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회를 축하합니다!

25일차

by 한지애

100일 챌린지 보고

독일어 30분 (어제의 30분, 그러니 오늘꺼 다가오는 오늘, 두 시간을 공부해야 원상복기!)

독서 1시간

첼로 30분

요가 40분



아침 여덟시 반에 눈을 떴다.

미라클 모닝이라하며 사람들이 새벽 4시,5시에 일어나서 하루를 가꾸고, 동시에 그들의 미래를 가꾸는데 '나는 뭐하는 것인가?' 라고 더이상 꾸짖지 않기로 했다. 대신에 너무 늦지 않게, 그걸로 인해 내가 자책하며 하루를 시작하지 않을 정도의 시간. 나에게 그건 7시 반에서 8시 반 사이이다. 아직은 8시 반이지만 시간이 조금씩 당겨지길 바라본다.


나는 대부분의 시간을 집에서 보내면서 박사 관련된 독서, 리서치를 하고 그와 관련된 이메일을 사람들과 주고 받는다. 박사를 하면서도 경제적인 수단을 마련하기 위해 이곳 저곳 기웃거리며 어떻게 온라인에서 소득을 만들 수 있는 법과 여기서 박사 학생 비자가 나오면 여기서 일을 법적으로 할 수 있기에 프리랜서 일도 알아보고 있다. 애인은 상황이 꾀 다르다. 그는 나보다 더 많은 것들, 더 불확실한 것들을 기획하고, 만들고, 협업한다. 물론 그의 가장 많은 업무 (?) 시간은 첼로 레슨이다.


어쩔때 아침에 눈을 늦게 뜨는 것이 나보다 늦게까지 아침에 잠을 자는 그의 영향 때문은 아닐까하며 불만을 갖은 적이 있다. 같이 자는 사람이 좀 '부지런'하면 나도 자극을 받을텐데... 그러나 이건 순전히 나의 이기적인 책임전과적 사고라는 것은 우리가 하루를 어떻게 보내는지를 보면 자각을 할 수가 있었다. 그의 일정은 매일매일이 다르며, 매일 다른 시간에 시작된다. 어떤 날은 아침 일찍, 어떤 날은 오후에 시작해서 자정까지 들쭉날쭉이나보니 본인 나름 자기의 에너지를 조절해가며 일정을 이어나가는 것이다. 그에 반해서 나는 상대적으로 '나와의 약속'이 지배적인 일과들을 보내고 있으니 스스로의 결심과 다짐이 너무나도 중요한 것이다.


이번 주말이면 그의 아버지 - 역시 음악가이며, 비올라 바이올린을 연주하신다 - 가 리스본에서 베를린으로 오셔서 2 주간 공연 일정을 갖는다. 물론, 그도 매번 그의 공연에 함께 연주를 하게 되었고, 그 외에도 시월에 잡힌 공연까지 합치면 약 9회 정도 공연이 있다. 이건 3-4일에 한 번씩 공연이 있는거나 마찬가지이다! 이런 공연들은 실험,즉흥 음악으로 잘 알려진 venues 공간들에서 이루어지기에 나름의 네임벨류가 있는 곳들이지만 사실 예술가들의 주머니로 돌아오는 돈은 정말 말로 다 하기도 힘들다. 그래도 미리 기획이 되고 초청이 된 행사들은 대우가 괜찮다. 그렇기에 그는 첼로 수업도 해야하고 독특한 사이드잡을 여러개 해내는 힘을 갖고 있다.


사람의 삶은 참 무한한 가능성과 빈 스케치에 자기가 그려나가기 나름이라는 것을 그를 보면서 많이 느낀다. 아직 한국인은, 그리고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미 밑그림이 그려져 있는 스케치북을 색을 채워가며 채워나가는 것을 선호하는 것 같다. 예측할 수 있고 안정감이 있으니까 말이다. 굉장히 본능적인 것이지만 인간의 본능과 다르게 아렌트는 인간의 조건으로 '행동'할 것을 말하고, 이는 '태어남', 즉 새로운 것을 시도하는 것이라 말했다. 정치적인 의미로 주로 설명을 했지만 정치라는 말 자체가 사실 우리가 생각하는 그런 제도정치 참여라고 이해하는 것은 매우 한정된 이해라고 생각하나 이것은 이번 글의 논외임으로...


한 예로 오늘은 그가 2018년부터 매우 우연한 기회로 시작한 즉흥, 실험음악 주간 시리즈의 100회를 맞이한 날이었다. 이 공연장은 1910년 운행되던 오래된 선상을 개조해서 만든 컨템퍼러리 갤러리이다. 갤러리 director주인은 핀란드에서 온 큐레이터와 그리고 체코 프라하 출신의 큐레이터가 공동으로 맡고 있다. 처음엔 와인갤러리와 아트 갤러리를 겸하다가 지금 선박 경매를 보고서 첫 눈에 여기다 하여 장소를 옮겼다고 한다. 그리고 정말 발품 팔고, 또 자금을 그때 그때 메꾸면서 지금의 선상 갤러리가 만들어졌다. 정말 무에서 유를 창조한 것이나 마찬가지이다!


