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가올 것에 대한 맞이
베를린에 온지도 벌써 1년이 넘었다.
이것, 저것 이전에 내가 해오던 것들과는 조금 다른일들을 해왔다.
관계가 흐트러지는 위기도 많았다. 그 때문에.
나는 사랑을 가꾸기 위해서, 지키기 위해서가 아니라, 계속 가꾸어 나가기 위해서 이 곳에 왔다.
그런데, 나의 짝이 자신의 분야에서 성장하고 인정받고 있는데 나는 무엇을 하는 것인가 하는 생각이 나를 자꾸 기분 상하게 했다. 그러면서 나는 사랑을 가꾸는게 아니라 사랑을 손에서 쥐고 놓고 싶지 않아서 여기에 있는 것인가 하는 생각이 들곤 했다.
다행히 우리의 사랑은 나의 짝은 그런 나의 모습을 인정해주고 감싸주고 함께 이겨낼 수 있다고 말을 해주었다. 왜냐면 그는 내가 무엇이든 할 수 있는데, 하고 있지 않는다면서 말이다.
그와 나의 차이점은 그러했다.
그는 포르투갈에서 베를린에 와서 길거리 버스킹을 하며 생활을 이어나갔다. 그리고 거리공연은 그의 열정의 일부가 되기도 했다. 사람들을 공부하고, 소통하고 하는게 재밌단다. 난 정말 그걸 즐기면서 할 수 있을까? 생각이 들었는데 말이다.
부끄럽고, 초라해보이고, 외롭지 않을까?
나와 그의 차이다.
내가 할 수 있는 일들에도 그러했다.
난 내가 과거에 해오고 지금까지 만들어 온 것들을 마치 내가 빚고 있던 조각상의 마무리를 지으려는 듯 심혈을 기울이고 있었다. 그래서 조금만 흩틀어져도, 조금만 건조해져도 겁이나서 계속 그 상태가 많이 엇나가지 못하게 하는 것이다.
반면 나의 짝은 이 흙을 썼다가, 저 흙을 썼다가, 이 모양을 했다가 저 모양을 만들어봤다가 하며 자신만의 독특한 조각상을 만들어가는 것이다. (그가 첼로를 기반으로 하기에 나와 조각상의 미학적으로 큰 차이가 있긴하나!)
이번에 결과적으로 두군데 지원한 박사과정이 다 낙방했다.
석사에 이어 박사를 하면 좀 더 안정적으로 돈벌이든 무엇이든 베를린에서의 삶이 발란스가 맞을 것이라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이제 그 큰 덩어리가 없이도 나는 무언가를 채워넣는 삶을 만들어야하는데 겁이 났다.
그동안 나의 무의식중에 내가 내려놓고 싶지 않았던 것, 바로 '자존감'이다. 그런데 똥불같은 자존감이다. 내가 무엇을 하고, 어떤 종류의 일을 하느냐에 따라 내 자존감을 잰다는 생각자체가 말이다. 나에겐 감사하고 행운같은 일들이 여태 많았다. 그렇기에 지금의 내가 있는 것이다.
앞으로도 다가올 일들은 잘 빚어놓은 조각상이 아니라 거칠고, 건조하고, 미울지언정 나만의 내가 만족할 수 있는 그런 조각상을 만들어 줄 수 있을 것이다. 나는 그런 조각상을 빚고 싶다.
우물쭈물 하기에는 시간이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