇인지 생각해볼 수 있는 기회가 되었으면 좋겠다.
그리고, 사단법인 참여연대에서 로힝야에서 활동하고 있는 분들을 모셔 간담회를 곧 연다고 하니, 시간되는 분들은 참여해서 더 자세히 현장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는 기회를 갖길 희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