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우리엄마는 아들 낳을려고 그런거 맞아요
우리 엄마는 '잘 키운 딸하나 열아들 안부럽다' 는 국가표어가 있던 시절에 딸둘에 아들하나를 낳았다. (내가 그 중 둘째딸이다) 엄마의 슬픈 스토리를 대충 요약하자면 이렇다. 장남과 결혼해 큰 며느리로 아들을 낳기 위해 셋을 낳았다는 사실은 놀랍지도 않고, 하나만 낳으라는 정부의 운동이 있었기에 셋째인 내동생은 의료보험도 적용받지 못하고 모든 수술과 입원비용을 생으로 결제했다는 실제 경험담은 고작 삼십몇년전 내 동생의 출산기이다. 게다가 그 시절 신혼을 즐기던 아빠친구 의 연인이 한 장례식장에서 만나 앳된 28살의 새댁인 우리엄마에게 '야만인같다'며 호호 웃었다는 비화는 여전이 우리가족이 분노하며 욕을 바가지로 해주고 있는 사연이다. 이 또한 그분은 모르겠지만 말이다. 어쨋든, 그 그 엄청난 노력과 투자와 상처를 발판으로 태어난 내 동생도 이제 장성하여 아기아빠가 되었다. 유난히도 스스로 야무지게 잘도 하는 누나 둘 밑에서 묻혀 살아 그른가, 여전히 억울한 일이 있으면 입을 파르르 떨며 눈알을 부라리고 들이대기 일쑤지만 나는 그 모습이 어쩐지 측은할 때가 많다. 아마 알게모르게 '아들하나있는게' 라는 불편한 멘트를 수도 없이 듣고 자랐을 생각을 하니 어쩐지 미안해진다. 우리집은 출산 이후에는 또 여성파워가 강성인 집안 분위기가 좀 커서인지, 어쩐지 응답하라 시리즈 같은데 나오는 둘째 딸 이야기에 크게 공감은 안가지만, 반대로 내 동생은 좀 억울했으려나 싶은 마음이다.
난 특정 성별에 관심이 없었다. 이 얘기는 꼭 딸을 낳고 싶다 아들을 낳고 싶다 뭐 이런 생각을 해본적은 없었단 이야기다. 나는 셋 모두 계획 하에 가졌다기보다는 때에 맞춰 자연스럽게 임신이 되었다. (정말 축복이라는 걸 알고있다.) 무심하다기보다는 출산 그 자체에 취해있었다. 오히려 첫째는 어렴풋이 아들을 갖고 싶은 로망이 있었던 것 같다. 어릴 때부터 가졌던 부질없는 로망 같은 거랄까? 사랑하는 남자를 닮은…뭐 그런 유치하고 로맨틱한. (정말 멋모를때 아이를 낳아야 한다는 말은 날 두고 하는 말이다. 아무 것도 모르고 둘째까지 낳았고, 셋은 좀 알고 나서 가지고 싶었지만 그 또한 낳아보니 모르고 나은 것 같다)
그리고 둘째는 뭐 생각할 겨를 없이 2년 터울로 정신 없이 낳아 키웠다. 그때 아주 보수적인 경상도 출신 시아버지는 아들을 내리 둘 낳은 것은 모두 너와나의 복이라고 했었다. 둘째도 아들이라하니 기뻐한 사람은 아버님 뿐이라 잊혀지지가 않는다. 당시에는 '무슨...아들 둘 내리 낳는다고 '복'까지야' 했는데 그말씀이 돌이킬수록 어찌나 감사하던지 아직도 전화기 너머 아버님 목소리가 생생하다. 여튼 뭐 둘째까지는 정말 성별의 어떠한 거부감이나 선호도 없이 그냥 주어진 대로 낳아 키웠다.
