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
100일 챌린지 보고
요가 1시간
첼로 30분
독서 30분
독일어공부 40분
오늘은 지도교수와 오전에 미팅이 있는 날이다. 물론 온라인으로 진행이 되었다.
나의 예정 미팅 시간은 11시로 잡혀있었다. Webex라는 플랫폼을 이용하는데, 내가 교수의 미팅방을 입력하면 '미팅 시작하기'를 눌리면 교수가 온라인인 이상 자동으로 그 방에 들어가는 식이다.
나와의 미팅 전에 다른 학생과 미팅이 있으면 가끔 민망한 상황이 일어나곤 하는데 오늘도 역시 이전 미팅이 아직 종료되기 전이었다. 저번에도 그런 적이 있었는데, 이번엔 다른 학생이었고 중국학생인것 같았다. 나는 당장 자리를 비켜주었고, 둘은 계속 미팅을 이어나갔다. 화면에서 사라져서 기다리기도하고, 길어지자 나는 카메라를 끄고서 부담스럽지 않게 최대한 존재감을 없도록 배려했다. 그렇게 30분이 흘렀다!
오늘 미팅에서는 조금 더 연구계획서를 보완했으면 좋겠다는 이야기를 하셨는데, 그러면서 되게 미안해하셨다. 계속 수정을 하라고 하여서 ... 그치만 밑바탕이 잘 그려져야 앞으로의 장기 연구 기간이 훨씬 부드럽게 흘러갈것이기에 그런거라며 이번만 하면 정말 명확하게 큰 그림이 보일거라며 격려해주셨다. 또한 제 2 지도교수가 한나아렌트의 연구로 알려져있기에 아렌트를 다시 '합류'한 내 연구 이론이 전체적으로 좀 더 잘 끼어 들어 맞을 수 있게 손을 봐달라는 것이었다. 우리 지도 교수 역시 매우 바쁘고 학문적, 사회적 다양한 요구를 받고 있다보니 시간적으로 나와 깊게 아직 많이 이야기하지는 못했다. 그래도 매번 할 때마다 내가 한 것들을 한층 튼튼하게 이론적으로 보완을 해주셔서 도움이 많이 되었다. 12월 온라인 콜로키움에 초대를 해주셨는데 그때 최종 연구 계획서를 발표하라 하셨다. 기대가 된다. 사람들은 내 연구를 어떻게 바라볼지,,,
연구계획서 자체에 좀 더 신경을 쓰라하시는 것이 이해가 가고 수긍을 하면서도 개인적으론 비자나 여러가지 거주 문제로 인해 대학에서 입학장을 하루라도 빨리 받는 것에 조바심이 없지 않다. 이전에는 더 불안하고 초조했는데 지금은 마음을 좀 비웠다. 독일에서는 개인 박사 지원은 지도교수를 찾으면 제1,제2 지도교수 및 위원회 명단과 그들의 확인 서명을 받아서 입학 신청을 학교에다가 직접 해야한다. 그러고나면 무조건 합격인지 조건부합격인지를 또 가려낼 것이고, 그러고나면 온라인으로 학생이 직접 학교 등록 절차를 또 밟아야한다. 띠로링
그러고나면 난 공식 학교 입학 / 등록 서류들을 또 이민국에다 제출하여 학생 비자나 거주 비자를 받게 된다. 아이구 !! 워낙 시간이 오래 걸리기도 하고 답변도 느리다는 것을 알기에 초조했는데, 지금은 그냥 그때까지 안되면 '한국에 갔다가 오던지 하지' 라는 마음으로 담담히 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오늘은 저녁에 애인의 공연이 있는 날이다. 공연장 이름은 Wabe 독일어 발음으로는 '봐베' - 하지만 지난 주부터 주 1회씩 BVG (베를린 공공 교통)의 노조에서 파업을 하고 있는데 하필 오늘이 그날이다. 공연 장소가 조금 멀어서 지하철을 이용했을텐데, 하는수없이 자전거를 타고 가기로 했다. 40분을 시내를 달렸다. 정말 요즘 날씨가 부쩍 쌀쌀하고 변덕스러워졌다.
일찍 도착하여 그는 동료들과 사운드체크를 하고 나는 근처 카페에서 책을 읽었다. 보통 토요일이면 카페들도 한 시간씩 일찍 닫는데, 오늘이 바로 그 날. 문 닫는 카페를 서둘러 나와서는 공연장으로 터벅터벅 걸어갔다. 그가 아직 준비가 끝나지 않았기에 처음 가 본 동네에서 어디를 가야할지 몰랐다.
