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금 지나버린 20일째 (ㅠㅠ)
보고
첼로 40분
요가 40분
독서 20분
독일어 못했다. ...
지금 글을 쓰고나면 가장 먼저 해야 하는 것이 독일어이다!
유튜브에서 '일기와 에세이 차이가 무엇이냐' 라는 주제를 다루는 영상을 보았는데 그걸 보면서 너무 일기같은 글보다 조금 에세이같은 글을 쓰고 싶었다. 그치만 지금은 바로 그 순간이다. 나와의 약속을 가장 먼저 중요시해야하는 때. 이 백일만이라도 말이다.
오늘이 지난 20일 중에 두번째로 그 날 일기를 다음날 쓰는 것 같은데, 두 번 다 저녁 약속이 있는 날이다. 그러니 어떻게 핑계를 대자면... 저녁 시간이 없기에 보통 저녁 시간에 하거나 낮 시간에 못하면 아직 못 한 챌린지드을 못하고 넘어간 것이다.
어제 저녁은 그래도 매우 특별했다. 코로나 때문에 사실 여러 명이 모이는 것이 아직도 어렵기는 하지만 매일 매일 좋아졌다 안좋아졌다 하는 상황 속에서 정말 장기간 사회 모임을 아예 끊어버리기란 쉽지 않다. 그리고 군타는 혼자 살고 는 69세 할아버지다. 정정...하다고 할만큼 약주도 좋아하고 몸에 좋은 것은 잘 챙겨드시지만 심장이 안 좋고 당요가 있어서 수술 후에 걷는 게 불편하시다. 아무튼 어젯밤 저녁에는 결국 두 명이 캔슬을 했지만 어쨌든 이런 상황 속에서 세-네명의 저녁이 크게 우리 중 누구도 헤치지 않았으리라 믿는다.
군터네 집은 내가 작년 제일 처음 베를린에 왔을 때 3개월 간 지낸 곳이다. 그리고 이제 일주일 후면 이 집에 2주 동안 다시 들어가게 된다. 사정은 애인의 아버지가 포르투갈에서 2주 동안 콘서트 일정으로 오는데 ... 정말 60대 위기가 다들 오는 것인가. 아들의 집이 아니면 30년째 오고 가는 이 도시지만 혼자 지내거나 남의 집에 지내기가 싫다며 그냥 안 오겠다고 투정(?) 을 한 것이다. 나는 내가 나가기로 결정했다. 그렇다고 스튜디오식 한 방에 부자와 방을 나눠 쓰기란 ( 이미 한 번 해 보았지만, 그래도 그땐 몇 일 정도였다) 영 불편했다.
군터는 이런 이야기도 쉽게하고, 언제든 우리를 받아주고 지난 젊은 시절 겪은 다양한 이야기를 저녁에 해주는 것을 좋아한다. 내가 독일어를 이제 조금 더 알아듣고 말을 배우기 시작하니, 거침 없이 이제 '봐주기' 없이 독일어로만 다 얘기를 해서 난감할 때가 있다. 어제는 박사를 하고 있는 나보다 독일어를 훨씬 잘하는 언니와 나의 애은 나중에 조인을 했는데, 내 애인이 오기 까지는 우린 순전 독일어로만 이야기하고 있었다. 그래도 좀 더 디테일한 것은 내가 언니한테 한국어로 물어봐서 대화를 좇아갈 수 있었다.
우리의 저녁은 보통은 군터가 이것저것 차려놓고 나는 가면 샐러드를 만들거나 상 차리고 소스 만들고 (군터의 레시피에 따라) 하곤 했는데, 어제는 군터가 그 전날 병원행으로 에너지 소모와 스트레스가 컸다며 뭘 사서 먹자고 했다. 그래서 내가 군터네 집 앞 우반 역 (지하철역) 앞에 한국식 치킨을 파는 곳에서 치킨을 사가겠다고하니 그 치킨이 어디서 오는지 어떻게 아냐며, 치킨만은 자기가 집에서 만들겠다고 했다. 그리 복잡하지 않다며...
그래서 박사 중인 언니는 군터가 먹고 싶어한 스시를 그가 좋아하는 스시집에서 사왔고, 나는 연어아보카도 샐러드를 만들고, 그리고 군터는 치킨을 준비했다. 우리 애인은 맨입 맨몸 너무 운이 좋은 사나이다 (ㅎㅎㅎㅎ). 아니 뭐 그와 나는 하나로 치자... ㅎㅎㅎ
애인이 오고는 우리 애인은 베를린 거주만 5년이 다되어가지만 음악가라는 이점이 독일어를 배우는 데는 독으로 작용해서 나와 독일어 수준이 비슷하거나 듣기는 더 안 된다. (아니 상황에 따라 그가 더 알아듣고, 어떨때는 내가 더 알아듣고 그렇게 우리는 서로를 보완해준다. ㅎㅎㅎㅎ) 솔직한 그 덕분에 그가 오고나서는 군터가 영어로 더 이야기를 해주어서 솔직히 수월..... 했다.
군타의 건강 문제로 다시 병원과 여러 검사와 앞으로 수술이 또 필요할지 안 할지 이야기를 하기에 내가 같이 지내게 될 즈음에는 어떤 상황이 될지 모르지만 부디 건강했으면 좋겠다. 그 기간 즘에는 그의 둘째 아들, 처음에 나와 군터가 함께 지낼 수 있도록 매게를 해준 장본인이다. 그리고 어제 저녁을 오기로 했다가 캔슬을 한 2인 중에 한 사람이기도 하다. 글의 첫부분에 코로나 넉두리를 하게 만든 장본인이기도 하다. 왜냐면 일-이주 뒤면 그는 한국에서 개인전 초청을 받았기 때문이다. 그는 베를리너 답게 동-서 베를린/ 독일 분단과 남/북 조선 분단과 관련한 테마로 베를린과 한국에서 여러번 퍼포먼스와 전시를 해왔는데, 드디어 그의 노력이 세상에 빛을 발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 타이밍이 코로나라서 이미 몇 개월 밀렸고, 또 군터의 건강이 그리 좋지 않을 때 떠나서 우리가 함께 지내는 2 주 동안 아무일이 안 일어나면 좋겠지만 긴급 상황에는 어디다 연락을 하면 좋을지 미리 물어보고 조취를 해두어야 할 것 같다. 보통은 그가 해왔기에 ...
오늘은 선약이 두개가 더 있다. 그렇기에 매일 백일 동안 할 챌린지들을 먼저 차근차근 해두어야지. 어제 와인을 그리 많이 마신 것도 아닌데 집에 오는 길 내내 배가 불편하고 속이 정말 안좋아서 오만 상상을 다 했다. 마지막으로 ㅌ ㅗ 를 한 적이 언제더라... 생각하면서...
다행히 최악의 상황은 일어나지 않았다. (감사합니다!)
술만 아니었다면 오늘 새벽부터 눈을 떴기에 책을 읽을까, 글을 쓸까 하다가 몸이 못일어났다.
술을 정말 많이 마신 것도 아닌데 이게 공격할 때는 훆! 들어오니 뭐 조절할 수도 없다는 게 나의 변명이다. 아무튼 나를 잘 간호해서 물도 사매기고 격려해준 애인에게 고마움을 전하며 오늘의 한 발 늦은 일기를 마무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