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살 아빠와 32살 아들 사이의 나

#28.

by 한지애

100일 챌린지 보고


독서 못했다!

요가 40분

첼로 25분

독일어 40분

* 앞으로 2주 동안 첼로 연습은 첼로가 없는 관계로 하기 어려워졌다. 첼로는 2주 더 첼린지를 하기로! 근데 왠지 이 첼린지들은 다 매일 할 수 있는 거기에 백일이 지나도 할 것 같다 ^^




오늘은 나의 2주 단기 이사일이다.


나와 애인이 살고 있는 집은 방 한개 아파트이다. 주방, 복도, 화장실 다 분리 되어 있지만 잠을 잘 수 있는 방은 우리의 거실이자 안방 하나밖에 없다. 때로 지인들이 오면 방 자체가 널직해서 소파를 내어주고 한 방에서 같이 자기도 했다.


지난 해에도 한 번 그이의 아버지가 리스본에서 오셔서 같이 지냈었다. 하지만 이번엔... 셋이서 2주 한 방을 같이 쓰는 것이 불편했다. 베를린을 30년째 포르투갈에서 오고 가며 동료 뮤지션들과 음악을 하는 그의 아버지는 코로나 때문에 올 해 일정을 이미 취소했다가 다시 일정을 잡고 오는 것이었다. 2주 머무는 기간 중에 5번 공연일정을 소화해야한다.


처음 이 얘기를 했을 때가 기억난다. 우리가 다 함께 피코섬에서 여름 휴가를 보낼 때였다.

"10월 즈음 베를린에 갈 것 같아."

"아 정말요? 잘 되었네요!"

"응, 지낼 곳을 찾아야지."

"찾을 수 있을 거에요."


이번에 그는 우리와 지낼 것 같지 않았다. 만약 그가 지낼 곳을 찾지 못하면 내가 나가겠다고 했다.

그가 내 애인의 아버지는 맞지만 그렇다고 영어식 표현해서 father in law 가 절대 나의 아버지와 같을 수는 없다. 왜 그렇게 냉정히 얘기하느냐 하면 할 이야기가 많다.


하지만 2주 동안 그 비좁은 집에서 부대끼며 지낼 만큼 난 그와 편하지 않다.

그렇게 우리는 먼저 베를린에 돌아왔고, 그이는 종종 그의 아버지와 통화를 하며 일정을 맞추고 일상을 나누곤 했다. 그런데 어느 날 애인이 나에게 부탁을 했다.

"미안한데, 혹시 우리 아빠가 있는 기간 동안 군터네 집에서 지낼 수 있겠어?"

"... 내가 그럴 줄 알았지. 내가 저번에 나간다고 하니까 절대 그럴 일 없다더니."

"응, 그랬지... 근데 상황이 그때랑 같지가 않아."

"뭐가 같지가 않은데?"

"우리 아빠 ... 우울증 있는거.. 나랑 같이 못 지내면 베를린에 오기가 싫대."

"... "


우리 앞에선 강한'척'하던 그의 아버지는 결국 2주 베를린에 지내면서 꼭 아들과 지내고 싶단다. .

우리가 방 한칸에 지내는 것을 알면서도.

내가 그이라도 똑같은 생각을 했을까? 아니, 나에겐 늘 베를린에서 지낼 곳이 한 곳 이상이다. 군타네 집은 내가 베를린에 처음 왔을 때 석달을 묵은 곳인고, 이후에도 나와 애인은 여기서 종종 묵고, 또 군타와 정기적으로 저녁 식사를 함께 하곤 했기에 갈 곳이 없는 것의 문제가 아니었다.


그렇게 내가 나가기로 결정했다.


그의 아버지가 오는 날, 오늘이다. 동시에 내가 이사를 가는 날이다.

그이 아버지가 저녁 늦게 베를린에 도착하기에 나와 애인은 군터네 집에서 저녁을 함께 먹기로 했다.

저녁을 먹고서 그는 집으로 떠났다.


오랜만에 혼자만의 공간과 시간을 갖게 된 것이 좋았다. 그리고 군타와 오늘 아침 겸 점심 브런치를 먹으며 자연스레 그이와 그의 아버지 이야기가 나왔다.


우리의 사정을 알고서 나를 거둬준 (?) 군터는 그의 아버지를 이해할 수 없다고 하였다. 두 아들을 둔 군타는 만약 아들이 자신이 사랑하는 여자와 지내고 있고, 나의 공연을 위해 내가 베를린을 가는 것이라면 어디든 묵을 곳을 따로 찾을 것이며, 대신 밥을 같이 먹는다던지 밖에서 만나 지내는 동안 시간을 같이 보내던지 할 것이라 했다. 또한 우울증의 문제가 있더라도 그것은 내 애인이 해결해주고 받아주고 그가 요구하는 것을 받아주는 것으로 풀어서는 안 되는 것이라고 말이다.


내가 2주간 자유로운 것은 오로지 내가 혼자여서 자유로운 것도 있지만 한편으론 그런 생각과 걱정으로부터의 자유이며, 내가 껴서 나아질 것이 없는 상황으로부터의 자유의 의미도 있다. 아무리 내 아버지가 아니고 내 가족이 아니라도 같은 공간에 있으면 그 에너지와 기운을 주고 받고 반응을 하게 되기 때문에 이는 실천적으로 불가능하다. 지난 여름 휴가를 한 달 꼬박 같이 보내며, 지난 해 여름에도 그 강렬히 대조적인 아버지의 집안에서의 모습에 내 감정을 더 쉽게 내보여 갈등이 있었던 그 때부터 난 알았다. 이기적일지라도 아니 모두를 위해서 피할 수 있으면 난 피하리라고.


그치만 내가 내 애인을 사랑하는 이상 함께 하는 이상 언제까지 이럴 수 있을지, 이래도 되는 것인지는 미지수이다. 그가 과거의 트라우마가 어쨌든, 그는 제대로 치료를 받아야하는데 이렇게 가까운 가깝다는 이유로 자식에게 모든 것을 의존하는 그 아버지를 나는 아직 이해할 수 없다.


그렇게 나는 집을 나왔고, 새 집에 또 오랜 나의 방으로 돌아왔다.

앞으로 2주 간의 나의 감정 변화와 동시에 군타와의 동거동락 제 2편도 기대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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