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일째
100일 챌린지 보고
요가 15분
첼로 30분
독일어 3시간 무려!!!!!!!
책읽기는 오늘의 일기를 마친 뒤에 꼭!
독일어 공부 세시간 끝내고나니 밤 열시 사십분이다. 흑흑
이번주 주말은 어제부터 선약들이 많이 잡혀있다.
오늘은 낮에 미테의 Spree 강둑에 위치한 호섹 컨템퍼러리 라는 보트 위 갤러리에서 레지던시를 하고 있는 스페인 친구가 바베큐에 초대를 해서 갔다. 이 곳은 애인이 매주 수요일마다 즉흥 음악 시리즈를 주최하고 있기에 아마도 집 이외에 베를린에서 가장 자주 오는 곳 중에 하나일 것이다. 우리를 초대한 이 친구를 내가 처음 만나것은 지난 해 여름 내가 여기서 공부중인 북한에서 탈북해 한국에서 대학을 나오고 독일에서 살고 있던 친구와 남북 음식은 음악 축제에서 파는 기간에 만났다. 사실 나는 그 뒤에 다시 그녀를 만난 것이 거의 반 년이 지난 후였기에 기억도 못 했는데 그녀는 나를 기억하고 있었다. 물론 우리가 다시 만난 곳도 이 보트에서였다.
매주 수요일마다 공연이 있으면 선장실이 위치한 보트의 왼쪽 끝에서 반대쪽 끝으로 가면 공연 공간이 있었기에 'why not?' 그녀는 자주 공연을 보러 왔었고, 거기서 우리는 다시 마주했다.
그리고 몇 번 마주치면 항상 꼭 밥 한 번 같이 먹자고 했고, 사실은 내가 먼저 초대를 했었는데 이렇게 바베큐 파티에 초대를 해주어 너무나 고마웠다. 보트에 사는게 흥미롭기도 하지만 수도 시설이 안 되어 있기에 물을 일일이 받아써야하고 밤에는 밖에 야외 으슥한 곳이나 바 같은데를 가서 화장실을 이용해야 한다고 하는 것에서 조금 안쓰러웠다. 그래서 집에서 밥을 대접해주고 싶었는데... 이렇게 여름의 막바지 날에 그녀가 친구들을 초대해 바베큐를 열었는데, 우린 그렇게 가깝거나 작업을 한 것도 없는데 기억해주고 불러줘서 정말 고마웠다.
그녀와 함께 그녀의 선장실(?)을 구경하였는데 꾀 공간도 넓고 나름 요리를 할 수 있는 공간과 잠을 자는 침실이 미닫이식 문으로 분리가 되어 있었다. 주방의 물도 한버 받아 두었다가 물이 떨어지면 어디서 채워야 하는 형태이긴 했지만 싱크대 바로 앞에 설치되어 있고 벨브만 열면 물이 나와서 오늘 간단한 상그리아 만들고 야채를 썰고 하기에는 충분했다. 그래도 여기서 매일같이 지내려면 조금은 번거롭지도 않을까하는 생각을 지울 수 없었다. 그녀의 친구들은 대부분 새로운 얼굴들이었지만 다들 너무 좋은 사람들이었다. 코로나 때문에 한번도 못 보다가 또 반년 넘게 만에 만난 반가운 얼굴도 있었다. 친구들과 대화를 하다가 나는 나를 초대해준 친구와 주방에서 상그리아를 준비했다. 두 병의 레드와인, 파인애플 판타 1병, 멜론, 사과, 오렌지 등의 과일 몇가지, 진 머그 한컵이 나름 레시피라고 이름을 붙혀도 될까? 그 친구가 마지막으로 상그리아를 만든게 그녀가 18살 때였고, 지금 사십대가 넘었으니... 맛을 장담할 수 없지만 나는 과일을 썰고 대야에 넣는 일을 도맡았다.
우리는 자연스럽게 베를린에서의 생활이 어땠는지 이야기를 주고 받았다.
그러다가 어떻게 그녀가 나를 기억하는지에 대해서 이야기를 했는데, 나도 기억 못 하는 것을 그녀는 그녀만의 특별한 배경에서 정확히 기억하고 있었다.
"그때 너와 그 친구가 만든 음식이 너무 맛있었고, 정말 축제 기간동안 우리를 먹여살려줘서 정말 고마웠어."
"아이 무슨, 축제에 온 사람들이 사먹어 주니 제가 만들 수 있었지요!"
친구는 우리가 만든 한식 음식이 맛있었다며 칭찬을 다시 해 주었다. 그러면서 그녀는 이어 말했다.
"그래서 난 이렇게 멋진 친구는 무엇을 할까 하고 너에게 뭐하냐고 물었는데 너가 '아무것도 해'라고 이야기 했잖아! 기억나?"
"아 정말요? 아마 그랬을 것 같긴한데, 그걸 어떻게 기억하고 있어요 근데?"
"아, 왜냐면 너무 훌륭한 친구같은데 아무것도 안한다고 하는 것이 뭔가 내 마음을 건드렸어. 사실은 나도 내가 무엇을 한다고 자신있게 말 할 수 있을 때까지 시간이 좀 걸렸거든."
