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다운건 자연스러운것

#29.

by 한지애

100일 챌린지

첼로 연습을 대신하여 독서 1시간 이상하기로 연장했다!

- 독서 1시간 20분

- 요가 25분

-독일어 1시간 20분



군타와의 정식 이틀차!


제일 처음 베를린에 도착했을 때 나는 군타네 집에 왔었다.

군타의 둘째 아들은 나의 친구였고, 우리는 페이스북을 통해 알게 되었다.

이미 서로 알고 있는 지인 예술가들이 많았기에 프레데릭이 먼저 친구 신청을 했었고, 그의 작업 포트폴리오를 한국어로 번역을 해주다가 내가 베를린에 가게 되었고, 머물 곳이 필요다고 이야기했다.

- 그때 당시 나와 애인은 서로 시간을 갖기로 한 때였기 때문에 더 이상 그 집에 가서 지내는 것은 불가능했고, 그렇다고 베를린에 가는 것을 포기하고 싶지는 않았다.


그때 프레데릭 (군타의 아들, 나의 친구)이 자신의 아버지가 몸이 많이 불편하신데 방이 하나가 빈다고 하면서 아버지가 아들의 친구라면 괜찮다고 하시면서 심지어 한 달은 돈을 내지 말고 지내라고 했다고 했다. 그리고 한 달이 지나서도 서로 호흡이 잘 맞으면 그때 값을 메겨서 방값을 내는 것으로 하자고 말이다. 나에게는 너무나 고운 제안이고 일이었다. 베를린의 방값이 올라가고 있었고, 빈 방/ 플랫을 찾는 것 자체가 힘들었기 때문에, 안그래도 갑작스럽게 새 집을 찾아야 했는데 이렇게 손쉽게 (?) 얻다니 말이다. 그것도 공짜로.


그렇게 온 군타네 집에서 첫 날 밤은 심지어 나 혼자 지내었다. 군타네 집은 정말 입이 떡. 벌어질만큼 박물관같은 인테리어로 나를 사로잡았다. 군타는 그 다음 날 병원에서 퇴원해서 집으로 오게 되어 있었는데, 하루 일찍 도착한 내가 심지어 주인보다 집에 먼저 들어온 셈인것이다! 프레데릭이 집을 안내해주고 공항에 마중나와 짐도 함께 옮기는 것을 도와주었다. 정말 정말 고마웠다.


그리고 내가 애인의 집으로 몇 달 뒤에 아예 이사를 하게 되고는 한 번 애인과 같이 군타네에 2주 정도 지낸 적이 있는데, 그 외엔 저녁을 먹으러 한번씩 방문한 것이 다이다. 그리고 이번에 2주 다시 군타와 지내게 되면서 이 황홀한 집에서 여유있게 지낼 수 있는 것이 솔직히 너무 좋았다. 럭셔리하고 모던한 느낌보다는 정말 괴짜같지만 하나하나 주인의 손떼와 추억과 감각이 묻어나는 그런 집이다.


특히 군타는 젊은 시절 프랑스어 교사를 했기 때문에 노르망디에도 매년 여름이면 휴가를 보내고 거기서 교환 교사로 일을 하기도 했다. 그 시절 그의 summer house에서 꾸며놓은 생선과 바다 영감의 오브제들과 그림들을 지금 집에 옮겨 놨는데, 특히 주방과 화장실은 마치 수족관이나 해양 박물관에 온 듯한 인상을 준다.


121464489_692761264667834_6232512984714002431_n.jpg 주방 한 켠 다이닝 테이블과 벽
121537845_776167133207148_9118535905811908502_n.jpg 군타에게 우리는 늘 생선과 관련된 것을 선물한다. 벽에 걸려있는 물고기 장식물은 베를린 아트마켓에서 선물로 준건데 이번에 가니 벌써 걸려있었다. 다른 물고기 친구와 나란히.

이제 69세인 군타는 여러 지병으로 걷는 것이 좀 느리고 힘겹다. 그래도 난 본인이 원하지 않는 이상 옆에 가서 도와주거나 그러지 않는다. 군타와 지내면서 '아시아적 사고'가 무엇인지 알게 되었고, 나보다 더 '아시아적인' 사고를 하는 전통적 '아시아인'들에 대한 '서양인'들의 관점이나 해석이 어떤지에 대해서도 알 수 있었다. 나는 특히 말라위에 살면서 에이즈, 장애, 지병, 가난, 온갖 것들로 힘든 사람들을 많이 봤었다. 한국에서도 저소득층 가정, 가정학대 아동 멘토링을 통해서 어려운 환경에 있는 아이들을 많이 만났지만 솔직히 그런 타이틀이 그 개인의 인격이나 나와의 관계에 큰 영향을 주지 않는다.


