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lackoutTuesday

조지 플로이드를 기리며, 변화할 사회를 위해 행동하며

by 한지애

한동안 시끌시끌

소셜미디어와 일상의 주제가 온통 그의 죽음에 관한 것으로 가득 찼다.


나의 석사 생활 가장 가깝게 지낸 리즈는 프랑스 흑인 남자친구와 런던에서 함께 살고 있다.

뉴욕에서 런던에 와서 석사를 두개째 하며 아티스트로서, 연구자로서의 꿈을 현실로 만들어가고 있는 아름답고 멋진 친구이다.


워낙 인종차별과 부정의에 관심이 많고 공부를 많이 한 친구인데, 이번 사건에 큰 충격을 받았던것 같다.

내가 가깝게 아는 지인들 중에 '백인'으로서 이 일에 가장 적극적으로 옹호 활동을 펼치고 자료들을 소셜미디어에 공유하고 있는 친구이다.


개인적으로 연락은 따로 하지 않았는데, 이것만 굳이 떼어서 물어보는 것도 이상할까봐.


한국 지인들 중에서는 조지 플로이드의 죽음을 기리는 경우는 거의 보지 못했다. 즐겨보는 브이로그 유튜버 여성분? 그분도 해외 생활을 오래 했던지라 그런 awareness가 있었던 것 같다.


지금 내가 있는 베를린도 마찬가지다. 거리 건물의 그래피티 낙서 아트(?)로도 유명한 이 곳은, 사건 당일 다음날 거리에 빨간 색 스프레이드로 경찰에 대한 불신, 사건의 부정의, 끝이 나지 않는 인종차별에 관한 글귀들이 우리 동네 곳곳을 가득 메웠다.


남자친구와 간 한국 치킨집 (주인은 일본인)에 가서도 두 명의 미국인 손님들이 그와 관련된 이야기를 계속 했다. 미국 정치는 '색깔'에 대한 정치와 담론이 없이는 정치에 정도 이야기 할 수 없는 것 같다. 그리고 그것을 백의민족이라는 명성(?)하에 오늘날도 거리감을 느끼는 우리나라의 경우에는 이런 것이 낯설수 밖에 없다. 그렇지만 배워야 하고, 배워서 우리의 다가오는 미래에 더 다양성이 가득한 사회에서 책임있는 어른이 되어야 할 것이다.


이런 시기에도 동양인으로서의 인종차별을 삼키며 살아야하는 것이 내 상황을 알아주지 않아서가 아니라 사태를 사태로 보지 못하고 계속 '나 멍청이에 무지하다.'라고 사회의 흐름을 거슬러가는 그들에게 분노가 된다. 인종을 가지고 사람을 지적하고, 다르게 보는 것 자체가 '난 중국인이 아니다.'라고 답을 하는 것이 충분하지 않음을 느낀다. 상황에 따라서 다르지만, 도대체 길거리를 그냥 지나가다가 노래를 흥얼 거리고, 코로나라고 부르고, 고백투 유어 컨트리 라고 하는 것들은 언제나 그 끝엔 그런 무식한 인간들을 비난을 하고 넘기게 되지만 감정적으로 쌓이고 타인에게 마음이 닫혀버리는 장기적 후유증을 남기는 것이 아쉽다.


그렇지만 그러한 소수의 심지어 내가 모르는 이들의 인종차별적 폭력/ 조롱에 나의 존재 가치와 내가 가치있게 느끼는 것들에 대한 수호를 놓쳐서는 안 될 것이다. 그저 이 시기에 이 순간들에 이것을 겪는 것에 너무나 구조적으로 고착화되고 씻겨지지 않은 얼룩진 인류애에 비통함이 커질 뿐이다.


숨을 못쉬겠다고 깔려있던 그는 결국 그의 나라와 전 세계를 흔들고 일어서도록 했다. 역사적으로 이런 희생들은 역사적으로 남는 큰 변혁을 일으키곤 했다. 아이러니하지만 말이다. 그리고 미국 경찰들의 폭력적인 모습들은 과연 정말 미국이 자유와 민주주의의 나라인지를 정말 의심케한다. 중국은 공산주의때문에 그렇다라고 한다면 도대체 미국은 공산주의도 아닌데, 아닌가? 이념의문제가 아니라 권력의 오용과 잘못된 국정의 문제이다.


아무튼 블랙아웃튜즈데이는 벌써 이틀이나 지나갔지만, 시민들이 만들어낸 어둠을 물리치고 진정한 연대의식으로 새로운 역사를 만들어내고자하는 움직임은 끝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남의 역사라고, 남의 사회라고 넘어갈 것이 아니다.


우리의 무의식 중에 있는 인종차별 의식을 지워야한다.

나도 말라위를 살면서 생긴 트라우마가 있다. 그런데 여기서마저도 흑인 이민자들에게 칭총칭총, 고백투 차이나를 들으면 가슴이 아프고 상처를 받고 만다. 그치만 똑같이 인종차별로 그들에게 반박을 하고 싶지는 않다. 차마 그렇게 하고 싶지는 않다. 어디서부터 바꿀 수 있을까? 나의 숙제이기도 하다.


결국, 하하 호호 웃고 너무 진지하지 않게 한번 숨 내뱉고 들이쉬고 가볍게 받아주는 연습도 좀 필요한것 같다.


이렇게 개인 대 개인간 인종 관련 긴장감이나 갈등은 그 정도와 상황과 어떤 말과 행동이 오갔는지에 따라 차이가 좀 있다. 내가 겪은 것들은 사실 '그리 크지 않은 쪽' 이라고 봐야할 것이다. 그마저도 다 없어지면 좋겠지만.


이번 조지 플로이드의 죽음이 더 큰 문제인 것은 그것이 경찰을 통해서 이루어진게 더 큰 분노를 일으킨 것이고, 이것이 일시적인 사고가 아닌 매일 몇십명 몇 백명의 흑인들의 일상에서 번번히 일어났던 것이라는게 더 큰 몫일 것이다.


트럼프는 더 현명한 답을 해야한다. 비록 그에게 그런 희망을 거는게 거의 무의미해보이지만 말이다.

고작 성경의 구절을 읽으며 경찰의 후기 사건 진압을 오히려 장려하는 그런 뉘앙스로는 절대로 미국의 시위와 데모를 잠재우기는 어려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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