그녀는 나의 대답에서 자신의 과거 모습이 떠올랐다고 한다. 그러면서 내가 지금 느끼는 감정들이 내가 마음대로 좌지우지 할 수 없는 상황적인거고 또 일시적인 거라고 하며 그때 내가 '난 아무것도 안하고 있어요.'라고 대답한 것 맘에 걸렸다고 이야기했다. 서로 말을 많이 해 본 것도 아니지만 그렇게 우리는 상대가 하는 말과 상황을 느낌으로 직감으로 그리고 우리의 경험에 빗대어 이해하고 공감할 수 있음을 다시 한번 느꼈다.
시 낭송과 퍼포먼스를 하는 인마는 베를린에서 이제 아티스트로 정착을 하기 위해 준비중인데, 지금 과정에서는 타인의 집에서 청소를 하는 것으로 생계를 벌고 있다. 내가 아는 지인들 중에서 특히 프리랜서들이나 직업이 프로젝트 기반으로 되어 있는 사람들은 청소나 아니면 카페나 바에서 일을 겸하는 이들을 많이 보았다. 꼭 외국인이 아니더라도 독일인들도 말이다. 나는 어떤 것을 해서 돈을 벌든 그게 내가 한 노동의 댓가라면 어떤 시선으로 그걸 바라보지 않는다. 다만, 난 지금 어학비자로 있기에 누가 일을 준다고해도 '합법적으로' 여기서 임금을 받을 수 없는 상황이다.
또 사실 경제으로 무언가를 벌 수 없어서 내가 하는 것이 없다고 하는 것만은 아니다. 거기에는 내가 깊게 빠져고 자랑스럽게 나의 전문이다라고 할 수 있는 것이 딱히 없는 이유도 크다. 오늘 인마의 친구 중에 마리아를 오늘 만나게 되었다. 그녀는 현재 요가 선생도 하면서 본인이 하고 싶었던 퍼포먼스와 관련 스킬들을 가르치는 일을 하고 있지만 처음 베를린에 와서 그녀도 본래 통역을 하던 것에서 오는 스트레스와 압박을 줄이면서 수입을 마련하기 위해 청소 일을 많이 했다고 한다. 지금은 2주에 한 번씩 가는 집 한 곳만 다니고, 요가 레슨과 다른 티칭 잡으로 생계가 어느 정도 꾸려진다며, 꿈만 같은 삶을 향해 달려가는 게 너무 기쁘고 했다. 그녀 역시 몇 년 전 본 테드 강연을 나에게 이야기해주며 어떤 사람들은 한 길을 깊게 가는 것 보다 여러 분야에 동시에 자극을 받게 되며, 중요한 것은 내가 관심있는 것들이 서로 시너지를 줄 수 있도록 스토리 텔링을 만들어가는 것이 중요하다고 이야기했다.
그렇다. 내가 하는 연구와 글쓰기, 그리고 기록물들이 하나의 이야기가 되도록 만들어야한다.
그리고 나는 내 생계에 더 책임을 지기 위해서 사업을 조그맣게 하려고 하는데, 경험이 너무 없어서 하나 하나가 시간이 많이 걸려 결국 과부하가 걸려 완벽성을 놓쳐버리고 흐지부지로 마무리 하곤 했다. 시작을 하고도 반응이 없어 한 두달 만에 그만둔 것들도 있다. 결국엔 내가 뭔가를 제대로 하고 있지 않다는 생각에 이것 저것 계속 어설프게 시작했다가 제 풀에 지쳐서 그만두고 나중에 다시 생각나서 또 끄적였다가 물거품이 되고를 반복했었다.
여러가지가 정말 복합적인 것이 나의 상황일 것이다. 지금 나는 이제 스토리텔링하며 내가 여러 면에 걸쳐서 해 온 것들을 조금은 점토질을 해야할 때가 왔다. 이제 막 펼쳐놓은 물건들과 아이디어들을 잘 정리하고 조직할 때가 왔고, 경험이 없어서 제대로 못 한 것들도 한번에 무리하지 말고 조금씩 오래 장기전으로 몸에 익숙해지도록 만들어야 하는 때가 왔다.
베를린이기에 이 모든 것이 일어나고 있다. 이 도전들도 어려움들도. 그리고 또 그 반대편 가능성들도 말이다.
결국은 긍정적인 자, 그리고 자신의 삶에 결단력이 있고 그 뚝심으로 끝까지 밀고가는 자가 승리할 것이다.
조바심 내지 말고, 아무 것도 하고 있지 않는다고 하지 말고, 아니,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어떠한가!
그치만 인마가 한 말 처럼, 아무것도 하지 않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우리가 살아 있는 한 우리의 경험은 계속 그렇게 현재 진행중이니까.
오늘 저녁 공연 약속은 공연장이 꾀 멀다는 이유로 우리는 못갔다.
그 덕분에 독일어 밀린 공부를 다 할 수 있었고, 쓰다가 그만둔 이 일기도 자정이 넘기기 전에 쓸 수 있게 되었다. 너무 기쁘다.
매일 독일어를 하는 나를 보고 애인도 독일어를 다시 시작하겠다고 고백했다 오늘. 다만, 그의 세금 정산을 끝내고... 항상 단서가 붙는 것이 아직 못 믿음직스러지만 한번 지켜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