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일차
100일 챌린지 보고
독일어 한시간 반 (어제 몫까지 두시간 했어야 하나 잠이 너무 쏟아져 그만.. 흑)
독서 30분
요가 1시간
첼로 20분
오늘은 손에 꼽아 기다리던 아렌트 전시를 보러 가는 길이다. 전시 공식명은 '한나 아렌트와 20세기' 이다.
이번 전시는 독일 역사 박물관 Deutsches Historisches Museum (DHM) 에서 주최하였으며, 베를린의 박물관 섬 부근에 위치해 있다.
이번 전시는 지난 5월달부터 이번달 18일까지 이어지는데, 코로나 때문에 개관 자체를 늦게 했고, 중간 중간에도 2주씩 쉬는 등 원만치 않게 느껴졌다. 그래도 자유대에서 박사과정을 하고 있는 상하이에서 온 친구와 함께 온라인 예약을 하고 관람을 하러 갔다.
입구에 도착해서 나의 유창한 (반어법) 독일어로 티켓을 받았다. 티켓이라기보단 자켓 상단에 잘 보이게 붙여야하는 스티커가 입장권이었다. 친구를 기다리며 나는 지난 번 구경 왔을 때 들렸던 기념품 코너에 갔다. 거기엔 지금 아렌트와 관련된 모-든- 서적들을 판매하는 듯 했다. 대부분 독일어로.
지난 번에 왔을 때 '인간의 조건' 개정판이 영어로 나온 것을 팔고 있어서 책만 사고 전시는 예약을 안했어서 못보고 그냥 돌아왔었는데 오늘은 보이지 않는다. 저번엔 없었지만 이번에 새롭게 보는 책들이 많았는데, 그 중에 눈에 띄는 반가운 저자를 발견했다!
내 박사 공부의 제 2 지도교수를 맡아주신다고 하신 볼프강 호이어 교수가 쓴 아렌트 전기가 나란히 판매 되고 있었다. 이번주 목요일 집 근처 - 우린 우연히도 같은 동네에 살고 있었다! - 카페에서 만나기로 했다. 사실, 제 2 지도교수를 새롭게 현직에 있는 교수중에 찾아야해서 공식 제 2 지도교수는 아무래도 어렵겠지만 한국과의 인연도 매우 특별하시고 아렌트에 대한 깊이와 이해가 매우 풍부하신 분이셔서 이렇게 인연을 맺은 것에 감사하다. 사실 그 분은 한국에서 아렌트 책을 많이 번역하시는 숭실대 김선욱 교수님의 소개로 알게 되었다. 난 그럼 김교수님을 실제로 뵌 적이 있느냐? 노! 단 한번도 없다. 이메일로만 내 소개를 드리고 베를린에 있다고 하니 선듯 소개해주셔서 알게 되었다. 아렌트 새내기로서 아렌트 학의 거장들을 알게되어 너무나 기쁘고 감사할 뿐이다. 제 2 지도교수로 새롭게 제안을 드릴 분 역시 사실... 아렌트 철학으로 유명하지만 한창 베를린 학계에서 인정받는 실력자랄까? 지금은 훔볼트 사회과학대 장으로 승진 및 이직을 하셨지만 학교가 같은 곳에서 찾을 필요가 없기에 나의 메인 지도교수와 함께 접근 (?)을 하기로 했다. 아이구 나의 박사 시작 역시 코로나만치나 순탄치 않다!
아무튼 아렌트의 전시를 보면서 그 동안 내가 조각 조각 공부하고 이해한 것들을 연대기 순으로, 그 안에의 핵심 사건과 아렌트에게 영향을 준 이벤트들 중심으로 정리가 된 듯하여 매우 도움이 되었다. 특히, 1-2층 으로 구성이 되어 있었는데, 2 층에는 인간 아렌트로서 생전 그녀가 어떤 사람들과 교제하고 참여하고 글을 쓰고 여행을 녔는지 사진으로나마, 그리고 간략한 주변 인물들의 소개를 통해 엿볼 수 있었다. 대중에게 알려진 아렌트의 사진들은 Fred Stein이라는 사진가로서 철학을 공부했으나 나치시기에 아렌트와 마찬가지로 망명을 다니다가 뉴욕에서 아렌트와 다시 만나 인연을 맺게 된다. 우리가 아는 아렌트의 사진들은 주로 찍은 것이라고 보면 될 정도이다.