셋째는 좀 달랐다. 꼭 딸이었으면 하는 생각을 먼저 했다기보다는 주변에서 너도나도 할 것 없이 들썩들썩 나를 흔들었다. '오빠들 밑에 막내딸 얼마나 예쁘겠어(이상적인 그림 세뇌)' '셋째도 설마 아들일까'(이건 나도 동감이었다) '이번엔 무조건 딸이다' 등 뭐 당연히 셋째는 딸이어야 완벽한 것 처럼 기대하는 통에 나도 조금은 성별확인에 긴장을 했는지도 모르겠다. 성별 확인하는 날은 진료를 갔다가 출근하는 조금 더운 늦봄의 평일 오전이었다. 뭔가 모두의 기대를 충족시켜야 할 것 같은 긴장감 더하기 너무 궁굼해서 (이토록 성별이 궁굼했던 임신은 세번 중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다) 손에 땀이 조금 났다. 초음파를 보는데 담당 선생님이 정말 '푸하하하' 하면서 웃으셨다. '아들이다 엄마! 푸하하하하 ' 너무 유쾌한 웃음에 나도 그냥 실실 웃다가 진료실을 나왔다. 의사선생님의 그 웃음을 듣고 나니 아들 셋인 그림, 어쩐지 생각만 해도 웃음이 나왔다. 어차피 아이들도 우리편이 한명 더 있어야 한다며 남동생을 원하고 있던 차였다. 그래서 남편과 나는 임신기간동안 곧 태어날 우리 '랑이'가 함께할 그림을 상상하며 참 많이 웃고 설레였다. 뭔가 우리는 조금 특별한 것 같은 요상한 자부감을 느낀것도 사실이다.
물론 조금 황당하고 억울한 부분도 없었다면 거짓말이다. 내가 임신과 출산을 세번이나 반복했는데 '딸도 한번 키워봤으면 만랩인데 아쉽군'. 또래보다 결혼과 출산을 일찍해서 늘 대선배같은 대우에 손사레를 치면서도 은근한 자부심이 있었나.. 내가 먼저 못한건 딸뿐인데. 프로의식에 생채기가 났달까. 새로운 프로젝트를 맡지 못하고 계속 하던 것만 하는 자에게는 큰 승진은 없을 것 같은 그런 느낌. (나는 출산과 육아도 굉장히 목표지향적인 모양이다) 정말 그 정도가 다였다. 여튼 딸을 낳자고 셋까지 낳은 뭐 그런 이상한 출산계획은 없었단 얘기다.
그런데 문제는, 셋째가 아들임을 알고 나서 부터 지인은 물론 길가던 행인들까지 불편한 오지랖이 끝을 달리며 폭주하기 시작했다.
‘어머! 어떻게!!!!!!!’ 는 아주 양반이고, ‘아이고….. 엄마 큰일났다…’ ‘딸 낳을려고 낳았구나?’ ‘넷째는 딸일거야’ 부터 시작해서 제일 많이 듣고 황당한 반응은 ‘에이~ 딸이 좋은데..’ 라는 반응이다.
네? 딸이 없는데 딸이 좋은데.. 라는 이 정체를 알수없는 인사는 대체 무언가? 우리는 아빠가 안계셔요, 에이~ 아빠가 있는게 좋은데. 라고 말하는 황당한 무례함과 뭐가 다른걸까? 없는데, 심지어는 가질 마음도 없는데 있는게 좋다니요. 물건이면 한번 사보기라도 하겠지만, 아이는 그럴 수 있는 존재가 아니지않나. 나도 뭐 딸 하나쯤 있으면 좋겠다 싶을 때도 있지만 (나이 들어서 아주 다 내려놓고 수다 떨 사람이 필요하긴 하다) 난 딸낳을려고 넷 혹은 다섯 여섯까지 낳아?보는 도박을 하고 싶진 않다.
