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꾸 걸게 되네, 전화

나누고자하는 본능

by 한지애

오늘날이 오늘날 같은 세상이 아니었으면 어땠을까 싶다.


엄마가 생각나고, 보고싶을 때는 베를린에서 한국까지 실시간으로 메세지도 주고받고, 영상통화도 할 수 있으니 말이다. 심지어 인터넷만 된다면 공짜!


요즘 나의 베를린에서의 일상은 어느 순간 엄마에게 매일같이 전화를 하는 나와 마주하게 만들었다.

내가 그렇게 만든것인지, 상황이 그렇게 만든것인지는 잘 모르겠다.


아프리카 오지 (엄마에 의하면)에 살면서도 일주일에 한 번 통화 할까 말까했던 나였다. 워낙 할 일들도 많고, 사실 그때는 인터넷도 좋지 않았고, 무엇보다 스스로 해결해야하는 일들이 많았던 것이 크다. 현지에서의 생활고나 마을에서 사업하는 것의 어려움을 엄마에게 시시콜콜 이야기한다고 그 일이 해결되는 것이 아니니 한번씩 통화를 하면 넉두리 식으로 한 두시간씩 털어 놓곤 했었다.


그런데 요즘은 거의 매일 같이 전화를 건다.

나의 파트너는 포르투갈사람. 우리는 영어로 대화를 한다. 가끔 열받거나 본능이 앞설 땐 간단한 한국말을 하면 이제 알아듣는다. 예를 들면, '죽을래' '하지마' '야!' 정도. ㅎㅎ

난 포르투갈어로 '안녕'. '포옹 또는 사랑을 보내 (보통 사람들이 전화 끊을 때 작별인사)', '예쁘다','제기랄' 등을 안다.


그렇다. 한국말로 술술 이야기가 해야 내 상황과 감정을 더 잘 표현할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또한, 그런 표현은 '아무에게나' 하고 싶지 않았다. 그러다보니 난 늘 엄마를 찾는다.


어렸을 적부터 내가 의지하고, 의지당하는 (?) 우리 엄마다. 내가 성인이 되고 나니, 우리는 그냥 같이 삶을 살아가는 제일 친한 친구같은 사이로 되어 가고 있었다. 그치만 완전한 친구라기엔 무언가 인생의 지혜와 경험이 겸비되어 있어서, 내가 흥분해서 이야기를 할 때, 그것을 관조하고 차분하게 멀리 내다 보는 시각을 가졌다는 것이 나의 수다 상대인 우리 엄마의 특징이다.


딱히 코로나 때문은 아니다. 나의 베를린 일상과 올해의 삶은 정말 말 그대로 멈추지 않는 도전과 배움의 과정이었다. 바꿔 말하면, 아직 어떤 성과나 구체적 활동 같은 것을 '게시'하지 못하고 있었다. 내 나름 개인적으로는 이미 시작을 했다고 할 수 있으나, 뭐랄까. 아직 '인정' 받거나 '보상' 받지 못하고 있었다.


나는 몰랐다. 내가 그동안 늘 인정받고, 성과를 내면서 살아야 한다고 생각을 하고 살았고, 또 그렇게 이루어져왔었다는 것을. 거창한 것을 이야기하는 것은 아니다. 그렇지만 내 나름 원하는 분야에서, 추구하는 가치들을 실천하면서 살 수 있었다. 그런데 베를린에서 요즘 늘 '스탠바이'해야하는 삶에 나도 모르게 조바심과 위축감이 들었던 것이다.


그러자 나는 나의 정서적 보호막을 본능적으로 찾기 시작했고, 어느 날 부터인가 아이폰을 붙잡고는 엄마 카톡에 전화걸기 시작했다. 한편으로는 같이 있지 못하지만, 못 본 다고 해서 내가 없는 것도 아니고 아무것도 하고 있지 않는 것도 아니라는 것을 증명하고 싶었던 것 같다. 내 상황을 엄마가 알면 덜 걱정할 수도 있고, 또 내가 어느 지점에 있는지 최소한 엄마는 알면 나의 고립감이 좀 완화될 거라고 생각했다.


난 엄마가 그걸 눈치채지 못한 줄 알았다.


그런데, 어느 날 엄마가 한창 수다를 떨고 있던 나에게

"요새 많이 힘들지?" 라고 말했다.


순간 가슴이 먹먹해지기도하고, 또 동시에 약한 모습을 보여서는 안된다는 상반된 생각이 번뜩 스쳐지났다.

"아, 그렇긴 한데 괜찮아 나는, 괜찮아지겠지~"

"그래, 너가 예전엔 이렇게 매일같이 전화를 안 했는데, 요즘 매일같이 이 엄마한테 다 털어놓는 거 보니, 우리 딸이 많이 외로운가 싶기도 하는 생각이 드네, 엄마는?"


그래, 나도 외로웠나보다.

사랑하는 사람이랑 옆에 있어도,

내 존재에서 채워지지 않는 무언가와 아직 이 나라 언어를 잘 하지 못하는 나는 외로움을 느꼈었던 것이다.


그래, 고립감 뒤에 숨은 외로움을 마주하고 나니 오히려 마음이 편했다.

엄마는 이 말을 한참이나 뒤에 했다. 처음 전화를 걸기 시작한 때부터 분명 알았을 텐데. 또 나를 배려해서.


엄마에게도 이야기했지만, 나의 외로움은 그렇다고해서, 무턱대고 아무나 붙잡고 얘기해서 풀리는 그런 외로움은 아니었다. 나의 엄마여야 했다. 나의 이야기를 무조건적으로 사랑으로 믿음으로 들어줄 수 있는 그런 사람.

그게 엄마여서 엄마가 그렇게 이야기를 꺼내주어서 난 어쩌면 그 인정에, 마주침에 마음이 놓였는지도 모른다.


'아, 엄마가 알고 있었구나. 역시.'


이십대의 초중반을 아프리카에서, 이제 삼년 가까이 유럽에서 지내며 어느덧 서른이 된 딸이

주머니에 쥔 것 없이 또 새로운 시작을 하는 것을 우리 엄마와 아빠는 한번도 나무라지 않고 늘 응원해주셨다.


오히려 내가 더 강박관념과 인정받아야하고 자랑스러워야한다는 생각에 사로잡혀서 걱정을 '사서' 하는 건지는 모르겠다. 우리의 잠재력은 다른 누구보다 우리가 인정하고 믿어줄 때에 가장 잘 발현된다고 생각한다. 어린 아이들이 무한한 잠재력을 갖은 것도 그것이다. 자기를 '의심'하지 않는 해보고 보는 심리 말이다.


나도 다시 아이로 돌아가야겠다. 서른이라는 눈치, 큰 딸이라는 눈치, 아직 성과가 없어 초라한건 아닌가 하는 눈치를 내려놓고서. 책임감과 성과도 결국은 자기 사랑과 우리네 삶에 대한 사랑에서 우러러 나올 때 의미가 있는 것일 것이다.



"살아가기를 계속 해나가기 위해서, 우리는 완벽주의에 연관된 죽음으로부터 벗어나도록 노력해야 한다."

한나 아렌트

in-order-to-go-on-living-one-must-try-to-escape-the-death-involved-in-perfectionism-quote-1.jpg



keyword
작가의 이전글BlackoutTuesda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