운명적인 주간 음악/포퍼먼스 시리즈는 매우 우연한 만남에서 시작되었다. 애인은 버스킹을 종종 나가 연주를 했다. 2018년 여름, 한 날 그 앞으로 한 남자가 다가왔고, 그 둘은 자연스레 대화를 나누게되었다. 그 남자가 바로 프라하에서 온 큐레이터 피터였고, 그렇게 애인은 그를 방문하러 갤러리에 갔다가 주간 공연을 제안하게 된 것이다. 그래서 첫 몇 시리즈는 배가 아닌 일반 거리 위 상점에서 이루어졌고, 대부분의 주간 공연은 선상에서 매주 수요일에 이루어졌다. 그리고 오늘이 그 100회째를 맞는 날이었다.


백회를 맞이하면서 갤러리라는 공간을 알리는 데에 큰 몫을 했다. 처음엔 드문드문 오던 사람이 작년말 올해는 코로나라는 어려운 시기에도 불구하고 줄을 서서 몰려드는 곳이 되어 버렸다. 원래는 공연보다 전시와 시각예술을 위한 갤러리만 생각했던 피터와 린다에게 나의 애인은 음악, 소리, 포퍼먼스라는 보다 다원적 미감을 갤러리에 더해주었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이 어떤 경제적 보상이나 댓가가 없이 이루어졌었다. 지금은 불과 몇 달전부터 공연가들과 당일 입장료로 번 것을 나눠 갖기는 하지만 그것은 뭐 얼마나 되겠는가!


매주 수요일 공연을 위해 뮤지션들을 섭외하고 스케쥴을 잡고 또 당일날 큐레이팅을 하고, 모든 것을 다 그가 맡아서 하기 때문에 갤러리 주인들 측에서도 '그래 한번 해보자'라고 하게 된 것이기에 애인은 정말 책임감과 사명을 가지고 하는 것이다. 그 과정을 처음부터는 아니지만 일년 넘게나마 봤기에 이번 백회 공연이 너무나 감격스러웠다. 그런데 나는 백회라는 사실을 깜빡했고, 심지어 그가 공연을 함에도 '이번 달 공연은 많으니 다른 날 가야지.'하는 마음으로 작별인사를 하고 보냈다. 그런데 아차! 싶었다. 자기 공연이 있을 때 굳이 나에게 매번 같이가자고 따로 말을 하지 않는 성격이다. 오늘도 가기 직전에서야 갈거냐고 물어보길래 난 갈 마음을 안 먹고 있었기에 몸을 움직여 나가는게 솔직히 귀찮았다. '정말 안갈거야?'라고 몇 번이나 물어보는 그에게 성질까지 냈더랬다. 그렇게 같이 가고 싶었으면 미리 물어봐, 다음에는! 큰소리까지 치며.


그런데 오늘이 100회째였다. 100회. 본인의 공연이 있든 없든, 공연을 이어가기 위해 매주 수요 저녁은 시간을 비워두고 배로 향하던 것이 오늘 100회를 맞이했다. 시간은 이미 밤 9시 50분. 오늘 공연의 마지막 팀이 막 공연을 시작한 시간이었다. 나는 부랴부랴 옷을 갈아입고, 자전거를 탈까말까 고민을 하다 더 늦을 것 같아 지하철을 타기로 했다.


케익과 초를 사서 가고 싶었는데 한국과 다르게 여기는 다 문을 일찍 닫기에 베이커리는 꿈도 못 꾸고 슈퍼마켓에 갔더니 얼린 디저트 케익류가 있었는데 초를 구할 수가 없었다. 캄캄한 배에서 파이 케익을 여는게 웃길 것 같았다. 그때 눈에 들어온 것은 꽃다발. 그래 꽃을 선물하자!


꽃 두다발을 나름 엮어서 한 다발로 만들고는 지하철역으로 뛰었다. 4정거장 후. 내려서도 계속 뛰었다.


도착하니, 배 들어가는 입구 앞에 이미 그는 첼로를 등에 메고서 나가려던 참이었다.

"서프라이즈!!!! 축하해!!!"


그는 엄청 당황했고, 뭐를 축하하는지도 이해하지 못하는 듯 했다.

"오늘이 백회였잖아, 그동안 너무 수고많았어. 축하해!!!"

그는 꾀나 감동을 먹은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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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쉽게도 많은 이들이 이미 떠난 후였고, 공식적으로 기념하진 못했지만 우리 둘에게는 특별했다.

잠깐 얼굴을 본 피터와도 인사만 하고, 나중에 축하한다고 말을 남겼다. 알고보니 내일은 또 그의 생일이었다!

정말 우연과 우연의 연속이 아닐 수 없다.


기대치 못하는 것은 언제나 불안하고 우리의 사고를 가끔은 마비시켜버리기도 한다.

하지만 그 안에 확신이 있을 때, 조급하게 결과를 바라지 않고 꾸준히 했을 때 예기치 못한 선물과 성과란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기중한 경험일 것이다.


우리의 하나 뿐인 인생, 조금 더 과감하게 그리고 조금 더 예기치 못하게 그렇게 그려가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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