최근 막내를 일하기에 조금 편한 환경으로 기관을 옮기고 싶어 아주 마음에 드는 어린이집원장님과 상담을 하는데 대차게 실망을 하고 돌아온 기억이 있다. 상담 끝에 '어머 그럼 어머니 아들이 셋이신 거예요? 에이 어뜨케~' 하시는거다. 나는 사회적 cs응대능력이 우수한 편으로 대충 웃으며 대세에 맞추어 반응한 뒤 다시는 상대하지 않는 쪽으로 가는 편인데, 그날따라 아들은 좀 별로야 하는 멘트에 바보같이 웃고 싶지 않았다. 아동교육전문가이지 않나. (하지만 바보같이 웃으며) 아,근데 아들들도 너무 재밌어요 전 좋아요. 아이들 성향도 모두 제각기고요. 라고 가볍게 덧붙다. 그랬더니 “맞아요 어머니~ 또 딸 같은 아들도 있으니까요. 근데 제가 아들도 키워보고 딸도 키워봤는데요, 딸이 이쁘드라구요~” ……………………………………………………… '헐' 이라는 말을 혹시 여기다 쓰는건가? '아들도 키워보고 딸도 키워봤는데.............? 경험치 공격한번 거세군................................ 요즘 말로 어쩔티비. 어쩔냉장고..... 나는 딸만 있는 엄마에게 '아들만 키워야 편하고 좋은데' '아들 안 낳을거야?' 이런 질문을 해 본적도 해볼 생각조차도 한적이 없는데. 왜 반대의 경우는 쉽게 이야기 하는지 그 근원이 대체 어디부터인거지.
그런데, 이런 문제에 관심을 갖다보니 아들엄마들 스스로가 아들을 좀 깎아 내리는 경향도 많다는 걸 느꼈다. ‘ 나 둘째도 아들이라 그래서 산부인과에서 엉엉 울었잖아’ ‘나 셋째도 아들이라 그러면 지울려 그랬어’..뭐 이런 얘기를 심심치않게 듣는다. 그러지 말자고 얘기하고 싶다. 자식만큼 끔찍한게 어딨다고, 제일 사랑하면서 왜 그런 말을 쉽게 내뱉는건지. 난 안다. 그 엄마들이 정말 진심이 아니라는 거. 그때는 그랬더라도 키우고나니 그때 그랬던 마음을 후회하고 있다는 걸 말이다. 자식을 키우는게 힘이든건 성별의 문제가 아니니까. 딸만 키우는 엄마에게 "하나도 안힘들잖아~좋겠다!" 라고 하면 위로받을까?
여튼 성별에 마음의 무게가 컸는지, 나는 셋째를 제왕절개로 출산하고 하반신만 마비된채로 아주 멀끔히 아이를 만났는데 어찌나 감격스럽고 벅차던지 (첫째둘째는 정말 난산스토리 다덤벼 할정도라 태어나고 얼굴을 제대로 마주한 이가 없었다) 엉엉 울어대느라 아이가 엄마 목소리를 기억하니 이름을 불러주라던 선생님 말씀을 받들수가 없을 정도였다. 머리맡에 앉아계시던 마취선생님이 '좋은날인데 왜울어~ 아들이 뭐어때서' 그러셨다. 아기의 이름을 불러주라는데도 못불러주고 엉엉 울다가 우리 아기가 들을까무서워 번쩍 '(눈물콧물범벅) 저 너무 좋아서 그래요!!!!!!!!!!!!!!!!!!!!!!!!!!!!!!!!!!!!!!!!!!!!!!으앙~~~~' 하고는 잠이 들었다. 아마 그때 우리 셋째가 울음을 조금 그친것 같기도.
아들만 있는 엄마들을 ‘불쌍한 사람’으로 끌고 가고 싶은 하는 심리는 과연 무얼지에 대해 혼자 생각해보기도 한다. 전문가가 아닌지라 생각의 끝이 늘 희미하지만 이 시대에 대체 어떠한 오해가 있길래 내가 엄마가 된 이번 시대에는 아들있는 자들을 이토록 작아지게 만들고 싶어하는 건지. 우리엄마 때는 불법으로 양수검사를 그리도 많이 했다던데. 검사해서 어쩌자고 그런걸까. 상상하고 싶지 않다.
성별은 부모 스스로 결정할 수 없다. 그래서 그 존재만으로도 존귀하고 아름답다.