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순하지만 따뜻한

#26.

by 한지애

100일 챌린지

요가 50분

독일어 1시간 40분 (밤에 공부하니, 하다가 눈이 꾸벅꾸벅...)

첼로 30분

독서 15분 (께겡)



베를린 아침공기는 벌써부터 차가워져온다.

시린 발을 살살 서로 비비면서 책상에 앉았다. 하루에 할 것들을 써놓고 내일 미팅도 다시 한번 확인하고.


오늘은 내가 베를린에 아는 교수가 한 명도 없던 시절, 김선욱 교수님의 소개로 알게 된 볼프강 교수와 6개월 만에 만나기로 한 날이다. 긴긴 코로나와 스페인 마드리드에 사모님이 계시는 그는 7월이 되어서야 베를린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고...


우리는 늘 만나는 Goldberg - 금동산 이라 해석할 수 있을까? - 카페에서 만났다. 가는 길에 비가 조금씩 쏟아지기 시작해서 혹시나 그에게 불편하지 않을까 걱정했는데 다행히 우리는 만남의 장소에서 서로를 마주할 수 있었다. 공교롭게 우리 둘 다 같은 동네에 살고 있기에, 비를 뚫고 온 그가 그리 큰 어려움은 겪지 않았으리라 믿는다. 지금은 퇴직을 하고서 강사로서 아렌트를 중심으로 학회를 열고, 세미나도 주최하시고, 강연도 다니고 계신다.


우리는 서로의 코로나 시기가 어떠했는지 이야기를 나누었고, 레스토랑이나 술집들이 이제 날씨가 추워져 실내에서만 영업을 할텐데 이 규제 속에서 적은 수의 손님들을 받고서 어떻게 생존할 수 있을까 걱정했다. 베를린은 가을 풍경 속에 기온은 벌써 겨울로 넘어가는 기분이다.


그리고 나는 며칠 전 아렌트 전시회에서 그의 책을 발견하고 너무 반가웠음을 그에게 표현했다. 그는 그 책이 무 80년대에 처음 출간되었던 책이라고 했다. 그리고 30년이 넘게 지나서 다시 발간이 되었는데, 그 책은 80년대 당시에는 아무도 읽지 않았다고 한다. 우리가 아는 지금의 아렌트가 독일에서 그 인기와 인정을 받기까지는 10여년이 더 걸렸다. 그것은 당시 60년대 시작된 학생들의 사회주의 운동으로 인한 아렌트에 대한 편견에서 시작되었다고 한다. 당시 '진보적' 학생들은 아렌트의 이론이 전체주의적이고 스탈린 식의 사회주의라며 비판했다. 볼프강 교수 역시 80년대에 들어서나마 아렌트의 글을 새로운 눈으로 보고 그 통찰력에 감탄을 하게 된 것은 그 때 한창 사회주의에 대한 회의와 위기를 의식하는 분위기가 형성이 되어 있어서였을 수 있다고 말했다.


나는 대학에서 정치외교를 복수전공하면서 아렌트를 처음 들었는데, 그 수많은 남성 철학가들 중 거의 유일한 여성 철학자이자 학자였으며 그녀의 분석 역시 많은 것을 모르는 나에게도 큰 영감을 주었다. 그런 그녀도 시대적 저항과 시대적 이념의 파도 속에서 정작 자신의 나라에서는 늦게 인정을 받았다는 것이 매우 신선하게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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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년대에 처음 출간되었더 볼프강 교수가 쓴 아렌트의 전기전


아렌트에 대해서, 그리고 내가 아렌트의 이론과 자유에 대한 개념이 내 연구에서 정치적 행위성을 이해하는 것에 어떤 연관이 있는지에 대해서 그에게 이야기 할 수 있는 기회가 있었다. 그는 나에게 아렌트 사후 그녀의 몇몇 에세이를 엮어서 낸 최근에 나온 (2018) Freedom to be free 라는 에세이를 추천해주면서 읽어보라 했다.이 타이틀로 출간된 책은 아렌트의 The human conditions에 담은 한 챕터와 다른 두 외부 에세이를 섞어서 총 3장으로 이루어진 얇은 에세이 묶음집이다. freedome to be free 는 그 마지막 장에 나오는 에세이이다. 그리고 아렌트가 받는 비판들 중에서 가치가 있는, 이해할 만한 것들은 무엇이고 그리고 너무 단순화 시켜서 아렌트를 오역하는 비판들은 어떤 것들이 있는지에 대해서도 잠깐 이야기를 나누었다.


볼프강 교수는 교수라는 타이틀보다 나에겐 정말 멘토같고, 대화가 정말 잘 통하는 친구같다. 나이는 나의 두배를 넘지만 말이다. 그가 지도하는 석사생도 골드버그로 오기로 했다고 한다. 갑작스런 그녀의 등장에 조금 당황하긴 했지만 나는 머무는 것 보다 자리를 내 주는게 맞다고 생각했다.


집으로 돌아와서 박사공부하고 있는 상하이에서 온 징이와 애인과 잔치국수/ 칼국수를 해먹었다.


저녁을 먹기 직전 폰을 보니 볼프강 교수에게 이메일이 와있었다.

"오늘 만나서 너무 반가웠는데, 아쉽게 시간을 많이 못 내서 정말 미안하다. 다음엔 우리에게 필요한 시간을 갖고 또 대화를 나눌 수 있음 좋겠다." 라는 메세지와 함께 우리가 대화하며 그가 언급한 몇 가지 아티클들을 공유해주었다.


어떤 이들은 자신의 타이틀에 구애받지 않고 정말 자유로운 인간이 된다. 나의 자유도 단순하지만 따뜻하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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