저녁을 먹으러 가기로 했기에 큰 도로가로 쭉 걸어 나왔다. 어디 레스토랑을 먼저 들어가기가 그랬다. 다른 동료 둘은 뭘 좋아하는지도 모르고, 뭐가 맛있는지도 모르고...
밖에서 사거리에서 기다렸다. 그가 먼저 왔고, 우리는 근처 케밥집에 들어갔다. 곧 있다가 그의 동료들도 왔고 우리는 이런 저런 이야기들을 나누며 공연 전 조금 이른 저녁을 먹었다.
공연은 8시. 우리는 7시 10분 즈음 공연장으로 다시 몸을 돌렸다. 베를린은 코로나 규제가 다시 심해졌는데, 현재로는 공연장에 최대 50명 수용이 가능하다. 실험, 즉흥 컨템퍼러리 음악으로 알려진 이 공연장은 그에 세,네배는 수용가능해보일 정도로 널찍했다. 그리고 한 테이블당 최대 3명이 앉을 수 있게 자리배치가 되어 있었다.
공연은 애인이 있는 그룹과 또 다른 그룹 이렇게 두 그룹이 공연을 했다.
BISTRE라는 이름으로 활동하는 프로젝트 팀: 첼로, 트럼본, 일렉 기타
Bistre가 콘서트의 문을 열었다. 40분 간의 즉흥 음악.
어떻게 시간을 맞추는지, 엔딩의 순간을 어떻게 느끼는지가 늘 신기하다.
정말 다이나믹한 사운드와 분위기를 오고가는 공연이었다. 매번 새로운 음악이지만 누구와 함께하고 어떤 호흡을 갖느냐에 따라서 설명할 수 없는 교류와 교감을 갖는 것이 참 신기하다.
다른 한 팀은 한 개의 피아노 위에 함께 연주하는 독일의 Alex von Schlippenbach 그리고 일본의 Aki Takase. 두 분 모두 즉흥 음악 1세대 뮤지션들인데 나도 처음 두 분이 함께 공연하는 것을 보게 되었다. 나이가 7,80대이신대도 그 에너지가 어디서 나오는지 정말 말문이 막힐 정도였다. 연배가 있으신만큼 단곡 프로그램 진행을 본인들이 직접 재치있게 소개해주셨고, 그때마다 두 분의 무정한 듯한 대화와 티격태격이 관객들로 하여금 흐뭇한 웃음을 자아냈다.
내가 동양인으로서 이런 자리에서 동양 출신의 뮤지션들이 베를린에서 멋지게 활동하는 것을 보면 괜히 내가 그들인마냥 뿌듯함을 느꼈다. 제 1세계, 2세계, 3세계. 그런 것들이 없는 것 같지만 아니 그 반대일 수 있지만 우리 삶 속에서 직접 경험하고 부대껴야 느낄 수 있다.
여행오는 것과 살아가는 것이 그래서 조금은 다르다. 살아가려면 더 강해져야하고 더 많이 싸워야 할 수도 있다. 완전히 거기서 자유로워지려면 여기서 당당히 대등하게 서야한다. 그때 우리의 격이 올라가기도 하고, 개인으로서의 존엄도 함께 얻을 수 있다.
여러가지 복잡한 생각들이 지나갔다. 자유와 예술의 힘. 나이, 국경, 인종, 장르를 넘나드는 그 무엇을 안에서 밖으로 표현하고 함께 해내고 살아간다는 것. 아, 내 시선과 그들의 삶은 또 어떤 괴리가 어떤 벽이 있을까? 나의 판타지와 그들의 현실은 분명 다르겠지. 우리는 타인들의 삶과 혼을 보고 느끼며 영감을 받는다.
나도 나 다운걸 찾아야지. 나다운걸 만들어야지. 그리고 지금 그렇게 하고 있는 중이라고 믿어야지.
2부 공연이 하는 중에는 비가 쏟아지기 시작하더니, 끝날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콘서트가 다 끝난 후 우리는 결국 택시를 타야했다. 2만원이 조금 넘는 돈. 이번 콘서트는 사전에 미리 계약을 한 것이라 부담이 안 되었지만 다른 공연 같았으면 거의 번 돈 만큼 쓴 격이 되었을 수도. 자유와 창작의 세계에는 이렇게 항상 '현실'의 어려움이 그 굴곡을 더욱 더 찬란하게 만들어주지만 우리는 살아있으니까.
내일은 우리 자전거를 찾으러 다시 가야한다. 그래도 첼로케이스를 메고 자전거를 달리는 그에게 퇴근길은 가벼웠으니 오히려 잘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