군타 말로는 때론 너무나 과한 친절이 자신이 나이가 많든 적든 일종의 판타지를 심어주게 하고, 무슨 감정이 있는것인지 의문을 갖게 된다고 했다. 나는 그것이 우리식 장유유서, 어른을 존경하는 마음에서 했을 것이라고 하니, 문화적인 차이라는 것은 알겠으나 본인에겐 매우 어색한 것이라 했다. 여러가지 이유에서 나는 타인을 존중하는 마음은 그가 무엇을 원하면 스스로 말 할 수 있는 힘이 있다고 믿는 것라고 생각한다. 대게 우리나라 사람들은 남을 '배려'한다 하여 상대가 말하지 않아도 '눈치껏' 하는 것이 몸에 베여있다. 나 역시도 그런게 아예 없지 않으며, 특히 여기서 살다보면 '나만' 배려하는 경우도 많이 겪었다.


애인과 군타는 우리 셋이 밥을 먹을 때면 나는 완전 한국 사람같지 않다며, 보통 아시아인에 대한 인식과 다르다며 놀린다. 내가 직설적이고 농담도 너무 많이 하고 그때 그때 해야하는 말을 하는 편이기 때문에 그런다. 물론 아시아만 그렇고, 유럽은 다르고 절대적으로 나뉘어지지는 않는다. 난 덜 아시아적이고 더 유러피언 적이고 하는 것에 관심이 없다. 그리고 우리의 문화와 의식을 아예 무시하고 백지상태에서 새롭게 인식을 쌓아가는 것은 더더욱 포인트가 없다. 하지만 내가 더 여기 문화나 태도에 더 관심이 가고 배워야한다고 생각하는 것은 내가 어떻게 생겼든 누구이든지 나에게 관대하고 가장 나 답게 행동하는 것이다.


군타와 애인은 나에게 매우 가까운 이들이기에 내가 이들이 나를 어떻게 보는지, 생각하는지가 내가 그들을 대하는 것에 아무런 영향을 주지 않는다. 하지만 솔직히 나와 일절 관계도 없는 행인이 나를 쳐다봐도 괜히 내가 다르게 생겨서 저러나? 내가 동양인이라서 저러나? 하는 구조적 선입견을 들이밀어 불필요한 스트레스를 나에게 줄 때가 있었다. 솔직히 코로나 시기에 그 영향이 더 커진 것이 사실이다. 개인적으로 몇몇 얼빠진 인간들이 나에게 '코로나, 코로나'라고 한 적은 있지만 뉴스나 소셜미디어 커뮤니티에서 듣는 것 처럼 정말 모욕적인 것을 넘어서는 불합리함을 겪어보지는 않았다. 근데 듣고 보고 아는 것만으로도 이미 내가 경험한 것과 같은 효과를 주긴 했다.


근데 나와 관계를 맺고 있는 지인들도 아닌 나에 대해 아무 것도 모르는 행인이 나를 오랫동안 쳐다본다고 한들 당연히 유쾌하진 않지만 내가 너무 많은 생각을 둘 가치도 여유도 있어서는 안된다는 것을 조금 늦게 깨달았다.

그러기에 나는 신경 쓸 것이 더 많고 내 인생은 더 가치 있는 것만 배우려해도 모자라기 때문이다.


베를린은 정말 자기 자신에 대해서 배우고 탐구하고 또 그게 '너무나 괜찮고 자연스러운거야.'라고 느끼기에 정말 최적의 도시이다. 일반화 할 수 없지만 나름 여러 곳을 살아보면서 베를린에서 느낀 것이다. 어쩌면 외부보다 문제는 내부에 있는 것이 맞을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환경과 개인은 분리해서 무엇이 먼저인지 뗄 수 없는 관계임이 맞다고 할 때, 나에게 베를린은 더 나다워도 된다고, 너무 남을 배려하지 않아도 모두가 다 행복할 수 있다고 말해주는 도시이다.


다시 군타와 2주 지내면서 tippisch Deatuscher 전형적 독일인이자 Berliner 베를리너인 군타와 있으면서 더 나답게 느끼고 행하는 것이 자연스러워질 것 같다. 솔직히 애인을 통해서도 많이 배우지만 베를리너에겐 뭔가 특별한 것이 또 있다!

121539642_353674912732434_6598331915051782268_n.jpg 군타와 만든 우리 둘의 첫 저녁 - 슈니첼과 타블레 - 북아프리카 요리 - 쿠스쿠스와 피터 허브, 레몬 등을 섞어 만든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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