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 로힝야 사람들의 차별과 박해를 '오늘날/ 현대적' 난민 문제로만 생각하는 경우가 많은데 이는 일부 맞는 이야기지만 그보다 더 고질적인 문제들이 있다. 이는 역사적으로 장기적으로 존재해 온 뿌리깊은 구조적인 차별과 박해의 과정을 이해해야만 한다. 이는 종교의 문제/ 시민법의 문제/ 식민 지배 당시의 관행과 특혜의 문제들을 통해 총체적으로 이해할수있다.
최근, 12월 11일에 헤이그 최고사법재판소 (International Court of Justic, ICJ)에서 감비아(서아프리카에 위치했으며, 세네갈 국가 안에 위치한 작은 국가인데, 국교가 무슬림이다) 국가대표가 헤이그에서 미얀마 정부가 로힝야 무슬림 소수민족에 대해 집단 학살과 박해를 혐의 비판하며 문제를 제기하였다. 사법재판소의 재판관 구성은 미얀마 정부의 선택으로 이루어졌음에도 불구하고, 최종적으로 미얀마 정부에 비판적인 태도를 보이며, 미얀마 정부에 긴급명령을 따르도록 판결을 내렸다.
감비아는 여러 무슬림 국가들을 대표해서 ICJ에 이렇게 호소하게 되었다. 아프리카의 작은 국가, 특히 막 23년의 독재를 끝내고 민주화 과정에 있는 국가가 어떤 강대국도 제안하지 않고 있던 이런 큰 호소를 국제사회에 던졌다는 것은 미디어에도 크게 특별하게 보도가 되었다.
그러나, 국제사회와 국제 언론은 감비아 대표가 이를 최초로 제기했다는 것보다 이 제기에 대한 미얀마 국가 고문인 아웅산 수찌의 이에 대한 반기에 더욱 더 놀라움을 표했다. 그녀는 12월 ICJ 재판에서
자원 부국에서 다분히 일어나는 내부 무장갈등이었고, 인종학살의 의도는 없었다. ...2016~2017년 라카인(미얀마 서부로 로힝야인 밀집 거주지역)에서 발생한 내부 무력 충돌의 재발을 피하는 것이 중요하며, 당시 충돌 과정에서 국제인도법 위반이 있었다 하더라도 집단학살 수준까지는 이르지 않았다”
라고 밝히며, 감비아 대표가 제기한 미얀마 정부(군)에 의한 대량 학살 혐의를 전면 부인했다. 또한 그녀는 국제사회가 너무 성급한 판단을 하고 있다며, 미얀마 군 사법제도가 작동하고 있으므로, 국내법 기준을 중심으로 진상규명 활동을 이어가야 한다고 밝혔다.
4분 짜리 이 영상은 90년대초 노벨평화상까지 받은 국제 평화 상징인 아웅산수찌가 로힝야 주민들의 인권 보호실패와 무시로 어떻게 그 상징성을 잃었는지를 명료하게 보여준다.
라고 밝히며, 감비아 대표의 학살 혐의를 전면 부인하고 국제사회가 너무 성급한 판단을 하고 있다며, 미얀마 군 사법제도가 이미 작동하고 있으므로, 국내법 기준을 중심으로 진상규명 활동을 이어가야 한다고 밝혔다.
특히, 아웅산 수찌 고문은 로힝야 주민들을 그들의 정체성이 들어간 '로힝야'라고 부르는것을 피하고, 라카인 지역의 주민들이라고 객관화하면서, 소수민족인 로힝야 주민들과 불교 중심의 무슬림과 인도계 이민자들의 차별에 기반한 대량학살을 부인하였다. 그러나, 이번 사법재판소의 기소 전에도 2018년 유엔의 독립 조사단에 의한 로힝야 주민들의 대거 난민 이주와 무국적 상황에 대한 무려 444페이지의 보고서에서도 역대 인류에 존재하지 않은 최악의 소수민족 차별과 학대라고 밝혔었다. 아웅산 수찌는 미얀바 정부군에 의한 폭력과 학살이 아닌 라카인 내의 무슬림 반군 진압을 위해서 분쟁 (사회 안정을 위해 필요한 조치라고 정당화하는 것)이 있었던 것이지, 학살 (군부의 무력으로 인권과 생존권을 파괴한 행위라고 인정하는것)이 아니라고 선을 그었다. 이 모습에 많은 국제 단체와 전문가들, 그리고 대중이 실망을 금할 수 없었다.
12월 11일@헤이그 ICJ 사법재판소_미얀마 국가고문 (State Counsellor of Myanmar) 아웅산수찌
미얀마는 1989년 군부 독재를 청산하면서 '버마'라는 명칭에서 '미얀마'라는 명칭으로 바꾸었다. 약 5천만 인구의 미얀마는 버마족(68%)·샨족(9%)·카렌족(7%)·라카인족(4%)·몬족(2%)을 포함해 공식적으로 135개 민족으로 이뤄진 다민족국가다. 하지만 이안에 로힝야주민은 제외되어있다. 1982년 군부가 만든 국적법에서 국민 기준을 영국 통치 이전부터 거주한 민족으로 제한했기 때문이다. 19세기 인도 동부 벵갈 지역에서 건너온 이민자의 후손으로 추정되는 이들은 국민에서 제외되고 추방해야 할 '식민 잔재'로 분류됐다고 하는데..
과연 로힝야 주민들은 1982년 이전에 존재하지 않았을까? 로힝야 주민들의 라카인 주에서의 생활과 삶은 언제부터 시작되었을까?
로힝야 주민들의 땅인 라카인 주 (Rakhine)는 영국의 19세기 (1824 - 1948,
1942년에 아웅산 수찌여사가 일본에 합작하여 버마땅에서 영국군을 몰아냈으나, 1945년 일본이 2차대전 패망으로 버마 땅은 일본 지배에서 다시 1948년까지 영국 지배로 돌아오게 된다.) 식민기 이전부터 존재했다. 라카인 주는 18세기 버마 왕국에 지배 당하기 전까지 아라칸 (Arakan) 왕국의 땅이었고, 아라칸은 독립된 주권국가였으며, 15세기부터 18세기 이 지역을 지배했다.
로힝야 주민들의 역사와 시민권 부정에 대한 이야기는 현재 로힝야 주민들이 세대를 이어 장기적으로 겪어온 박해를 이해하는 데 매우 중요하다. 국제사회의 규범과 보편적 인권 가치도 중요하지만 실제로 권리를 박탈당하고 소외당한 이들을 이해하기 위해선 그 선 넘어 존재하는 맥락과 특수한 조건들을 이해가 병행되어야 할 것이다.
다음편에서는 로힝야 주민들의 땅, 라카인과 그들과 뗄 수 없는 무슬림의 역사를 불교 국가인 미얀마라는 주권국가 틀 안에서 어떤 위치에 쳐해있는지 더 자세히 이야기 해보도록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