아렌트와 20세기, 많은 것들을 생각하게 하고 많은 것들을 그 시대 사람들보다 넘어서 생각했다. 과연 21세기는 어떨까? 이 질문을 동시대 학자들은 아렌트를 해석하면서 가장 흔하게 던지는 질문이다.
그녀의 무국적자, 난민, 망명자들에 대한 해석과 법치에 따른 공화국 주장, 코스모폴리탄주의 이것들이 오늘 날에는 우리에게 어떤 인상과 생각을 떠올리게 하는가? 우리의 역사는 반복된다고 한다. 쳇바퀴처럼 흘러가면서 어떤 부분들에 큰 변혁이 일어나 우리의 루틴을 바꿔 놓지만 다른 영역들은 서서히 변화하고 또 그 안에서 개개인마다 개별 사회마다 그 변화를 만드는 속도는 다 다르다.
나에게 아렌트는 정치를 이해하는 데 있어서 희망같은 존재이다. 나치의 전개과정을 지켜보고 그 패망을 지켜보며 전체주의에 대해서 정리한 아렌트는 권력은 무력 또는 폭력이 아니라고 말한다. 영어로 보면 power, force, strength, violence 들이 맥락에 따라서 교차적으로 사용되기도 하는데 아렌트는 이 단어들이 정치적 권력을 의미하는 것에 있어서는 엄밀히 다르며, 폭력이나 무력은 절대 권력이 될 수 없다고 한다. 정치적 권력은 '함께함'에서 발생하는데, 무력이나 폭력은 고립된 상태에서 일어나기 때문이라고 아렌트는 말한다.
내가 193,40년대 나치 아래에 삶이 어떤지 완전히 이해 할 수 없고, 동시에 오늘 날 남한 넘어 북한의 상황이 얼마나 전체주의적인지 군주적인지를 명확히 비교하기에 내 지적 역량은 매우 부족하다. 그렇지만 한 가지 나에게 희망은 아렌트의 사고와 전체주의에 대한 해석이 그런 전체주의적 억압적 사회에서 나온 사람들, 그러니까 탈북민들이 세상을 바라보는 관점을 주체적으로 이해하는 데에 큰 교육적 자료가 될 것이라는 확신이다. 이 역시 내가 확신을 갖는다고 하여 한번에 실천이 되고 눈 앞에 변화가 바로 나타날 것이라는 것은 아니다. 그렇지만 우리가 진정한 자유를 원한다면, 우리 자유의 궁극적 목적은 그 실현하는 과정과 행동 자체이다. 자유는 우리가 새로운 것을 행하고 없는 것을 만들어 낼 때 그 안에서 내현된다. 하지만 막스주의 중심의 노동자들의 혁명과 경제적 자유에 대한 강조는 아렌트가 중시한 정치적 개인 자유가 현대사회에 갖는 중요성을 퇴색 시켜버렸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철학철학가 니체가 쓴 '선과 악을 넘어서', 그리고 아렌트의 '악의 평범성'은 우리가 악한 존재로가 이해하는 인물들에 대하여 어떻게 인간화하고 어디까지 인간화 할것인가에 대한 기준을 이야기한다. 이것이 그런 전체주의 사회에서 억압을 경험한 이들에게는 매우 급진적이고 이상적인 이야기일 수 있다. 그래서 아렌트가 '예루살렘의 아이히만'에서 아이히만의 유대인들에 대한 고문과 살인이 오로지 그의 잘못이 아닌 전체주의 정권하에 하나의 공무원으로서 할 일을 했을 뿐이라고 한 것이 큰 반항을 일으킨 것과 마찬가지이다. 아렌트가 말하고자 한 것은 전체주의가 얼마나 무서운지, 개인의 정체성을 파괴하고 누가 하던지 크게 다를 것이 없는 획일적 일간을 만드는지였다. 그것이 나중에 아렌트가 시온주의 운동과 여정을 마치게 된 계기가 되지 않았을까 생각해본다.
베를린에는 아렌트의 탄생 100주년을 기념서 생긴 아렌트 거리가 있다. 칸트 거리는 독일 곳곳에 있고, 칼막스 거리도 있고 그런 것들이 참 재미있다. 베를린에 있으면서 이번 아렌트 전시를 가 볼 수 있어서 정말 영광스럽고 슴 벅차게 생각한다. 앞으로도 나의 학문적 여정에서 아렌트에게 많이 배우고 대화하고 싶다! '정식으로 시작한다면....' (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