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맞이 식물 심기, 가구 정돈, 동네 주말 마켓
아,
어떻게 나는 한국에서는 쳇바퀴처럼 살았을까
십 대에 뒤늦게 공부를 시작해서 국립대를 가려고 기를 쓰고 공부만 했다.
대학에 가서는 학업 말고도 대외활동과 봉사활동, 그리고 나름의 사회생활까지 챙겨가며
하루하루를 늘 빡빡하게 보냈다.
취미 같은 것은 사치라고 여겼고, '여유'가 '있는' 사람들만이 즐길 수 있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나에겐 목표가 있었고, 그 목표를 따라가면 무언가 달라질 줄 알았다.
솔직히, 많이 달라졌다. 나의 세계관, 내 주변 세계의 확장 등 '과연 내가 할 수 있을까?' 하는 것들을 많이 해냈다. 정말 대학시절, 연애 한 번 안 (안이라 쓰고 못이라 읽는다)하고 정말 오로지 나 자신을 위해서 열심히 살았다.
때는 말라위에 가서였다.
한국에서처럼 여길 가고, 저길 가는 것이 그리 자유롭지 않은 시골 마을 생활에서 늘 반복되는 일상 속에서 역설적으로 나의 주변과 자연과 이웃들에게 자연스럽게 관심이 갔다. 하루하루, 어느 시간에 누구를 만나느냐에 따라서, 다르게 흘러갔다. 집 앞 원숭이 가족들의 출몰, 새벽 일찍 한 시간을 걸어 시장을 바삐 내려가는 주민들의 발걸음과 대화 소리, 계절이 지나며 향기를 바꾸는 나무와 식물들, 사소한 것들이지만 나의 하루와 영혼을 채워준 것들이다.
한국에서는 대외활동을 하고 오면 지쳐서 돌아왔다. 봉사활동을 하면서 아이들을 만나는 것은 너무 즐거웠지만 특정 시간 안에 짜인 만큼 활동하고 돌아오기에 아쉬운 마음이 늘 있었다. 공부도 마찬가지. 재밌는 공부를 즐겁게 하면서도 결국은 시험과 짜인 형식 안에서 해야 하기에 내 마음껏 자유롭게 무언가를 여유 있게 느껴본 적이 있었던가.
말라위에서의 삶 덕분에 나는 '집'의 중요성을 알게 되었다. 일상과 반복적으로 생활하고 나의 하루를 채워주는 곳, 바로 우리 집이다. 크고 작은 것은 중요하지 않다. 어디든 내가 안식을 취할 수 있다면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소중한 공간이다.
그리고 이후에 런던에서의 석사 생활을 하면서 나는 1년 3개월 동안 4번이나 집을 옮겨 다녔다. 그래도 말라위에서의 경험을 살려서 어디를 가든 나의 느낌과 색깔이 드러나는 방이 되게 신경을 썼다.
와우,
그런데 베를린에서의 삶의 수준은 정말 상상 이상이다.
봄을 맞이해서 사람들은 식물을 집에서 기르고, 동네 공원에 나와서 요가를 하고, 카라반을 타고 다니며 강가 주변에 주차를 하고는 여유 있는 봄 날씨를 즐긴다. 특정 부류의 사람들이 하는 게 아니라는 게 더 놀랍다. 누구든, 어디서든 원하는 것을 할 수 있는 곳, 도시에 있으면서도 자연과 가장 가깝게 생활할 수 있는 곳이 베를린이라고 자부한다. 이제 다음 주부터는 국립 박물관도 다시 규제하에 개관을 한다. 나는 1년짜리 회원권이 있는데 단돈 3만 5천 원을 주고 만들 수 있었다.
어제는 남자 친구가 중고 웹사이트에서 아보카도 나무를 나눔 하는 글을 보았다며, 우리 집 근처에 산다며, 받으러 가자고 했다. 언제 클는지, 몇 년이 걸리겠지만 선뜻 가져오자고 했다.
지난주에는 남자 친구의 첼로 학생이 토마토 화분을 나눠주었다.
오늘은 하루 종일 집을 정리를 하고서 아이케아 (이케아) 옷걸이를 좀 더 클래식한 옷장으로 바꾸고, 다 재조립을 했다. 그리곤 동네 주말 마켓에 가서 남자 친구의 음악가 동료이자 친구가 일을 하고 있는 주얼리 샵에도 들리고, 이탈리아 노끼와 베네치아식 와플로 점심을 때웠다. 이스라엘에서 온 남남 커플의 페인팅, 터키와 시리아 친구가 직접 디자인한 귀걸이 샵, 세네갈에서 온 왁스, 파키스탄에서 이민 온 아저씨가 파는 온갖 향신료 등 다문화적인 감각과 경험을 즐기고 맛볼 수 있는 이 곳, 올 때마다 너무 좋고, 이제 장사하는 사람들의 얼굴도 점점 익어간다.
요새는 매일 아침 요가와 아침 또는 저녁에 강가를 끼고서 조깅을 하고 있다.
운동을 하고, 우리의 몸에 집중하는 것 역시, 우리가 이미 갖고 있는 것, 우리가 타고나서 주어진 것에 대한 감사함을 느끼는 것은 우리의 일상과 하루하루에 감사함을 느끼는 것과 같은 맥락이다.
유튜브에서 찾은 'Boho Beautiful'의 줄리아 강사 영상을 보며 늘 따라 하는데, 그녀는 항상 차분하고 짜인 명상적 메시지도 함께 전해줘서 특히 나의 내면세계를 들여다보는 데 큰 도움이 된다.
새로운 장소와 새로운 일상은 때로 우리에게 두려움과 조바심을 일으키곤 한다. 우리의 감정을 받아들이되 부정적인 감정에 오래 빠져있는 것은 우리의 존재와 가능성을 오히려 빼앗아버릴 수 있음을 알아차려야 한다.
오늘도 크고 작은 노동과 사고와 소통을 한 나에게 칭찬을 해주고 싶다. 조그만 발걸음과 사소한 일상에 대함 감동이 나의 베를린에서의 새로운 시작과 도전을 희망차고 아름답게 가꿔주는 영양분이 되리라 믿으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