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일차
100일 챌린지 보고
독서 1시간 30분
요가 40분
독일어 1시간
첼로 20분
저녁 선약이 취소되었다는 것을 오늘 오후 두시경이나 알게 되었다. 내가 중간자였기에 약속을 짐작하고 있던 친구 커플네에 미안했다. 하지만 취소를 한 친구이자 나의 인권활동 동료는 삼일전부터 배탈이 나서 오늘 바베큐 저녁을 한다는 것을, 무언가를 먹는다는 것 조차 까맣게 잊어버렸다고 하니, 뭐 맘껏 원망할 수도 없는 상황이었다. 다행히 (?) 커플 친구 둘도 막 베를린에 다시 같이 살 집을 구해서 짐을 풀던 차였기에 우리는 겸사 겸사 다음에 날짜를 잘 잡기로 하고 오늘 약속은 그렇게 무산되었다. 내가 다행이라고 하는 것은 매일 100일 챌린지를 하다보니 하루 시간이 더욱 더 귀하게 느껴졌다. 해도 그만, 안해도 그만인게 아니라 이제 이것만큼은 내가 꼭 한다고 나 자신과 약속한 것이기에 말이다. 챌린지를 하면서 예전에도 그랬지만 혼자 보내는 시간이 더욱 더 즐거워졌다.
오늘은 한창 한국에서 추석 연휴를 여유있게 보내고 있는 친구에게서 연락이 왔다. 얼마 전 포르투갈 피코 섬에 있을 때 몇몇 지인들에게 엽서를 보냈었는데, 이 친구도 이 엽서를 받고서 너무 좋았다고 인사가 왔다. 우리는 아프리카 말라위에서 우연찮게 2주가 넘는 기간 동안 아는 지인의 백패커스 숙박을 함께 운영하며 동거동락(?)을 하며 알게 되었고, 그게 벌써 4,5년이 흘렀다. 친구와 자연스레 한 시간이 넘도록 통화를 하며, 우리의 삶이 그때와 지금이 얼마나 변했는지 그럼에도 다른 나라에서 매우 다른 일들을 하면서도 삶의 고단함과 여러 선택 앞에서 우리의 조그만함은 얼마나 비슷한지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런 기분 누구나 느껴보았을까? 한창 내 이야기를 하고, 상대의 이야기를 듣고서 그리고 동시에 흐르는 한 3,4초 정도의 침묵. 정말 가까운 가족이나 지인들에게만 할 수 있는 일종의 한풀이랄까? 한참 하고 나니, 상대도 조심스레 자신의 어려운 현실을 이야기하고 그렇게 우리는 완벽하진 않은 위로를 씁쓸하게 받아 넘긴다. 그런 순간에 나는 내 인생은 오로지 나만의 것이구나, 나만 조종할 수 있구나 라는 것을 느낀다.
저녁 시간에는 지난 여름 포르투갈의 피코섬에서 보낸 영상들을 쭉 보았다. 이래뵈어도 난 유튜브 채널을 운영하고 있는데, 이번 여행 때 영상들을 많이 만들려고 찍어둔 것들이 꾀 쌓여있었다. 그런데 하도 편집이 시간이 래 걸리는 초자이다보니 한번 마음먹고 영상 올리는 것에 아직 뚝심이 부족하달까? 구독자들이 많으면 좀 더 열심히 하겠지 하지만 그게 먼저인지 내가 열심히 잘 올려야 구독자가 느는 것은 아닐까 하는 반성을 해보며... 아무튼...
이번 글의 주제인 트리거,,, 유발 기제 ,,, 섬에서의 영상들을 보며 나를 관찰했다. 내 감정 변화를 관찰할 수 있는 영상들이 몇개 있었다. 나는 부당한 것을 참지 못했다. 정의롭지 못한 상황에서 내 표정이 그대로 영상에 다 기록이 되어있었다. 다시 보면서는 무엇 때문에 그랬는지는 정확하게 상황이 드러나지 않았지만, 생각해보건데 무엇 때문인지 짐작해서 알 수는 있었다.
그치만 내가 그 관찰을 하면서 몰랐던 사실을 하나 깨달았다. 바로 내가 아닌 다른 사람들은 내 머릿 속에 있지 않기에 내가 왜 그 표정에 그 기분에 있었는지 전혀 모른다는 것이다. 애인의 엄마는 나에게 농담을 하며 웃으며 내 눈을 보고 있었는데, 나는 무언가에 기분이 상해서는 그녀의 가볍고 유쾌한 다가옴을 전혀 알아차리지 못하고 있었다. 내가 기억이 나는건 전혀 그녀와 관련된 것이 아니었다. 오히려 그 정의감은 그녀를 위한 경우가 많았다. 하지만 그녀가 목소리를 내지 못하는 것에 내가 대신 낼 수 없는 것에 그 상황이 늘 반복되는 것에 나는 부정의감을 느꼈다. 동시에 나의 가족이 아닌 내 미래의 '시'가족.
영상들을 보다가 그 영상 하나를 다시 천천히 돌려서 볼 수록 어머니에게 정말 죄송한 마음이 들었다. 내가 뭐라고 변호사도 아니고 또래도 아닌 것이 자기 기분 안 좋다고 저렇게 입이 정말 대빨(? 맞나요?) 나와서 진상을 부리고 있었던 걸까? 어머니에 대한 죄송한 마음이 다가 아니었다. 난 그 부정의한 상황에서 내가 느꼈던 감정들을 다시 확인하고 눈으로 보고 있는것 만으로도 다시 감정들이 내 안에서 되살아남을 느꼈다. 그리고 가슴이 답답해지기 시작했다. 갑자기 내 현실이 지금 눈 앞의 현실이 갑갑하고 암담하게 느껴졌다. 단지 그 영상을 본 것 만으로.
이제 다시 베를린으로 온 지 한 달이 되었다. 환상적인 섬에서의 화려하고 화창한 날씨와 자연 풍경들은 노스탈지아에 빠지게 하기도 했지만 부정적이고 갑갑한 감정들을 다 씻어내는 데 한 달이 꼬박 걸렸었다. 그런데 한 개 영상 때문에 다시 마음이 무거워졌다. 그 영상이 나의 트리거가 되었다.
이 트리거는 그런 영상을 돌려보든, 그런 상황을 같은 당사자들과 마주하게 되든 또 발생할 것이다. 눈에서 멀어져서 마음에서 멀어지게 하는 것은 이런 운명적인 상황에서는 한계가 있다. 더 근본적인 해결책이 필요하다. 제일 먼저 해야하는 것은 '그래, 내 마음이 그 상황이 재현되니까 불편하다.' '나는 불편함을 느낀다.'는 것을 아는 것이다.
당신에게는 트리거가 있나요? 어떻게 트리거와 마주하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